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 아리랑' 노래한 최송량 시인 시비(詩碑) 서다
30일 최송량 시비(詩碑) 제막식 열려노산공원 중턱에 시비 세워져
▲ 5월 30일 노산공원 중턱에 세워진 최송량 시인의 ‘삼천포 아리랑’ 시비(詩碑). ⓒ 뉴스사천
"봄이 오는 한려수도/ 뱃길 삼백리// 동백꽃 피는 사연/ 곳곳에 서려/ 겨울 지나 봄이 오면/ 사랑이 피는/ 사랑섬 건너 오는 새파란 바다// 갈매기 두세마리/ 한가히 나는// 노산 끝 신수도엔/ 노래미가 한창인데// 와룡산 숨어 피는/ 진달래 꽃은// 피를 토해 붉게 피는 수채화 한 폭"- <삼천포 아리랑>
삼천포 바닷가 신항과 구항 사이, 바다를 향해 고즈넉하게 앉아 있는 노산공원. 삼천포와 사랑을 노래한 박재삼 시인의 문학관이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문학의 향이 진한 이곳에 또 한 명의 시인을 기리는 시비가 세워졌다. 바로 '삼천포 육자배기' 최송량(1940~2015) 선생이다.
시비는 재경삼천포고등학교동문회가 최 시인의 고향에 그의 자취를 남기고자 건립했다. 동문회는 시비세우기 추진위를 구성하고, 1년 여간 자체모금 등 시비 건립을 추진해왔다.
▲ '향토시인 최송량 선생 시비세우기 추진위원회' 엄종명 위원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뉴스사천
엄종명 추진위원장은 "한 평생 삼천포를 노래한 최송량 시인의 시비가 전남 장흥군에 있는 문학공원에 달랑 하나 세워져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며 "이 소식을 듣고 최송량 시비를 노산공원에 세우고자 동문들과 십시일반 힘을 모으게 됐다"고 말했다.
최 시인의 부인 이숙례 여사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다 갔는데, 시비가 세워지게 되어 반갑고 후배들에게 고맙다"며 "무엇보다 삼천포를 그리워했는데 고향에 시비가 세워지게 되어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 최송량 시인의 후배 문인인 정삼조 시인이 최 시인이 생전 좋아하던 맥주를 헌배하고 있다. ⓒ 뉴스사천
후배 문인인 정삼조 시인은 이날 행사에서 92년도에 발간된 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왜 잘 나가다가 자꾸 삼천포로 빠지란 말인가>를 들고 "시비에 적힌 시를 보면 '사랑섬'이라고 되어있는데 최송량 시인이 사량섬을 몰라서 그렇게 표기한 것이 아니고, 시의 맥락에 맞게 사람들이 부르는 발음으로 시적 허용을 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최 시인은 자연으로 돌아갔지만 여기 비석을 남겨 자유와 방랑과 낭만의 정신을 가진 그를 기억해본다"고 말했다.
한편, 최송량 시인은 1940년 삼천포에서 태어나 삼천포고등학교(6회)를 졸업하고, 부산대에서 수학했다. 사천시 공무원 출신이기도 한 최 시인은 1973년 월간 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에는 <삼천포 육자배기>, <왜 잘 나가다가 자꾸 삼천포로 빠지란 말인가>, <서쪽에 뜨는 달>, <까치놀 우는 저녁바다>, <떠나가는 섬>, <바흐를 보면서>가 있다. 60~70년대 사천 문학계를 이끌어오던 최 시인은 2015년 6월 지병 악화로 타계했다.
▲ 30일 열린 최송량 시비 제막식에는 삼천포고등학교동문회 관계자, 유족, 지역 문인 등 70여 명이 참석했다. ⓒ 뉴스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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