한국 유일 마술바에서 칵테일 한 잔 어떠세요?
[김성호의 바로여기 1] 클로즈업 마술과 한 잔 술의 만남 '골드레이블'
멸종위기. 생명체한테만 쓰는 말은 아니다. 코로나19가 휩쓴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꿈 많은 것들이 물 밖으로 밀려난 고기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다.
마술계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대회가 열릴 때마다 메달을 목에 거는 한국 마술사가 수두룩하지만 정작 한국에선 수년 째 스타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 백 명을 잡고 아는 마술사를 물어도 이은결과 최현우 말고 다른 이름을 기대하긴 어렵다.
관심은 곧 돈이 된다. 이은결과 최현우를 소비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대중들은 마술에 돈을 쓰지 않는다. 어쩌다가 관심이 생겨도 어디에 어떻게 써야 더 나은 마술을 만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마술계가 처한 현실이 그렇다.
그래도 한국 마술이 지탱되는 건 마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애정 덕분이다. 한국엔 단 하나의 마술잡지 아르카나와 역시 단 하나의 마술바 골드레이블이 있다. 이 모두는 순전히 소수의 마술사와 마술애호가의 노력으로 지탱되니, 이들의 노력에 한국 마술의 인프라 상당부분이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 사회의 문화적 풍요로움이 다양성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나와 같은 사람에겐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마술계를 지켜보는 게 꽤나 고통스런 일이다.
지난 24일 열린 2020 서울 클로즈업 매직 컨벤션은 제법 흥미로운 자리였다. 클로즈업(관객 앞에 테이블을 두고 눈앞에서 보이는 마술 분과) 분야 한국 최강자를 가리는 이 대회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최초로 무관중 온라인 중계로 치러졌다.
이번 대회에는 세계마술올림픽이라 불리는 FISM 아시아지역예선 출전권 두 장이 걸려 관심을 모았다. 관객이 뽑는 피플초이스 부문과 심사위원이 가리는 심사위원상 수상자에게 출전권 한 장씩이 주어지는데 공교롭게도 두 부문 모두에서 임홍진 마술사가 1위를 차지했다.
내겐 다른 한 가지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이 대회가 치러진 장소가 아르카나 잡지사 사무실이고 우승을 차지한 임홍진씨(34)는 마술바 골드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르카나와 골드레이블 모두 한국에서 유일한 마술 관련 잡지와 바라는 점에서 둘의 만남엔 의미가 깊어 보였다.
코로나19로 적자 운영 중이라는 골드레이블을 찾아 임 마술사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공연으로 수익활동을 하는 다른 마술사들과 달리 왜 마술바를 연 것일까?
"제가 마술을 처음 만난 게 바에서였어요. 그래서인지 바로 앞에 있는 사람과 소통하며 마술을 보여주는 바매지션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골드레이블이 한국 첫 마술바인 건 아니다. 바에서 선보이는 마술은 아주 오래된 분야이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 프로마술사로 통한 알렉산더 리(고 이흥선 마술사)의 외손자가 세운 알렉산더 매직바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첫 마술바는 1998년 서울 합정동에 생긴 '알렉산더 매직바'죠. 저도 그곳에서 마술을 배우고 시작했거든요. 그 당시엔 바 마스터로 김정우 마술사가 있었는데, 한국 1호 프로마술사인 이흥선 마술사의 외손자셨어요. 지금 방송에 자주 나오는 최현우 마술사도 그 제자죠. 한때는 신림, 신촌, 명동, 수원에도 마술 극장이나 바 같은 곳이 여럿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골드레이블만 남아있네요."
골드레이블에선 매일 마술사의 마술공연이 펼쳐진다. 마술사들이 직접 칵테일을 제조하는 등 바텐더 역할도 함께 수행한다. 현란한 마술에 손님들은 탄성을 자아낸다. 가까이서 마술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신기한 건 손님들이 최소 2번 이상씩은 다시 왔다는 거였어요. 정말 모두 다 그랬죠. 그것도 한 번 와보신 분들이 지인을 데리고 와서 자랑하듯 소개하는 건 정말 짜릿했어요. 그럴 때마다 오신 손님들에게 마술을 본 적 있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아니오'였죠. 한 번이라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란 생각을 했어요. 색다른 경험과 낭만을 팔기로 했죠."
조금이라도 접근성을 높이고자 서울 신사역 인근에 터를 잡았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엔 경영이 쉽지 않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꼬박꼬박 나가는 임대료에 허리가 휘지만 마지막 남은 마술바를 지키겠다는 사명감으로 오늘도 버틴다. 어쩌면 또 한 명의 마술사가 이곳에서 마술의 삶을 시작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골드레이블을 찾는 사람들은 시간대에 따라 임 마술사 외에도 수리(김태영·
40), 털보(김경민·29) 등 색깔 있는 마술사들의 공연을 만나볼 수 있다. 기자가 친구와 함께 찾은 지난주 골드레이블을 홀로 지키던 털보 마술사는 "올해 복학해서 물리학 석사과정을 끝마칠 건데 언젠가는 마술과 과학을 접목시킨 공연을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꿈을 털어놓았다.
지금껏 생겼다가 사라진 많은 마술바들이 경험한 문제들을 골드레이블 역시도 마주하고 있다. 마술의 저변이 정체된 현실, 홍보의 어려움, 이에 더해 코로나19 위기상황까지. 그럼에도 공간을 유지해야할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과 마주하여, 한국 유일의 마술바를 지켜야 한다는 개인적 사명감이 오늘도 골드레이블을 지켜내고 있다.
때로는 아주 작은 관심이 귀한 무엇을 지켜내곤 한다. 기자는 바로 그 관심을 기대하며 이 글을 적었다.
마술계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대회가 열릴 때마다 메달을 목에 거는 한국 마술사가 수두룩하지만 정작 한국에선 수년 째 스타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 백 명을 잡고 아는 마술사를 물어도 이은결과 최현우 말고 다른 이름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도 한국 마술이 지탱되는 건 마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애정 덕분이다. 한국엔 단 하나의 마술잡지 아르카나와 역시 단 하나의 마술바 골드레이블이 있다. 이 모두는 순전히 소수의 마술사와 마술애호가의 노력으로 지탱되니, 이들의 노력에 한국 마술의 인프라 상당부분이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 사회의 문화적 풍요로움이 다양성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나와 같은 사람에겐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마술계를 지켜보는 게 꽤나 고통스런 일이다.
▲ 임홍진 마술사한국 유일의 마술바 골드레이블을 운영하는 임홍진 마술사가 지난 24일 열린 2020 서울 클로즈업 매직 컨벤션 대회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 골드레이블
지난 24일 열린 2020 서울 클로즈업 매직 컨벤션은 제법 흥미로운 자리였다. 클로즈업(관객 앞에 테이블을 두고 눈앞에서 보이는 마술 분과) 분야 한국 최강자를 가리는 이 대회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최초로 무관중 온라인 중계로 치러졌다.
이번 대회에는 세계마술올림픽이라 불리는 FISM 아시아지역예선 출전권 두 장이 걸려 관심을 모았다. 관객이 뽑는 피플초이스 부문과 심사위원이 가리는 심사위원상 수상자에게 출전권 한 장씩이 주어지는데 공교롭게도 두 부문 모두에서 임홍진 마술사가 1위를 차지했다.
내겐 다른 한 가지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이 대회가 치러진 장소가 아르카나 잡지사 사무실이고 우승을 차지한 임홍진씨(34)는 마술바 골드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르카나와 골드레이블 모두 한국에서 유일한 마술 관련 잡지와 바라는 점에서 둘의 만남엔 의미가 깊어 보였다.
코로나19로 적자 운영 중이라는 골드레이블을 찾아 임 마술사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공연으로 수익활동을 하는 다른 마술사들과 달리 왜 마술바를 연 것일까?
"제가 마술을 처음 만난 게 바에서였어요. 그래서인지 바로 앞에 있는 사람과 소통하며 마술을 보여주는 바매지션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골드레이블이 한국 첫 마술바인 건 아니다. 바에서 선보이는 마술은 아주 오래된 분야이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 프로마술사로 통한 알렉산더 리(고 이흥선 마술사)의 외손자가 세운 알렉산더 매직바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첫 마술바는 1998년 서울 합정동에 생긴 '알렉산더 매직바'죠. 저도 그곳에서 마술을 배우고 시작했거든요. 그 당시엔 바 마스터로 김정우 마술사가 있었는데, 한국 1호 프로마술사인 이흥선 마술사의 외손자셨어요. 지금 방송에 자주 나오는 최현우 마술사도 그 제자죠. 한때는 신림, 신촌, 명동, 수원에도 마술 극장이나 바 같은 곳이 여럿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골드레이블만 남아있네요."
▲ 골드레이블한국 유일의 마술바인 골드레이블에선 손님들 눈앞에서 마술사 바텐더들이 다양한 마술을 선보인다. ⓒ 골드레이블
골드레이블에선 매일 마술사의 마술공연이 펼쳐진다. 마술사들이 직접 칵테일을 제조하는 등 바텐더 역할도 함께 수행한다. 현란한 마술에 손님들은 탄성을 자아낸다. 가까이서 마술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신기한 건 손님들이 최소 2번 이상씩은 다시 왔다는 거였어요. 정말 모두 다 그랬죠. 그것도 한 번 와보신 분들이 지인을 데리고 와서 자랑하듯 소개하는 건 정말 짜릿했어요. 그럴 때마다 오신 손님들에게 마술을 본 적 있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아니오'였죠. 한 번이라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란 생각을 했어요. 색다른 경험과 낭만을 팔기로 했죠."
조금이라도 접근성을 높이고자 서울 신사역 인근에 터를 잡았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엔 경영이 쉽지 않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꼬박꼬박 나가는 임대료에 허리가 휘지만 마지막 남은 마술바를 지키겠다는 사명감으로 오늘도 버틴다. 어쩌면 또 한 명의 마술사가 이곳에서 마술의 삶을 시작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골드레이블을 찾는 사람들은 시간대에 따라 임 마술사 외에도 수리(김태영·
40), 털보(김경민·29) 등 색깔 있는 마술사들의 공연을 만나볼 수 있다. 기자가 친구와 함께 찾은 지난주 골드레이블을 홀로 지키던 털보 마술사는 "올해 복학해서 물리학 석사과정을 끝마칠 건데 언젠가는 마술과 과학을 접목시킨 공연을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꿈을 털어놓았다.
지금껏 생겼다가 사라진 많은 마술바들이 경험한 문제들을 골드레이블 역시도 마주하고 있다. 마술의 저변이 정체된 현실, 홍보의 어려움, 이에 더해 코로나19 위기상황까지. 그럼에도 공간을 유지해야할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과 마주하여, 한국 유일의 마술바를 지켜야 한다는 개인적 사명감이 오늘도 골드레이블을 지켜내고 있다.
때로는 아주 작은 관심이 귀한 무엇을 지켜내곤 한다. 기자는 바로 그 관심을 기대하며 이 글을 적었다.
▲ 골드레이블골드레이블은 종종 수준급 마술사를 초청해 마술공연을 여는 마술극장 기능도 수행한다. 한때 전국에 몇곳 남아 있던 마술공연 전용 극장이 자취를 감춘 상황에서 골드레이블의 중요성과 상징성은 더욱 커졌다. ⓒ 골드레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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