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로 들끓는 미국... 그래도 트럼프는 재선?
[진단] '백인 중심 사회' 제도적 개혁의 한계... 독특한 선거제도 변수
무자비한 경찰의 목 누르기로 사망한 플로이드의 장례식으로 그의 개인사는 일단 마무리 되었지만, 그가 촉발한 인종차별 논쟁은 오히려 미국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개인적 차원의 인종차별 문제를 넘어서서 제도적 인종차별의 문제점의 분석과 극복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무엇보다도 먼저 미국 경찰제도의 개혁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제도 개혁이 아니라 멀리는 트럼프의 재선과도 직결되는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트럼프의 지지도가 떨어지는 현상을 보면서 그의 재선이 매우 힘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 6일(미국 현지시각) LA에서 열린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인종차별 반대집회에 참석한 한 참가자의 모습. ⓒ 연합뉴스=AP
CNN 뉴스에 따르면, 플로이드의 죽음이 미국 사회에서의 경찰의 역할과 사법체계 안에 존재하는 제도적인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성찰을 촉발했다고 한다. 그리고 제도적 인종차별 극복에 거리에 나서 분노하고 있는 풀뿌리 민중들만이 아니라 워싱턴 제도권에 있는 정치가들도 당파를 초월하여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에 6월 8일 미국의 야당인 민주당은 근본적인 경찰 개혁법안을 발표했다. 이어서 6월 9일 여당인 공화당도 경찰 개혁법안 마련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하원의 공화당 당대표인 맥카티(Kevin McCarthy)는 민주당의 법안 내용에 동의할 용의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경찰 훈련에 연방 기금을 사용하고, 직권을 남용한 경찰의 파면을 더 용이하게 하며, 직권 남용 문제가 있는 경찰을 다른 지역으로 전보하던 관행을 차단하는 조항에 동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미국 상원의 공화당 소속 스코트(Tim Scott) 의원과 조던(Jim Jordan) 의원도 경찰개혁안을 마련할 생각이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서 플로이드가 살았던 텍사스주의 애보트(Greg Abbott) 주지사는 경찰 개혁을 정치가의 손에만 맡기지 않고 희생자 가족들의 주도로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경찰의 폭력성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에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민중만이 아니라 정치가들도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실 경찰의 폭력성, 특히 인종차별에 근거한 폭력성에 대한 비판과 개선에 대한 목소리는 미국에서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개선도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경찰이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을 살해하는 빈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에 분노한 풀뿌리 민중들이 이번 사건으로 경찰에 세금을 사용하지 말고, 더 나아가 아예 경찰을 없애자는 극단적인 요구까지 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플로이드가 경찰에 살해당한 도시인 미네아폴리스 시의회도 시경찰국에 세금 지원을 중단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사법제도적 차원의 인종차별에 대한 여론 조사에서도 여론의 변화가 충분히 감지되고 있다. 최근 CNN/SSRS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7%가 사법제도가 인종차별적이라고 대답했다. 2015년 조사에서는 같은 질문에 대하여 응답자의 49%만이 사법제도가 차별적이라는 대답이 나온 것에 비하여 커다란 변화다. 공화당 소속 여론조사 담당자인 룬츠(Frank Luntz)는 이러한 여론의 급격한 변화는 지난 35년 동안 처음 보는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많은 유명인사들도 트럼프를 비판하고 나서고 있다.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태가 트럼프의 재선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제는 트럼프만이 아니라 미국 공화당에 대한 지지율도 하락하고 있다. 이것이 상원위원 33명이 교체될 예정인 11월 선거를 앞둔 미국 공화당이 서둘러 문제의 제도적 해결에 나서는 직접적인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지지자들은
▲ '흑인사망' 시위사태 속 이틀째 종교시설 찾은 트럼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의 천주교 시설인 세인트 존 폴(성 요한 바오로) 2세 국립성지 방문 중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흑인 사망사건'에서 촉발된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번진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대통령의 교회'로 불리는 백악관 인근 세인트존스 교회에 이어 이날 이틀 연속 종교시설을 방문했다. ⓒ 워싱턴 AP=연합뉴스
그러나 트럼프는 여전히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시위에 나서는 이들을 여전히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의 행보에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현직 관리들이 많다. 그러나 그의 강경노선을 지지하는 이들의 입장도 여전히 확고하다.
국가안보보좌관인 오브라이언(Robert O'Brien)은 CNN 뉴스에서 지난주만 해도 폭도들이 많았으나 이번 주 들어 평화 시위가 정착된 것이 순전히 경찰의 질서 유지 조치 덕분이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경찰 내부에 조직적인 인종차별이 존재하지 않으며 일부 문제 경찰관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 문제는 경찰 제도를 신뢰하지 않는 흑인들의 생각에 있다는 주장도 했다. 미국의 법무장관 바(William Barr)도 대부분의 경찰이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흑인들이 사법제도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고위 공직자들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로 백인들인 트럼프 지지자들의 신념은 여전히 확고하며, 그것이 트럼프의 강경 노선의 든든한 배경이 되고 있다. 이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거친 언사보다는 그의 업적을 본다고 강조한다. CNN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트럼프의 재선을 확신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그동안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적인 공권력 행사로 흑인들이 피해를 입을 때마다 인종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공론이 꾸준히 일어왔다. 그러나 그것이 법적,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낸 적은 거의 없었다. 미국의 주류는 흑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6년 기준 미국의 흑인과 백인들의 빈부 격차는 매우 뚜렷하다. 백인의 순자산은 평균 17만 달러에 이르지만, 흑인은 그 10분의 1인 1만 7천 달러에 불과하다. 참고로 아시아계는 6만 5천 달러이고, 히스패닉은 2만 7천 달러로 역시 백인들에 비하여 상당히 낮은 수준이지만 흑인에 비해서는 매우 높은 편이다.
그리고 실업율과 임금에서도 흑인과 백인들이 턱없이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백인과 동일 학력을 갖춘 흑인의 경우도 백인에 비하여 78%에 불과한 임금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능력보다 피부색으로 임금이 결정된다. 백인의 74%가 자기 집을 보유하고 있는데 비하여, 흑인은 낮은 임금과 적은 유산이 주요 원인이 되어 44%만이 자기 집이 있다.
백인들이 미국에 먼저 이민 와서 터를 닦은 것은 사실이니 기득권을 누릴 법도 하다. 그러나 흑인들과 히스패닉들이 백인에 이어 차례로 들어오고 동양계도 들어오고 인권과 평등에 관한 법과 제도가 수립된 다음에도 백인들의 특권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흑인들은 그들보다 나중에 이민 온 인종에 비해서도 모든 면에서 열악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경제력, 인구구성, 선거제도 모두 백인 세상
▲ 의사당서 8분46초 무릎꿇은 미국 민주당 의원들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가운데)를 포함한 미국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8일(현지시간) 의사당의 이맨시페이션(노예해방) 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묵념을 올리고 있다. ⓒ 워싱턴 UPI/연합뉴스
인구로 보아도 백인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서 현대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도 그들의 입김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늘 다수파인 것이다. 미국의 3억 2천만 명의 인구 가운데 백인은 61%이고, 히스패닉은 19%, 흑인은 14%, 아시아인은 6%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인구 비율대로 대표성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현재 116대 미 하원에서 백인은 313명, 흑인은 56명 히스패닉은 44명, 아시아계는 15명, 인디언은 4명이다. 흑인이 10.5%에 불과하다. 상원의 경우는 더 심하다. 100명의 상원의원 가운데 백인이 91명, 히스패닉이 4명, 흑인이 2명, 아시아계가 2명이다. 단 2명이 4500만 명의 흑인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구비를 바탕으로 한 정치적 지형은 트럼프의 재선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또한 미국의 독특한 선거제도로 인해 대선의 결과를 단순히 지지율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는 득표율에서 힐러리에게 2.1%p 뒤졌다. 그러나 오히려 선거인단 수에서는 306명으로 힐러리에 비하여 74명이 앞섰다. 대선 이전의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결코 낙관을 할 수 없는 지지율을 보였었기에 이는 더욱 놀라운 결과였다. 그 당시 투표 직후의 출구조사에서조차 힐러리는 분명히 트럼프에 앞서 있었다. 여론조사가 민의를 반영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절대 지지층, 즉 40대 이상의 기독교인, 특히 이른바 기독교 우파이며 저학력자 층에 속하는 백인들은 여전히 확고한 트럼프 지지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인 디터(Karen Deeter)가 CNN과 나눈 이야기에서 그 백인 세력의 속내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그는 트럼프가 거친 말투를 고쳐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면서도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트럼프를 위해 투표하겠다고 공언했다. 중요한 문제는 트럼프의 인격이 아니라 그의 정책과 그 실행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백인들은 전 국방장관 매티스(James Mattis)나 국무장관 파웰(Colin Powell)이 트럼프를 비난하고 나선 것에 대하여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8월 공화당 전당대회 개최 예정지인 잭슨빌(Jacksonville)에서 공화당원들의 선거인 등록을 돕고 있는 딕슨(Bob Dickson)의 다음과 같은 말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매티스도 자기 의견이 있고 콜린도 자기 의견이 있죠. 그러나 공화당의 많은 지도자들은 대통령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대통령은 계속 폭 넓은 지지를 받게 될 것입니다."
미국은 여전히 백인의 세상이다. 그리고 그 세상은 당분간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시간주의 포드 자동차 로슨빌 부품공장을 시찰하며 얼굴 가리개를 들어보고 있다.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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