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출간계약서도 안 썼는데, 출간기념회를 엽니다

[상주작가의 서점에세이 시즌2] 10월 31일, 첫 책을 펴내게 될 열세 명의 예비 작가들

등록|2020.06.14 14:41 수정|2020.06.14 14:41
2020년 5월부터 다시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하는 '2020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로 일합니다. 문학 코디네이터로 작은서점의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연재는 그 기록입니다.[편집자말]
내 책을 내는 것. 이 꿈을 꾸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많았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수없이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이 꿈을 제압한 건 먹고사는 일이었다. 이 꿈은 영영 잊힌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웬 걸!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은 세월이 가도 늙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숨죽인 채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에서 이 꿈을 되찾았다. 서점 상주작가의 손을 잡고 첫 발을 떼었던 사람들은 자박자박 혼자 걷는 아이처럼 블로그,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 월간지,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냈다. 어느새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쓴 사람도 있었다. 한 달에 두 번씩 꾸준히 쓴 글을 합치면, 다들 문고판 책을 펴낼 정도는 됐다.

그러나 한 가지 주제로 써야 책이 된다.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첫 영국여행, 어머니, 텃밭, 몽골, 그림책, 중년의 일상, 설거지, 경제 자립, 노부부의 삶, 카페 이야기 등 각자의 관심 분야를 10편에서 15편 정도까지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스물한 명이 원고 마감을 정해서 활동하는 메신저 단체방에 글을 올렸다. 각자 책을 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댓글이 달렸다.

"목표가 생기면 뭐라도 계속 쓰게 될 것 같아요. 덥썩!"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네요."
"기분은 벌써 책 나온 거 같아요. 최고의 동기부여가 됩니다."
 

첫 번째 숙제는 책의 주제와 목차 정하기였다. 길 찾기 앱으로 생전 처음 가는 곳의 노선과 주위의 큰 건물을 확인하는 것처럼, 목차를 정하면 각자 쓸 글의 목적지가 보일 것 같았다. 쓰다가 바뀌더라도 필요한 작업이었다. 출간 준비에 들어간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의 목차를 보고, 서점에 와서 관심분야의 목차를 살펴봤다.
 

▲ 10월의 마지막 밤, 군산 한길문고에서는 열세 명의 작가들이 꿈을 이룹니다. ⓒ 배지영


며칠 동안이나 출간의 기쁨과 부담 사이를 오가던 사람들은 열한 명에서 열다섯 명으로 늘었다가 열세 명으로 줄어들었다. 첫 책을 내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은 사람들은 '내 글에 날개를 달다'라는 출판기념포스터에 넣을 실명과 필명 사이에서 또 고민했다.

선거에 내건 공약은 아니어도 반드시 지인이 지어준 필명을 써야 한다는 사람, 세례명으로 불리는 게 익숙하다는 사람, 필명과 실명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아이들의 의견에 따라서 실명으로 돌아온 사람 등의 사연을 수용했다. 출판 기념회 포스터에 들어가는 작가 이름을 고치는 데도 사나흘 걸렸다.

그때 마침 내 눈에 들어온 문장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의 서문에 있었다. 박완서 작가가 여든 살이던 2010년에 낸 산문집이었다.


"또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내 자식들과 손자들에게도 뽐내고 싶다. 그 애들도 나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참 좋겠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
 

한길문고라는 동네서점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 한 사람의 작가로 태어나는 몇 달 간의 과정 내내 행복하기를 바랐다.

나는 서울에서 독립출판 과정을 수강하고 책을 만든 친구에게 커리큘럼 과정이 어떠했나를 알아봤다. 2강은 콘텐츠 구성과 책 내용 정하는 것. 나머지 4강은 인디자인과 조판, 인쇄와 종이의 종류, 샘플 책 만들기, 책방 입고하기 등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출판사를 통해서 책을 펴낸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책을 출판하는 길은 한두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 2월에 서점에서 만난 황보윤 작가는 다양한 출판물을 보여줬다. 아이들 문집, 모녀의 대화록, 젊은이들의 여행기 등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때 같이 있던 사람들은 "나도 책 만들고 싶다"고 부러워했다. 그 책들 중에서 몇 권을 만든 출판사와 그 책을 판매하는 독립책방은 군산에 있다. 당장 도서출판 진포 류인상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표지와 본문 디자인을 흑백으로 편집하는 데 10만 원, 책 30권을 인쇄하고 제본하는 데 넉넉잡아 20만 원, 다해서 30만 원이었다. 사진이나 그림을 넣고 부수를 늘리고 싶은 사람들은 추가 비용을 부담하면 된다. 기술이 없으니까 전문가한테 기대고, 우리는 글만 잘 쓰면 되는 일이었다.

출간된 책은 한길문고에서 '군산 작가 특집'으로 매대를 따로 주기로 했다. 원고의 중간 마감은 7월 27일, 완전 마감은 9월 15일로 정했다. 교정과 교열을 함께 보고, 10월의 마지막 밤에 출판기념회를 하는 일정이다. 한 발 더 나가서 독립출판한 책의 원고를 고쳐 출판사에 투고할 수도 있겠다.
 

▲ 출판 모임. 이날은 한길문고에서 강연해 주셨던 정명섭 작가님도 잠깐 같이 했다. ⓒ 배지영


각자 책의 목차를 정해서 함께 모인 날. 한 달에 두 번씩 하는 에세이 수업 시간처럼 나만 혼자서 말하고 있었다. 편집자를 해본 적 없는 나는 아주 낮은 수준의 가이드 노릇만 할 수 있는데... 또 그 과도한 업무를 맡을 능력도 없는데... 모두 반짝이는 눈으로 나만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짐을 가득 지고 혼자 걷는 것 같았다. 다음 날, 메신저 단체방에 올라온 글 하나가 유난히 마음에 들어왔다.

"저는 그냥 내 글을 쓰려고요(김훈 –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막연하고 괜한 일 시작했나 무서웠는데 어제 기획회의하면서 오히려 의욕이 생겼어요. 새 글의 구상이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지만 즐기려고요. 선생님들도 함께 힘내서 결과를 봅시다요~^^"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혼자만의 글쓰기를 척척 해온 사람들이다. 길게는 1년 반, 짧게는 1년여 동안 글을 써온 사람들이다. 여태까지 해온 것처럼 자신을 믿고, 서로를 의지하면서 갈 수 있었는데, 나 혼자 겁을 먹고 괜한 걱정을 한 거였다.

출판 모임을 시작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직장에 다니고, 아이들을 키우고, 일상을 꾸리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마감의 압박이 힘들다고 메신저 단체방에 글을 올리기도 한다.

원고마감을 지키는 작가만이 다음 일을 도모할 수 있다. 지금까지 80여 권의 책을 출간했고, 지난해에 13권의 책을 출간한 정명섭 작가는 신간 <우리 반 홍범도>를 소개하면서 SNS에 이렇게 썼다.

"내 이름이 있는 책 표지는 그 자체로 감동이다. 삶이 또 한 번 전진한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