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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가해는 어떻게 반복되나

[진단] 전문가보고서 "2차 가해, 직접 피해 이상"... 피해자 증언 믿는 게 가장 중요

등록|2020.07.21 17:53 수정|2020.07.21 17:56

2차 가해를 멈춰주세요1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통로 게시판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관련, 피해자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내용의 메모들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다음 중 2차 가해(피해)에 해당하는 것은?

• 피해자의 신원이나 사건 내용을 주변에 알리거나 SNS에 유포하는 행위
• 사건에 대한 관용적 태도나 사건을 섣부르게 판단하는 행위
• 피해자에 대한 험담이나 비난을 하는 행위
• 피해자의 외모나 품행 등을 문제 삼는 행위
• 피해자의 사생활을 캐거나 이를 문제 삼는 행위
• 피해자의 대응 태도를 평가하거나 혹은 이를 비난하는 행위
• 피해자에게 행위자(가해자)를 용서하라고 강권하거나 화해를 종용하는 행위
• 행위자(가해자)를 지지하는 여론을 조성하는 행위
• 행위자(가해자)를 옹호하거나 두둔하는 행위


정답은 '모두 다'이다. 2018년 6월 여성가족부(아래 여가부)가 발표한 '성희롱 2차 가해(피해)의 양상'에 따르면 그렇다.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하고, 행위자(가해자)를 지지하는 여론을 만드는 것 모두 2차 가해다.

당시 여가부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을 발표했다. 여가부가 매뉴얼에서 재차 강조한 건 2차 가해다. 피해자가 성희롱을 문제제기 했을 때, 직장 내 동료 등이 2차 피해를 주는 행위가 반복되면 피해자들은 더 이상 성폭력을 신고하지 않고 입을 다문다는 지적이다.

여가부는 2차 가해를 명시한 대법원 판결도 언급했다. 2017년 12월 22일 판결문을 보면, A씨는 직속상사에게 1년간 성희롱을 당했다. 그는 회사에 이 사실을 알렸다. 사내에는 피해자인 A씨를 향한 악의적인 소문이 퍼졌다. 조직적인 따돌림과 업무배제도 있었다. 결국 A씨는 가해자인 직속 상사를 비롯해 회사의 인사팀장, 회사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판결문에 2차 가해를 언급했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경우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침해할 수 있는 언동을 공공연하게 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봐야 한다'라고 명시했다. 2차 가해의 폭력성을 비롯해 이로 인한 피해자의 고통을 언급한 것이다.

전방위적인 2차 가해
 

▲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여가부가 밝힌 2차 가해 행위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박 전 시장의 사망소식이 알려진 뒤, 일부 지지자들은 피해자 '신상털기'에 나섰다. 피해자로 추정된다며 모자이크 처리도 없는 사진에 욕설을 더해 SNS에 게시한 이도 있었다. 사진 속 인물이 피해자인지 아닌지를 떠나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하려 하고 이를 SNS에 유포'하는 2차 가해에 해당한다.

지난 14일 한 프리랜서 아나운서는 피해자를 언급하며 "4년 동안 대체 뭐를 하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세상에 나섰느냐"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피해자의 대응 태도를 평가하고 비난'한 2차 가해다. 박 전 시장의 시민장을 치르는 동안 그의 인권변호사 6년, 시민운동가 16년의 활동을 중심으로 언급한 건 어떨까? 박 전 시장을 '맑은 분'이라고 칭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 역시 '행위자(가해자)를 옹호하거나 두둔하는' 2차 가해로 볼 수 있다.

이런 2차 가해는 성폭력만큼이나 중대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다. 2016년 1월, '성희롱 2차피해 실태 및 구제강화를 위한 연구결과 발표토론회'는 2차 가해를 '성희롱 행위 이상'이라고 못 박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이 토론회는 2차 가해를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거기에 관계된 사법기관, 가족, 친구, 언론, 여론 등의 소문이나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에 의해서 피해자가 정신적・사회적 피해를 받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2차 가해가 발생한다'라고 짚었다. 2차가해는 '성희롱 행위로 인한 직접 피해 이상'이라는 지적도 했다. 피해자가 겪은 사건만큼이나 2차 가해에 폭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법제연구원이 2011년 펴낸 '성희롱 관련 법제에 대한 입법평가'는 성희롱의 2차 가해가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정도로 강력하다고 짚었다. 이어 "(조사한) 피해자 중에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자살 시도한 사례도 있다"라면서 "2차 가해로 인한 극심한 모욕감으로 인한 불면증, 대인관계 기피증세로 직장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라고 언급했다.

이화여자대학 젠더법학연구소는 보다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들었다. 연구소가 2015년 11월에 발표한 '국가인권위 인권상황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는 2차 가해 유형을 정리하며 사례를 첨부했다.

"성희롱 사건에 대하여 회사에 말했더니 회사가 가해자에게 사과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가해자가 사과하면서 '미안은 한데, 소문을 낸 여직원을 다 잡아 와라. 소송 다 걸겠다'라고 했다. 회사는 일이 커지니까 덮어버리자고 하면서 면담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참아라, 사회생활 하면서 다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참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며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2015년 사례 참고

"고충처리위원회의 위원장이 가해자였고, 노조 대의원들도 다 그 라인이었다. (가해자의) 사과 한 번 없었고, 보상 같은 것 받은 적 없다. (주변에서는) 내가 돈을 요구했네 몇 억을 받았네 수군거렸다." - 한국여성민우회 2012년 사례 참고

"(성희롱 피해를 밝힌 후 가해자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했지만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가해자인) 이사장은 (성희롱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았다. (피해자인 내가) 업무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 - 서울여성노동자회 2014년 사례참고


사례에서 살펴보듯 2차 가해는 피해자를 향한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피해 행위를 가볍게 여기는 행위 등으로 반복된다. 사건의 원인과 사실관계를 밝히기보다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를 '배반자', '조직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자' 등으로 낙인찍으며 피해자에 대한 입막음 등으로 상황을 덮어버리려 한다.

박원순 전 시장의 사건에서도 비슷한 행태가 드러났다. 앞서 피해자측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실을 알렸지만, 서울시 담당자는 문제 상황을 파악조차 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2차 가해는 어떻게 막아야 할까. 전문가를 비롯해 보고서에서 강조하는 건 다시 '피해자 중심주의'다.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인권단체 활동가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피해자의 증언을 믿는 게 가장 중요하다, 박원순 사건은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존경받은 인사였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말을 부정하며 2차 가해를 하고있다"면서 "피해를 의심하지 말고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인사가 연루된 성희롱·성폭력 사안에서 정치적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진형혜 변호사는 "지금까지 피해자가 성희롱·성폭력을 호소할 때 언론의 취재경쟁과 보도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박원순 사건은 다르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지금은 정치권이 어느 진영에 있느냐에 따라 박원순 사안을 바라보고 해석하며 가해자를 영웅시하는 2차 가해를 한다"라고 꼬집었다. 전 변호사는 "이들이 2차 가해를 하고 있다는 통렬한 반성이 먼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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