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진 않아도 모두 괜찮은 인생입니다
김효은 그림책 '나는 지하철입니다'를 읽고
복잡하고, 붐비고, 급하고, 답답하고, 먼지나고. 나에게 지하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하루에도 수십만의 사람들이 머물렀다 떠나기를 반복하는 그곳은 그런 이미지만으로 어떤 정겨운 이야기 거리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는 오랫동안(일거라고 생각된다) 섬세하게 관찰하여 그림을 그리고, 따뜻한 시선의 상상력을 더해 글을 붙였다.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인 그들 N분의 1의 이야기 몇 개가, 지하철이 서울 시내 한바퀴를 도는 동안 펼쳐진다. 김효은 작가의 그림책 <나는 지하철입니다> 이야기다.
그 몇 개의 이야기에서 나를 찾거나, 혹은 내 친구, 가족, 그저 아는 사람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아이를 업고 지하철을 탄 엄마는 몇 년 전의 나. 보따리 품고 가는 할머니는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 고개 푹 숙인 채 이어폰 하나에 우울한 기분 의지하고 가는 여학생은 옆집 중학생. 복잡한 출근시간 남들과 반대 방향으로 서서 갈 곳을 고민하는 청년은 몇 년 전 S대 붙었다고 자랑했던 어떤 엄마의 아들.
당신의 이야기를 상상합니다
열량 남짓의 지하철 안. 그 중 어느 한 칸에 타버린 수많은 우리. 그러나 얼굴을 쳐다보거나 말을 거는 일은 거의 없다. 어쩌다 할머니 한 분 끼어 앉아 손녀뻘 아이에게 버터맛 사탕 하나 건네며 몇 살이냐를 시작으로 말을 거는 것 말고는.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 엄청난 인연으로 그곳에 있다. 나를 포함해 그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은 말풍선 하나씩 품고 있다. 비록 나는 다른 이의 말풍선을 볼 수는 없지만, 누구든 그것을 데리고 탄다는 사실을 이젠 안다.
단 몇 분이든 몇 시간이든 그 한 칸은 어느 하나 소소하지 않은 이야기들의 집합소다. 그다지 화려하진 않아도 중요하지 않은 생은 어디에도 없겠구나.
내 맞은 편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어떤 아저씨의 낡은 구두에는 어쩌면 고집스럽게 그것만 신는 아저씨의 이야기가 있을 테고, 갓난아기 품에 안은 아기 엄마가, 옆에 앉아 '엄마 엄마' 하고 계속 불러대는 큰 아이를 모른 척 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당신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면, 나는 훨씬 더 여유로워지고 따뜻한 시선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손 내밀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지하철입니다>는 어른이 읽어도, 아이가 읽어도, 혹은 같이 읽어도 좋은 그림책이다. 한번 보아도 좋지만 '자세히 보면 엄청 예쁘고 오래보면 무척 사랑스러운' 책이다. 아이와 손 잡고 탔던 지하철 안엔 그리 티나게 살진 못해도 짧은 인생 이야기 하나쯤 해줄 수 있는 어른들과 언니 오빠들이 있다는 걸 아이도 넌지시 알게 될까. 문득 오랫동안 아이용품만 주고 받던 육아동지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
그런데 누군가는 오랫동안(일거라고 생각된다) 섬세하게 관찰하여 그림을 그리고, 따뜻한 시선의 상상력을 더해 글을 붙였다.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인 그들 N분의 1의 이야기 몇 개가, 지하철이 서울 시내 한바퀴를 도는 동안 펼쳐진다. 김효은 작가의 그림책 <나는 지하철입니다> 이야기다.
당신의 이야기를 상상합니다
▲ 김효은 작가의 그림책 <나는 지하철입니다>. ⓒ 문학동네
열량 남짓의 지하철 안. 그 중 어느 한 칸에 타버린 수많은 우리. 그러나 얼굴을 쳐다보거나 말을 거는 일은 거의 없다. 어쩌다 할머니 한 분 끼어 앉아 손녀뻘 아이에게 버터맛 사탕 하나 건네며 몇 살이냐를 시작으로 말을 거는 것 말고는.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 엄청난 인연으로 그곳에 있다. 나를 포함해 그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은 말풍선 하나씩 품고 있다. 비록 나는 다른 이의 말풍선을 볼 수는 없지만, 누구든 그것을 데리고 탄다는 사실을 이젠 안다.
단 몇 분이든 몇 시간이든 그 한 칸은 어느 하나 소소하지 않은 이야기들의 집합소다. 그다지 화려하진 않아도 중요하지 않은 생은 어디에도 없겠구나.
내 맞은 편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어떤 아저씨의 낡은 구두에는 어쩌면 고집스럽게 그것만 신는 아저씨의 이야기가 있을 테고, 갓난아기 품에 안은 아기 엄마가, 옆에 앉아 '엄마 엄마' 하고 계속 불러대는 큰 아이를 모른 척 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당신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면, 나는 훨씬 더 여유로워지고 따뜻한 시선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손 내밀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덧 어른이 되어 걷는 발걸음은 바빴습니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지나치며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길 위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주름진 손을, 가지각색의 얼굴을, 다양한 표정의 발을 그림으로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이 하나둘 쌓이고, 나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길 위에 있던, 가까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 -김효은
<나는 지하철입니다>는 어른이 읽어도, 아이가 읽어도, 혹은 같이 읽어도 좋은 그림책이다. 한번 보아도 좋지만 '자세히 보면 엄청 예쁘고 오래보면 무척 사랑스러운' 책이다. 아이와 손 잡고 탔던 지하철 안엔 그리 티나게 살진 못해도 짧은 인생 이야기 하나쯤 해줄 수 있는 어른들과 언니 오빠들이 있다는 걸 아이도 넌지시 알게 될까. 문득 오랫동안 아이용품만 주고 받던 육아동지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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