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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나에게 '생리대'를 주었다면 어땠을까

[나에게 생리대가 없었을 때 ②] 당연한 피, 사회가 이 당연함을 인정하고 지원하라

등록|2020.05.27 11:23 수정|2020.05.27 11:36
'서울시 청소년 월경용품 보편지급 운동본부'는 5월 28일 세계 월경의 날을 맞아 월경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현실과 문제들을 되짚어보고 모든 여성에게 자유롭고 안전하게 월경할 권리가 있음을 말하기 위해 '나에게 생리대가 없었을 때' 연속 연재를 진행합니다.[편집자말]
생리대와의 첫 만남은 모 생리대 제조회사가 월경 교육을 학교에서 진행하면서다. 함께 있던 남성 학생들을 따로 모아 운동장에 내보내고 여성 학생들만 교실에 남아 월경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와 생리대 사용법 등 간단한 교육이 진행되었다. 이 간단한 교육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교육 내용이 탁월해서도 아니고 교육 다음 점심시간에 벌어진 일 때문이다. 운동장에 나간 남성 학생은 왜 자신이 갑자기 나가야 하는지에 의문을 품었다. 자신의 짝에게 교실에 남아 뭘 했는지 자꾸 물어보면서 여성 학생만 받은 정체불명의 작은 쇼핑백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그 안에는 생리 관련 작은 안내 책자와 크기가 다른 생리대 두 개가 담겨있었다. 주춤거렸던 짝은 마지못해 열어 보여줬고 작은 책상 위에 생리대 두 개가 올려졌다. 이미 생리대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아이들은 놀라며 "뭐해! 빨리 넣어!" 소리를 쳤고 그 소동을 보고 달려온 담임 선생은 생리대를 재빠르게 치웠다. 생리대를 처음 본 날, 생리대는 잘 숨겨야 하는 것을 배웠다.

생리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취급을 받았다
 

중학생 때 가족여행 중 갑작스럽게 생리가 터졌다. 여행지 인근 작은 가게에 들어가니 할머니가 운영하고 있었고 다행히 내가 쓰는 생리대가 있었다. 마침 엄마는 과자를 사러 나와 함께 있었다. 주인 할머니는 엄마의 과자는 흰 봉투에, 나의 생리대는 검은 봉투에 넣어주면서 요즘 젊은 처자들은 남자한테 생리대를 사게 시켜서 부끄러운 줄 모른다고 하며 나를 참한 학생이라고 칭찬했다. 휴지를 샀어도 참한 학생이라고 칭찬을 받았으려나? 여행지는 기억에 없어도 이 장면은 아직 남았다.

앞선 두 번의 경험으로 생리대는 남에게 특히 이성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여중, 남녀공학이라고 해도 여학생과 남학생 건물이 철저하게 구분된 공간에서 학업을 해서 일상에서 꼼꼼하게 숨겨야 할 필요는 없었으나 생리대는 존재하지 않는 취급을 받았다.

월경 터부 사회에서 배제된 여성의 지식과 경험
 

매달 필수적으로 이용하는 생리대도 숨겨야 하니 매달 오는 생리통도 숨겨야 했다. 학교에서는 아프다고 제대로 말도 못 했다. 약을 먹으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당시 약국의 약사가 정보를 주었다. 이 잘못된 복약 정보는 친한 친구가 약사가 되어서야 수정되었다. 매달 나에게 고통과 귀찮음을 선사하는 월경이 참 싫었다. 월경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월경하는 몸으로 이어졌고 그래서 나는 어느덧 여성의 몸을 선호하지 않는 청소년과 청년의 시기를 지났다. 인생에서 생리만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 손에 있는 파란 반지를 봤다. 엄마는 아마 딸을 낳았을 때부터 이 장면을 생각해왔을까 싶을 정도로 나의 첫 생리 보고를 듣자마자 어른이 되어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껴온 반지를 내게 자연스럽게 넘겨주었다. 물론 이 장면조차 여러 맥락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당시 나에게는 생리는 축하받을 만한 신체적 성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생리 싫고, 되도록 안 하는 것이 내 인생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왔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엄마의 축하 덕분에 월경하는 몸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 △ 지난해 5월 28일, 서울시 여성청소년 생리대 보편지급을 요구하는 운동본부 발족식 기자회견 ⓒ 여성환경연대


월경 터부를 넘어 생리대 보편지급을 상상하다
 

생리하는 몸을 숨기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고 외쳐도 인식의 전환은 쉽지 않다. 내가 받았던 파란 반지처럼 인식변화에는 행동이 필요하다. 생리대 보편지급 운동을 하면서 만약 사회가 나에게 생리대를 지급했다면 나는 생리하는 나의 몸을 어떻게 생각했을지가 궁금했다. 수많은 과정을 거쳐 겨우 인정한 생리하는 몸에 대해 좀 더 편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생리용품을 제공받고, 생리하는 것을 드러내고, 생리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월경하는 몸이 당연한 존재라고 이해했을 것이다. 생리하는 사람에게 사회가 제공하는 생리대는 월경하는 몸이 우월한 것도 열등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전달할 것이다.

당연한 피, 이 당연한 것을 처리하는 용품을 사회가 제대로 인정하고 알게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월경하는 몸도 당연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런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할 일이다.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피 흘린 내 몸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기획 / 나에게 생리대가 없었을 때]
① 안전한 월경은 인권이다 http://omn.kr/1npxn
 
덧붙이는 글 해당 글을 쓴 기자는 정의당 서울시당 정책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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