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살해 약속을 지키라'는 편지를 받았다
[서평] 야쿠마루 가쿠 소설 '돌이킬 수 없는 약속'
인간에게는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부모다. 즉 세상에 태어날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세상에 나온 이후의 모든 것은 선택의 연속이다. 심지어 성별과 외모, 이름까지도 예전에 비해 손쉽게 바꿀 수 있다.
다카토는 흉측한 얼굴과 부모의 버림을 선택할 수 없었다. 하지만 폭력을 휘두르고, 범죄에 가담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들 엄연한) 그의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사카모토 노부코씨와의 약속은 필사의 선택이었다. 그 약속 이후 괴물로 불렸던 다카토 후미는 멀끔한 얼굴의 무카이 사토시로 다시 태어났다.
사연인 즉, 뒷골목을 전전하던 다카토 후미는 야쿠자에게 잡히면 죽음을 맞이할 운명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일면식도 없던 한 노파(사카모토 노부코)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왔다.
성형수술과 신분세탁에 필요한 돈을 줄 테니 딸을 능욕하고 죽게 만든 살인자 2명이 출소하면 그들을 죽여달라는 것이었다. 다카토는 약속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다카토는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노파는 암에 걸려 곧 죽게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15년 후. 전 다카토, 현 무카이에게 노파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들이 출소했다고. 이제 약속을 지켜야할 때라고. 무카이가 망설이는 사이 열 살 난 딸을 해치겠다는 협박을 해 왔다. 과연, 아내, 딸과 함께 평범함이 행복임을 느끼며 살아가는 무카이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이야기는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을 향해 마지막까지 긴장감 넘치는 전개를 이어간다. 한 번의 쉼표도 없이. 나 역시 한 번도 책을 놓지 않고 단숨에 끝까지 읽어냈다. 그 숨 가쁜 긴장감이 이 책을 베스트셀러에 올린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일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은 마치 누가 누가 더 나쁜 놈인가를 경쟁하듯 끊임없이 '나쁜 사람'이 등장한다. 일단 주인공이 전과자다. 죄목은 강도와 상해다. 사카모토씨의 딸을 극악무도하게 살해한 범인 둘은 말할 것도 없고, 주인공의 아내를 성폭행한 회사 상사도 있었다.
주인공의 바에서 일하는 바텐더 견습생도 소년원에 갔던 이력이 있고, 주방에서 일하는 여자는 자신과 아이를 폭행한 남편과 이혼했지만 양육비도 못 받고 있다. 그리고 노부코씨를 가장한 장본인을 찾아가는 데 있어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궁창에 살거나 시궁창에서 막 빠져나온 사람들이다.
주인공의 상황과 처지를 고려해 주변에 나쁜 놈 천지일 수 있다고 치고, 다시 한번 주인공의 상황과 처지를 고려해보니 다른 나쁜 놈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궁금한 마음도 든다. 혹시 그들도 부모에게 버림받은 건 아닐까? 아니면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그런 이유들로 악행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건 '덜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단죄하는 것은 정당한가?'라는 질문이다.
책을 다 읽고 작가 소개를 다시 읽어보니 '그의 작품은 대체로 사회구조적 범죄를 통해 심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의 냉혹한 현실에 의문을 던진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철저히 작가의 이정표를 제대로 잘 따라간 모양이다.
확실히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인간과 사회를 돌아본다는 점에 있다. 우리 사회의 법은 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있는지, 사회는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눈물은 잘 닦아주고 있는지, 적법하지 않은 개인의 원한이 단죄를 합리화할 수 있는지, 평범한 사람들이 갖는 평범하지 않음에 대한 선입견이 직접적인 범죄보다 가벼운지 말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기르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반대로 한 인간이 범죄자가 되는 데에 개인의 책임만을 물어서 될까. <돌이킬 수 없는 약속>과 같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통해 던지는 질문 속에서 인간은 끝없이 성찰하고, 사회는 성장해야 할 것이다. 성찰하지 않는 인간을 담은 사회는 현실판 지옥일 테니까.
다카토는 흉측한 얼굴과 부모의 버림을 선택할 수 없었다. 하지만 폭력을 휘두르고, 범죄에 가담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들 엄연한) 그의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사카모토 노부코씨와의 약속은 필사의 선택이었다. 그 약속 이후 괴물로 불렸던 다카토 후미는 멀끔한 얼굴의 무카이 사토시로 다시 태어났다.
▲ 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카구의 소설 <돌이킬 수 없는 약속> ⓒ 북플라자
정확히 15년 후. 전 다카토, 현 무카이에게 노파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들이 출소했다고. 이제 약속을 지켜야할 때라고. 무카이가 망설이는 사이 열 살 난 딸을 해치겠다는 협박을 해 왔다. 과연, 아내, 딸과 함께 평범함이 행복임을 느끼며 살아가는 무카이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이야기는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을 향해 마지막까지 긴장감 넘치는 전개를 이어간다. 한 번의 쉼표도 없이. 나 역시 한 번도 책을 놓지 않고 단숨에 끝까지 읽어냈다. 그 숨 가쁜 긴장감이 이 책을 베스트셀러에 올린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일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은 마치 누가 누가 더 나쁜 놈인가를 경쟁하듯 끊임없이 '나쁜 사람'이 등장한다. 일단 주인공이 전과자다. 죄목은 강도와 상해다. 사카모토씨의 딸을 극악무도하게 살해한 범인 둘은 말할 것도 없고, 주인공의 아내를 성폭행한 회사 상사도 있었다.
주인공의 바에서 일하는 바텐더 견습생도 소년원에 갔던 이력이 있고, 주방에서 일하는 여자는 자신과 아이를 폭행한 남편과 이혼했지만 양육비도 못 받고 있다. 그리고 노부코씨를 가장한 장본인을 찾아가는 데 있어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궁창에 살거나 시궁창에서 막 빠져나온 사람들이다.
주인공의 상황과 처지를 고려해 주변에 나쁜 놈 천지일 수 있다고 치고, 다시 한번 주인공의 상황과 처지를 고려해보니 다른 나쁜 놈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궁금한 마음도 든다. 혹시 그들도 부모에게 버림받은 건 아닐까? 아니면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그런 이유들로 악행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건 '덜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단죄하는 것은 정당한가?'라는 질문이다.
책을 다 읽고 작가 소개를 다시 읽어보니 '그의 작품은 대체로 사회구조적 범죄를 통해 심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의 냉혹한 현실에 의문을 던진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철저히 작가의 이정표를 제대로 잘 따라간 모양이다.
확실히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인간과 사회를 돌아본다는 점에 있다. 우리 사회의 법은 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있는지, 사회는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눈물은 잘 닦아주고 있는지, 적법하지 않은 개인의 원한이 단죄를 합리화할 수 있는지, 평범한 사람들이 갖는 평범하지 않음에 대한 선입견이 직접적인 범죄보다 가벼운지 말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기르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반대로 한 인간이 범죄자가 되는 데에 개인의 책임만을 물어서 될까. <돌이킬 수 없는 약속>과 같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통해 던지는 질문 속에서 인간은 끝없이 성찰하고, 사회는 성장해야 할 것이다. 성찰하지 않는 인간을 담은 사회는 현실판 지옥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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