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등교입학 이틀 만에... 온 식구가 현관으로 뛰쳐나갔다

한국 초등학교에 등교해 친구 데려온 손자... 저 기쁨을 놓치고 싶지 않다

등록|2020.06.05 19:32 수정|2020.06.05 19:32

▲ 고등학교 1학년·중학교 2학년·초등학교 3∼4학년을 대상으로 한 3차 등교개학일인 3일 오전 경남 김해시 삼성초등학교 입구에서 학생들이 바닥에 붙은 '간격' 표시 테이프 길을 따라 등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초등학교 3학년인 손자가 한국 학교에 처음으로 등교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큰 소리로 인사하고 나가는 손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남다른 감회가 밀려온다.

손자는 지난해 말까지 중국에서 살다가 방학 때 잠시 한국에 왔었다. 한동안 먹지 못한 한국 음식이 그립기도 하고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정도 나누기 위해서였다. 또 중국에서 배우지 못한 여러 공부도 할 겸 방학마다 늘 귀국하곤 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찾아오면서 중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한 달, 두 달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행여나 하고 대기하는 기간이 3개월이 넘어가면서 딸의 가족은 삶의 진로를 바꿔야 했다. 이참에 한국으로 돌아와야겠다는 결정을 한 후 우리와 함께 살게 된 것이다. 딸의 가족은 아예 우리 집에 전입신고도 했다. 손자도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전학을 해 놓고 개학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교육부에서는 등교를 미루고 온라인 개학부터 했다. 손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 갈 날을 기다리며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지만 한국 학교생활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고 학교에 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손자는 어느 날 눈물을 주르룩 흘리며 말했다.

"나 중국 우리 집 가고 싶어요. 여긴 친구도 없고 놀 거리도 없어요."

손자는 돌이 막 지난 두 살 때 부모를 따라 중국에 들어가 8년이란 세월 동안 그곳에서 생활해왔다. 어린 날의 추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익숙한 장소가 그리울 법도 하다.

게다가 원래는 방학 때 잠시 한국에 오는 일정이어서 장난감도 모두 중국에 있는 집에 놓고 온 터였다. 당장 즐길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이 없으니 일상이 지루한 데다, 갑자기 변화된 삶의 방식 또한 낯설고 힘겨웠던 게 아닐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 마음은 얼마나 짠했을까 싶다.

손자의 첫 등교

드디어 오래 기다려온 날이 왔다. 지난 3일, 초등학교 3학년의 등교가 시작됐다. 손자와 사위, 딸 모두 들뜬 마음으로 수업 준비를 하고 함께 학교에 갔다.

본가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축하 전화를 하셨다. 남들이 알면 웬 요란일까 싶어도 우리 집은 특별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 학교에 가는 날이니 마음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친구는 잘 사귈까, 적응은 잘할까... 한 번도 한국에 있는 학교에 다녀본 경험이 없는 손자를 보며 가족 모두 한마음으로 신경을 썼다.

우리뿐만이 아니다.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 모두가 평소에는 몰랐던 일상의 소중함을 느꼈을 거라고 믿는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으로 발이 묶인 채 몇 개월을 집에서 내복만 입고, 조그마한 화면으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집밥만 먹었으니, 매우 답답하고 지루했으리라.
 

▲ 교실 책상에 앉은 손자의 모습 ⓒ 이숙자


"학교 다녀왔습니다!"

오후 1시가 지나자 손자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목소리가 씩씩하다. 새롭게 시작한 일상이 좋은가 보다.

"할머니, 저 배고파요! 밥 더 주세요."

한창 자랄 때여서 그런지 학교에서 점심 급식을 먹었는데도 금세 배가 꺼지나 보다. 손자에게 밥을 차려준 뒤 이것저것 물었다.​

"오늘 처음 학교에 다녀온 소감은 어떠니?"
"뭐가 뭔지 아직 모르겠어요. 지켜야 할 규칙들이 너무 많아요."
"같은 반 친구들은 어때?"
"모두가 새로 온 저를 보는 느낌이에요."

   
중국 학교만 다녀봤기에 달라도 너무 다른 문화를 한 번에 극복하긴 어려울 테다. 그러나 손자는 새로운 환경에 천천히 적응하며 인생의 변환점을 잘 헤쳐나갈 것이다. 훗날 어른이 되어 기억하는 오늘이 손자에게는 잊지 못할 날이 되지 않을까.

손자의 기쁨을 놓치고 싶지 않다

"친구 데려왔어요!"

등교 두 번째 날, 손자는 하굣길에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왔다. 손자는 살면서 또래 친구는 처음이라 했다. 중국에서 한국인이 많지 않은 곳에 살다 보니 한국 친구는 늘 자기보다 나이가 많거나 어렸다고.

식구들 모두 반가워했다. 약간 과장을 보태자면 현관으로 뛰어나가 환대할 정도였다. 쏜살같이 방으로 들어간 손자와 친구는 웃음소리가 밖까지 새어 나올 정도로 즐거워하는 분위기였다.

정말 다행이다. 잘 적응하리라고 믿었지만 이렇게 활발히 생활해 주다니 참 감사하다. 부모가 곁에 있지만 결국 자기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은 자기 몫인 것이다.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사위는 "정말 감사한 일이네요" 하면서 기뻐한다.

아이들이 동심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뛰어놀 수 있는 일상이 이어지길 기도한다. 더는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지 않기를 바란다. 손자의 기뻐하는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다. 우리에게 펼쳐질 뉴노멀은 신종 감염병과 마스크가 아니라 가족의 소중함과 소통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