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에서 스릴러로? '저녁같이 드실래요'가 아쉽다
[TV 리뷰] 방영 초반 유쾌한 모습 사라지고 치정물로 변질
▲ <저녁 같이 드실래요?> 포스터 ⓒ MBC
<저녁>은 나란히 실연의 상처를 가지고 있던 두 남녀 주인공이 '디너메이트'(밥친구)라는 독특한 관계를 통하여 서로의 취향과 추억을 공유하게 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초반부에는 '짝사랑' 혹은 '다크 히로인' 전문 배우이던 서지혜의 연기 변신과 함께 두 남녀 주인공의 비주얼 케미, 다양한 음식 먹방과 B급 감성이 묻어는 '병맛' 유머 코드, 패러디의 향연 등으로 눈길을 끌며 대체로 밝고 유쾌한 분위기로 이야기가 전개됐다.
최근의 드라마에서는 악역이라도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을 만한 최소한의 공감대나 개연성이 주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재혁과 노을의 집착은 전 애인에 대한 애정이나 미련의 범위를 넘어서서 명백히 '스토킹'이나 '가스라이팅'같이 범죄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는 실정이다.
재혁은 해경에게 협박을 일삼거나 도희의 집에 무단침입하고 눈앞에서 자해를 하는 등 이미 정상 범위를 한참 넘어선 행동들을 끊임없이 자행한다. 노을은 해경이 도희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경에게 동반 방송출연을 요구하고 도희를 도발하거나 해경의 어머니를 찾아가는 등 이기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정작 해경과 도희는 이미 오래전에 옛 연인에 대한 마음을 정리했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재혁과 노을에게는 소귀에 경읽기일 뿐이다. 드라마가 사실상 후반으로 접어드는 가운데서도 해경과 도희간 '관계의 진전'에 대한 다양한 묘사보다는, 주인공들이 재혁과 노을의 스토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답답한 줄거리만 계속해서 반복된다. 특별한 공감대도 없고 매력적이지도 못한 '악역'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드라마가 본래 표방했던 '음식 로맨스'로서의 정체성까지 희미해졌다.
이야기가 중심을 잃으니 주인공들의 캐릭터마저 덩달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도희는 재혁에 대한 마음을 정리했으면서도 정작 해경에게 온전히 충실하지도 않는다. 12회(23-24회)에서 도희가 명백히 자신의 집에 무단침입한 재혁을 두고, 정작 자신을 도우러 달려온 해경은 그대로 돌려보내면서 재혁의 존재를 숨기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13회에서 재혁이 이를 역으로 빌미삼아 오히려 해경을 도발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도 도희는 오히려 해경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알 수 없는 눈물과 변명으로 회피하기만 하려는 답답한 모습을 보였다.
해경 역시 자신에게 집착하는 노을을 완전히 끊어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초반의 유쾌한 B급 코미디나 로맨스의 달달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갈수록 음침하고 괴이한 '치정 스릴러'에 가까운 분위기로 아예 드라마의 장르 자체까지 바뀌어버린 느낌을 준다.
<저녁>의 원작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식사'라는 문화를 매개로 전혀 다른 배경과 성격을 지닌 두 남녀가 어떻게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마음을 열어가는지에 집중한다. 남녀주인공의 과거 연애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드라마와 같지만, 주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취향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공감대가 매력포인트였다. 웹툰과 드라마에서 모두 끊임없이 등장하는 식사 장면은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한다'는 행위야말로 단지 생존을 위하여 배를 채운다는 것을 넘어서 곧 개인의 사적인 취향과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이기에 더 특별한 의미라는 메시지를 담고있다.
그런데 드라마화된 작품은 이러한 원작만의 매력포인트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초반 이후로 음식 취향과 등장인물들의 연관성은 그저 형식만 남았고, 먹방은 극 흐름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끼워넣은 느낌이 강하다.
결국 드라마는 초반부에는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클리셰로 일관했다면,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반전과 미스터리, 일일극의 막장적 요소가 두서없이 혼합된 극히 진부한 4각관계의 치정물으로 변질됐다. 갈피를 잃고 방황하는 <저녁 같이 드실래요>가 과연 남은 방영기간 동안 무너져버린 스토리와 캐릭터를 과연 어떻게 수습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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