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국민 54% "전쟁영웅이라도 친일파면 현충원서 이장해야"

[오마이뉴스 주간 현안 여론조사] 거의 모든 지역·연령에서 찬성 우세

등록|2020.06.03 07:24 수정|2020.06.03 07:26
 

▲ ⓒ 오마이뉴스


국립현충원에 묻힌 친일행위자들의 무덤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 국민 절반 이상은 "한국전쟁 등 다른 공이 있더라도 친일행위자는 현충원에서 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마이뉴스>는 2일(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500명(총 통화 8765명, 응답률 5.8%)을 대상으로 현충원의 친일행위자 이장 공감도를 조사했다. 질문은 다음과 같다.
 
Q. 최근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행위자들의 처리를 놓고 여러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다음 주장 중 어느 의견에 더 공감하십니까? (1~2번 로테이션)
1. 한국전쟁 등 다른 공이 있더라도 친일행위자는 현충원에서 이장해야 한다.
2. 친일행위자라도 한국전쟁 등 다른 공을 인정해 현충원에 계속 안장해야 한다.
3. 잘 모르겠다.

조사 결과, '이장해야 한다'는 응답이 54.0%로 절반을 넘었다. 반면 "친일행위자라도 한국전쟁 등 다른 공을 인정해 현충원에 계속 안장해야 한다"는 응답은 32.3%로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3.7%였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연령별로는 7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이장 찬성' 비율이 높았다. 특히 30대(67.2%)와 40대(63.2%)에서 압도적으로 찬성 비율이 높았다. 20대(18·19세 포함)도 찬성 비율이 55.6%를 기록해 '이장 반대' 응답 25.7%보다 두 배 이상 높았고, 50대는 찬 49.7% - 반 37.4%를 기록했다. 고연령층에서 60대는 찬 42.0% - 반 37.2%로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 ±4.4%p) 내에서 찬성이 우세했지만, 70세 이상은 찬 41.5% - 반 46.6%로 거꾸로 오차범위 내에서 반대가 앞섰다.

지역별로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이장 찬성' 비율이 높았다. 광주·전라에서 73.2%가 찬성해 압도적이었으며, 경기·인천 57.2%, 서울 53.7%, 대전·세종·충청 50.0% 등이었다. 부산·울산·경남도 찬 48.3% - 반 38.5%로 역시 찬성이 높았다. 대구·경북에서는 찬성(42.5%)과 반대(43.7%)가 팽팽했다.

지지정당에 따른 응답은 확연하게 갈렸다. 민주당 지지층의 압도적 다수인 77.2%가 찬성 응답을 한 반면, 미래통합당 지지층에서는 과반을 훌쩍 넘긴 67.9%가 '친일행위자의 이장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념성향별 분석에서는 스스로를 진보나 중도라고 한 응답자의 60% 이상이 이장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보수층 응답자 중에서는 찬 34.8% - 반 48.4%로 반대가 다수였다.

반공주의에서 벗어나는 국민들, 친일청산에 더 높은 가치
 

▲ 친일파 김백일의 묘는 일본 만주군 출신 박정희 대통령의 묘역 앞쪽에 자리한 장군1묘역 최상단에 자리잡고 있다. 김백일의 무덤에 서면 현충원 전경과 쭉 뻗은 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다. ⓒ 공명식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반공주의(한국전쟁 등의 공훈)와 친일청산(친일행위자 단죄)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할 경우 우리 국민 다수는 친일청산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이장에 반대하는 측에서 제기하는 핵심 논거는 이번 여론조사의 보기와 같이 친일행위를 했다 하더라도 한국전쟁에서 세운 공훈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행위자들의 이장 요구가 거세지자 <조선일보>와 미래통합당에서 거꾸로 고령의 백선엽 전 장군을 거론하며 사후에 현충원에 안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백 전 장군은 한국전쟁에서의 공으로 서훈을 받았지만, 2009년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국가공인 친일파' 중 한 명이다.

현재 백 전 장군처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공인한 친일파 중 현충원에 안장된 이들은 김백일·신응균·신태영·이응준·이종찬·김홍준·백낙준·신현준·김석범·송석하·백홍석 등 11인이다. 이중 백낙준을 제외하고 10명은 모두 일제강점기 일본군과 만주군으로 복무하며 항일무장세력을 탄압하다가 해방 후 이승만 정권에서 국군으로 신분을 바꿔 활동한 군인 출신이다. 또한 현충원 안장자 중 민간에서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사람은 68명(위 11명 포함)이다.

국민여론이 반공주의에서 벗어나 친일청산이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새로 출범하는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을 개정해 친일행위자들의 묘를 현충원에서 이장시켜야 한다는 광복회 등 독립운동단체들의 주장이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백 전 장군은 현행 법 기준으로는 현충원 안장 대상자이지만, 국립묘지법 개정안 등이 통과되면 자격을 잃게 된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의 방학진 실장은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파 이장에 대해 다수 국민이 동의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 문제는 진영 간 대결할 문제가 아니다, 국립묘지법의 목적대로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희생 및 공헌한 분들을 기리며 선양하는 장소'로 국립현충원이 확립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방 실장은 "친일행위자의 이장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분열과 갈등 때문에 걱정하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대 국회에 제출된 국립묘지법 개정안에 따르면 이장 대상자는 서울현충원 7명, 대전현충원 4명 등 11명에 불과하다"라며 "국회에서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들의 뜻을 모아 조화롭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는 무선(80%)·유선(20%) 자동응답(ARS) 혼용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집방법은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식을 사용했고, 통계보정은 2020년 4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른 성·연령·권역별 가중 부여방식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다. 자세한 조사 결과는 오른쪽 '자료보기' 버튼을 클릭하면 된다.
 

▲ 국립대전현충원은 29일 오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을 안중근체 현판으로 교체했다. 사진은 새로운 현판 제막식. ⓒ 대전현충원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