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준비 안 하면 '폐플라스틱 대란' 벌어진다"
[스팟인터뷰]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 CNN이 보도한 경북 의성 쓰레기산. 온갖 종류의 폐비닐과 폐플라스틱 뿐만 아니라 건설폐기물이 혼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불법 방치·투기 쓰레기산이 전국에 가득하다. ⓒ 최병성
재활용 폐기물 선별업체들이 쌓이는 폐플라스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흔히 쓰레기(폐기물)의 처리 방법은 4가지다. 매립하거나 소각하거나 아니면 바다에 버리거나 재활용하는 것이다.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이 조사한 '2018년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에 따르면, 1일 44만 6102톤이 발생해 재활용률은 86.1%(38만 4237톤), 매립률 7.8%(3만 4638톤), 소각률 5.9%(2만 6404톤)이다. 해역 배출은 42톤으로 0%대 비율을 차지했다.
올해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여파로 세계적인 경기침체 현상이 빚어져 재생 원료의 수출길이 막혔다. 코로나19 이전에 플라스틱 재생원료의 60~70%는 미국과 유럽 등으로 수출됐지만,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한 이후 수출량은 40%대로 떨어졌다. 폐플라스틱 재생원료 판매 단가도 하락했다.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폐플라스틱 중 세척 후 파쇄 상태인 플레이크(PE)는 1월 1kg당 전국평균 가격이 약 557원이었으나 6월은 480원으로 77원이 하락했다. 다른 재생원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런 악재가 겹치면서 폐플라스틱은 재활용업체가 수거한 족족 그대로 쌓이고 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고 있다. 환경부는 폐플라스틱 중 페트(PET) 재생원료 1만톤 공공비축과 가격연동제를 발표한 데 이어 7월부터는 페트(PET) 등 4개 품목의 수입도 금지하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재활용업체와 전문가들은 정부 대책이 '폐플라스틱 대란'을 차단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1~3월 평균 페트(PET) 재활용업체의 재생원료 판매량은 1만 6855톤에서 4월 9116톤으로 46% 감소했다. 한 달 만에 절반가량이 축소된 셈이다. 여기에 더해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1일 6357톤으로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한 달에 약 19만 톤이 발생하고 있다. 환경부의 '1만 톤 공공비축'이 무색한 이유다.
거꾸로 가는 정책도 한몫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일회용품 사용 규제가 한시적으로 풀리면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 등의 사용이 늘어났다. 실제로 여성환경연대가 서울 시내 커피 전문점 68곳의 일회용 컵 사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절반 이상이 매장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관련 기사: 코로나 시대 '일회용'의 경고 http://omn.kr/1nyyx)
그렇다면 폐플라스틱 대란은 현실화되는 걸까? 이 질문에 대답을 듣고자 지난 2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을 만났다. 일명 '쓰레기 박사'로 불리는 홍 소장은 쓰레기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서울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user/seoulkfem)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폐플라스틱 대란이 온다
▲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 유성호
- '폐플라스틱 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란이 곧 닥치는 건가.
"굉장히 많은 변수가 있어 단정하긴 어렵다. 다만 재활용업체의 경영 상태가 굉장히 악화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세계적인 경기 침체 등으로 재활용 쓰레기의 수출길이 막혔다. 여기에 최근 플라스틱 사용량은 증가했지만 단가는 하락해 재활용업체들이 도산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언제 '쓰레기 대란'이 터진다고 예측할 수 없지만, 위기 상황은 맞다. 여기에 우발적인 상황이 겹친다면 그게 불씨가 돼 '빵'하고 터지게 될 것이다."
- '빵'하고 터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최악의 경우 수거 포기 사태가 올 수 있다. '2018년 폐비닐 대란'을 떠올리면 된다.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모니터링이 필요한 시기다. 정부나 지자체가 손 놓고, 적극적인 행정을 하지 않으면 2018년과 같은 '폐비닐 대란'이 재현될 수 있다. 재활용업체들이 잇따라 수거 포기를 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의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2018년 폐비닐 대란'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공동주택(아파트)의 일부 재활용 수거업체들이 비용 부담을 이유로 비닐류 수거를 중단하면서 발생한 사회적인 혼란이다. 당시 재활용수거 업체들이 폐비닐에 이어 페트병과 폐지 등도 잇따라 수거 중단을 선언하면서 '폐기물 대란'으로 번졌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당시 재활용업체 긴급지원에 나서 소각처리 비용을 지원하고, 직접 수거에도 나섰다. 여기에 수거업체와 아파트단지 간 계약 조정을 독려하면서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
- 2018년 폐비닐 대란 때와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
"2018년 폐비닐 대란은 중국에서 폐기물 수입을 금지해 재활용업체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빚어졌다. 지금은 사정이 더 악화했다. 여전히 중국은 폐기물 수입 금지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에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유가 하락 등이 겹치면서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 이번에도 재활용 수거업체들이 폐비닐 수거를 포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폐기물량이나 자원순환 차원에서 살펴보면, 폐플라스틱 수거 포기를 하는 게 더 큰 문제다."
- 한국은 재활용률이 세계 2위(2013년 기준)다. 그런데 왜 문제가 되나.
"구조적인 문제다. 흔히 가정에서 나온 폐플라스틱은 재활용업체가 수거해 선별작업장에 간다. 여기서 폐플라스틱은 재생원료가 되거나 아니면 매립, 소각된다. 간단하게 말하면 폐플라스틱은 '수거→선별→재활용' 과정을 거쳐 재활용되거나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를 모두 민간업자(재활용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재활용 시장이 잘 돌아갈 경우 굉장히 적은 비용에 효율적으로 재활용 폐기물을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경기 침체 등으로 재활용 시장이 침체돼 민간업자(재활용업체)의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게 된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가정에서 나오는 쓰레기에 대한 민간업자 의존도가 높은 한국만의 특징이다."
- 다른 나라는 어떤가?
"일본과 유럽 등은 지자체에서 재활용폐기물의 수거와 선별을 책임진다. 따라서 재활용업체에서 재활용폐기물 수거를 거부해 대란이 발생하는 일은 없다. 법적(폐기물관리법)으로 재활용품 수거에 대한 선별 책임은 지자체에 있다. 반면 한국은 민간에 이를 맡기고 있다."
- 재활용폐기물 문제는 코로나 확산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으로 봐야 할까?
"코로나19가 흐름을 가속화 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흔히들 코로나19 여파에 배달음식 급증과 택배 증가하면서 플라스틱 사용량이 증가했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분석은 아니다. 특히 배달음식 시장은 3년 사이에 무려 5배 이상 커졌다. 일회용품 사용량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흐름을 코로나19가 가속화 시킨 영향은 있으나 플라스틱 제품 사용량 증가 추세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 매립하거나 소각하면 안 되나?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매립 또는 소각해야 한다. 하지만 매립과 소각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킨다. 현재로선 최대한 폐기물을 기존대로 처리하는 게 방법이다. 무엇보다 정부와 지자체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재활용업체의 폐플라스틱 수거 포기 사태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
- 가장 우려되는 문제는 무엇인가?
"재활용업체가 수거·선별한 재활용품이 팔리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파국'이다. 이때는 공공 비축을 더 하든가 아니면 소각해야 한다. 플라스틱을 매립하고 태우면 좋지 않다."
"'쓰레기 수거 포기 사태' 막으려면...."
▲ 재활용품 수거 업체들이 비닐과 스티로폼 수거를 중단하겠다고 예고한 지난 1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쓰레기수거장에 비닐과 페트병 배출에 대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 지난달 환경부가 페트(PET) 1만톤 공공 비축 등 대책을 발표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단기 대책으로선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인공호흡으로 숨을 불어넣은 정도에 불과하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선 '수술'을 해야 한다. 장기적으론 앞서 말했듯이 공공관리체계 구조로 개선하는 것이다."
- '수술'은 무엇을 의미하나.
"재활용품의 '수거-선별-재활용' 3단계에서 '수거와 선별'은 공공관리체계로 바꾸는 것이다. 나머지 '재활용' 단계는 민간에 맡기더라도 고품질의 재생원료를 생산하는 공적 기관이 인프라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생산자(기업)가 재생원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재생원료 사용의무제'를 도입해야 한다."
- 기업의 역할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재활용이 잘 되게 하려면 재질 구조 개선과 재생원료 사용이 필요하다. 예로 페트병의 재생원료 품질을 높여서 섬유를 뽑아서 국내에서 옷을 만들면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페트병 재활용 역사가 20년이나 됐는데, 대부분 단(짧은)섬유밖에 뽑아내지 못해 솜과 부직포를 만드는 데 재활용된다. 옷을 만들려면 섬유를 길게 뽑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생산자(기업)에 재활용 시스템의 시작과 끝점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시작점이 재질 구조 개선이고 끝점이 재생원료 사용 확대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정부의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
지금은 비상 상황이다. 평소와 같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섬세한 정책을 세우기 어렵다. 부작용이 있더라도 담대한 조치들이 필요하다. 거칠더라도 조치가 있어야 한다."
- 반복되는 재활용품 수거 거부 대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018년 폐비닐 대란 사태 이후에 재활용구조의 체질을 개선했어야 했다. 하지만 끝내 이걸 못해 위기가 반복되고 있다. 외부의 위기는 파동처럼 주기적으로 오고 있다. 한마디로 지금 우리나라 재활용구조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병균에 계속 감염되고 있다. 잔기침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병세가 악화한다. 감기를 방치하다가 폐렴이 돼 사망하는 경우와 같은 것이다.
공공의 관리와 역할 강화, 생산자의 책임과 배출자의 역할 강화, 재활용업체의 인프라 강화 등 재활용구조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만약 재활용품 선별작업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 2주 동안 작업장을 폐쇄해야 한다. 그러면 쓰레기 수거를 누가 하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번 여름은 코로나19가 아니라 폐플라스틱과 싸워야 할 수 있고, 앞으로도 이런 일은 반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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