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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내고, 책방도 열고... 질투를 부른 이 작가

전기숙 작가가 연 책방 '공책'과 쓴 책 '애쓰며 서 있습니다'

등록|2020.07.19 10:52 수정|2020.07.19 10:52
살다 샘이 난 적이 한 번 있었는데, 최근에 하나가 더해졌다. 저 여성들은 어떻게 저렇게 재주가 좋을까 하는 부러움이 주 정서인데, 아마도 나로서는 아무리 애쓴다 해도 도달할 수 없는 능력들을 그들이 태연히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첫 번의 시샘은 이랬다. 깜냥도 안 되는 텃밭 농사를 해보겠다고 도시농부 강좌를 수강했는데, 한 번은 경기도에 위치한 꽤 유명한 농장을 탐방하게 되었다. 한심하게도 나는 그 농장주가 당연히 남성일 거라 지레짐작했는데, 천만이게도 여성이었다. 딱 봐도 장부 스타일인 기골에서 풍기는 단단함과 사람 좋은 표정에서 나오는 넉넉함만으로도 이미 좋은 농부로서 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는데, 더 탄복할 일이 현장에 있었다.

농장주는 그 멋진 농막(어설피 지은 농막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유리로 된 식물원을 연상하는 게 더 적절하다)을 스스로 설계해 지었음은 물론, 농작물에 따라 깔끔하게 구획해 재배하고 있는 농장 경영까지 주도적으로 해나가고 있었다.

농막에 구비된 목공과 재봉 도구를 다루는 것은 예사고, 굴삭기와 트랙터를 직접 조작하는 모습에 나는 홀딱 반하고 말았다. 너무나 부러운 나머지 시샘이 나는 열등감을, '저런 재주는 하늘이 내는 거야'라며 눙치고 돌아왔는데,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그녀의 농장이 삼삼했다.

그러다 또 한 사람, 샘나는 사람을 만났다. 농장주처럼 일면식 없는 사람이 아니라 지인인데, 나는 그녀가 그런 재주꾼인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작은 체구에 다감한 말씨, 그런데 터질 때는 괴성처럼 터뜨리는 괴짜 웃음의 소유자인데, 이런 그녀가 독립출판으로 <애쓰며 서있습니다>를 펴냈다는 것이다. 바로 전기숙 작가를 이르는 말이다.

내 시샘은 고조되었고 이 사람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낸 것도 놀라웠는데 더 놀라운 일은, 그녀가 사는 동네에 작은 책방을 열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 참 여러 번 놀래키네' 하며 만나러 간 곳은, 그녀가 꾸리고 있는 책방 '공책'이었다. 책방 이름도 그녀답다. '비어있는 책(空冊)', 그러니 누구라도 이곳에 들어와 마음을 채우기만 하면 되는 곳이다.

구멍가게 같은 책방 '공책'
 

▲ 작은 책방 <공책>의 내부 전경 ⓒ 윤일희


천왕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책방 '공책'. 카카오톡 채널로 소개되는 그녀의 책방 '공책' 소식을 보면서, '책방은 정말 그 책방지기를 그대로 담고 있구나'라고 느꼈는데, 육안으로 보니 더욱 그랬다.

두 평 정도 되는 공간을 어찌나 오밀조밀하게 채워놓았는지 절로 감탄이 나왔다. 큰 공간에 비해 작은 공간이 꾸미기에 수월하달지 모르지만, '공책'의 공간에선 또 다른 게 느껴진다. 오랫동안 책방을 구상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단박에 찍어 놓은 사진처럼 꺼내놓을 수는 없으리라.

'공책' 서가의 책들은 책방지기의 생각과 상관없이 진열된 책은 없는 듯했다. 자신이 읽어 보았고 충분히 추천할 가치가 있는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역시 오랜 독서 인생이 교차된 수많은 지점들로 집대성되었을 터다.

그림책 리뷰로 책을 낸 사람의 책방답게 그림책들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었고, 대형 서점과 다른 특징이랄 수 있는 독립출판물 책들이 많이 입고되어 있었다. 독립 출판물로 만들어진 책들은 그야말로 취향 저격을 목적으로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출판시장에서 판매를 목적으로 해야 하는 출판사 책들과는 사뭇 다른 결이다.

그야말로 '나는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어' 또는 '이런 책을 만들고 싶었어'라는 의도가 생생했다. 책방지기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로 책을 냈듯이,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의 취향과 가치가 공유되기를 바라는 그녀의 애정이 서가에 꽂힌 책들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전기숙 작가가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책방은 '구멍가게'같은 곳이었다. 이미경의 그림책 <동전 하나로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에서 발견되는 오래된 구멍가게를 상상해 본다. 이런저런 물건이 두서없이 진열되어 있고, 없는 것도 많지만 어떻게 이런 게 여기 있나 싶은 것들이 드문드문 포개어져 있어 꺼내 들여다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던 곳. 청소가 잘 되지 않아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던 동네의 허름한 구멍가게. 어찌 보면 사소하달 수밖에 없는 물건들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 집으로 돌아가곤 했을 어린 날의 전기숙이, 그 구멍가게 같은 공간을 '공책'에 재현해낸 셈이다.

그녀의 '공책'은 정말 구멍가게처럼,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 이런 게 다 있네' 싶은 별별 귀엽고 기발한 물건들이, 책방지기가 숨겨놓은 듯 혹은 무심히 놓고 잊은 듯 놓여, 발견해줄 이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책방을 들어서면 문득 타임슬립으로 '딴 세상'에 도착한 듯한 판타지가 펼쳐지는데, 나를 기다리던 보물 상자를 여는 기분이랄까... 이 공간에 들어서는 누구라도 자신이 초대한 구멍가게로의 찰나의 여행에서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바라는 책방지기의 진정이 차 향기처럼 배어 있다.

책 <애쓰며 서있습니다>가 나오기까지
 

▲ 전기숙 작가의 책 '애쓰며 서 있습니다'와 책을 본 따 만든 성냥갑 ⓒ 윤일희


마음으로는 몇 권의 책을 펴냈을 것이며, 상상으로는 자신만의 책방을 몇 번이라도 짓고 허물었을 그녀이기에, 책방 '공책'을 낸 시기와 책 <애쓰며 서있습니다>를 펴낸 시기가 거의 같다는 것이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꾸준함의 마법'의 힘이 자신에게도 통하는지 도전에 들어간 그녀는, 블로그에 '365 그림책 리뷰'를 시작했다. 말이 쉬어 일 년 365일이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시작할 때는 몰랐겠지만, 인생을 건 일대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림책이었을까. 읽다 수도 없이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리게 한 그림책은 그녀에게 무엇이었을까 또는 누구였을까. 그림책을 읽다 보면 한 번쯤 해봤음직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림책의 어느 그림에 또는 서사에 묘한 기시감이 들며, 저기 저곳에 있었던 혹은 내쳐졌던 자신과 조우하게 되는 일말이다.

전기숙 작가는 그림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나와 내가 몰랐던 나 그리고 나도 모르는 새 세상에 벌어지고 있었던 놀랍고도 무서운 사건과 연결되어지는 나를 무수히 접속하게 되었다. 발견 속엔 기쁨도 슬픔도 두려움도 있었다. 그렇게 발견된 모두가 나이며, 그런 나를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닫는 일이야말로, 그녀가 그림책을 읽는 또는 읽어야만 했던 이유였다.

그녀는 그림책을 읽으며 발견된 자아를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까웠다. 자신의 심상에 대한 기억을 '365일 그림책 리뷰'로 기록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수백 권을 경유한 수백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많은 기록들에 질서가 필요했고, 수백의 환희, 희열, 아픔, 상처, 성장 등 중에서 고르고 또 고른 이야기가 책 <애쓰며 서있습니다>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꾸준함의 마법'이 정말로 통한 것이다. 그녀의 분화구에서 실로 엄청난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다물어진 것이다.

온전히 "내 맘대로 할 수 있어"서 독립출판을 시도한 전기숙 작가에게 홀로 책을 내는 일은 도전인 동시에 발명이었다. 365일간 만난 자신의 감정을 갈피갈피 차곡차곡 채우는 과정에서 고안해낸 "문체의 발명"은 큰 결실이었다. 어떤 일에 자신이 얼마나 슬프고 아픈지를 긴 서술로 풀어내다 문득, "눈물 한 방울 또르르"로 갈음할 수 있어질 때,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 무릎이 탁 쳐지며, 고농도 산문시 문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책을 내는 과정도 충만했지만, 책을 낸 이후도 긍정적 변화가 많았다. 완성된 것은 책만이 아니라 전기숙 작가 자체였다. 책을 낸 후 스스로에게 부여한 작가성은 내면의 큰 변화를 견인해냈다. 그 많은 그림책이 그녀의 머릿속에 목록으로 새겨지자, 그림책에 대해 묻는 누구에게든 설명하고 해석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맞춤 추천까지 자신 있게 해내게 된 것이다.

'공책'을 찾는 손님에게도 유익함을 제공하게 되었으니, 책방지기로서 효능감까지 탑재하게 된 셈이다. 책을 내는 과정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고된 과정을 마치자 그 수확이 선물처럼 안겨졌다. 독립출판만이 독점할 수 있는 장점이라고 그녀가 힘주어 말했다.

책을 좋아하는 일은 좀 과장되게 말해, 가려움을 참을 수 없는 일과 유사하다. 책을 집어 들며, 어떤 세상과 만나게 될까, 저자와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두근거리며 책장을 넘겨본 독자는 누구나 알만한 충만한 설레임. 전기숙 작가 역시 참을 수 없는 가려움으로 어려서부터 책을 찾았고, 집에는 없는 책을 볼 수 있는 이모 집을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그녀에게 이모 집은 작은 책방이었던 셈이다.

책장에 빈틈없이 채워진 책들은 책을 좋아하는 소녀를 끌어들이기에 더없는 광맥이었을 터, 그 맥을 타고 들어가 마담 퀴리와 헬런 켈러 그리고 빨강머리 앤을 만났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책 속 그녀들은, 전기숙에게 삶을 가꾸는 노력과 담대함 그리고 매 순간 자신을 지키고 사랑하라는 자존감을 끊임없이 속살거려 주었다.

아버지의 부재가 준 결핍은 책들의 주인공들이 준 무한한 위로와 격려로 메워졌다. 즐거움을 준 책방을 '구멍가게'로 재현해내고,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했던 책들처럼 자신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어 책을 만들었다. 잊지 않으면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가 증명하고 있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두 발바닥과 종아리에 힘을 주고 꼿꼿하게 서 있"는 당신에게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전한다. "힘내라고 말하지 않을게요. 그동안 자신을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아니까요. 한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포기하지 않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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