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택엔 파격 혜택 준다는 정부, 방향 잘못 잡았다
금융위기 불러온 부시 정부의 '소유자 사회' 실패에서 배워야 할 점
▲ 4일 정부는 수도권 집값과 전·월세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공공이 참여하는 고밀 재건축 제도를 도입하고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 부지와 용산 캠프킴 등 신규 택지 발굴 등을 통해 수도권에 13만호 이상의 주택을 추가 공급하기로 했다. 서울 동작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 유성호
"임대사업자로 등록하게 되면 저희가 세제라든가 금융이라든가 이런 혜택을 드립니다. 다주택자이신 분들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시면 좋겠습니다."
3년 만에 주택임대사업자는 서울의 주택가격을 폭등시킨 만악의 근원으로 몰리며 마녀사냥의 타깃이 되었다. 모든 정보를 가리고 정책만 보여주면서 외국인에게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면 과연 같은 정부의 정책이라고 생각할까?
다주택자를 악의 축으로 둔다면 고통받는 착한 피해자가 있어야 한다. 정부는 세금 부담 증가 등 부동산 규제 강화에 따른 선의의 피해자로 1주택자를 상정했다. 지난 7월 2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질의에서 김현미 장관은 오는 10월 중저가 부동산에 대한 재산세율 인하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대답했다.
정부가 1주택자가 되려는 사람, 또는 이미 1주택자인 사람들에게는 취득세 감면, 대출 지원, 양도세·종합부동산세 장기보유 특별공제, 인기 지역 청약 당첨 시 수억의 시세차익 등 세제·대출·공급 전 측면에서 파격적인 혜택을 제시하며 1주택을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마녀사냥 프레임은 정부 입장에서는 매우 좋은 전략이다. 다주택자들을 마녀로 몰면 정부의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수인 1주택자들에게 도덕적 우월감을 맛보게 할 수 있다. 또 무주택자들은 정부가 아닌 다주택자들에게 돌을 던지게 되니 정부로서는 악화된 민심의 화살을 피할 수 있는 최상의 계책이다. 단기적으로는.
집값 폭등은 전부 다주택자 때문?
2017년 8월 다주택자들이 민간임대주택으로 등록할 경우 종부세, 양도세 감면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준 게 시장참여자들이 오히려 주택을 더 많이 구매하도록 하여 주택가격을 높인 주요한 원인이긴 하다. 하지만 최근까지의 주택가격 상승이 과연 다주택자들의 투기로만 일어난 것일까?
유동성 과잉공급이든, 부동산 시세차익 환수 장치 미비이든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 사람들은 집값이 오를 것이라 생각하면 너나없이 부동산 매매시장으로 뛰어든다. 여기에는 다주택자, 무주택자 가릴 것이 없다. 지금처럼 다주택자 규제가 강력할 때는 다주택자들은 대출 규제, 세제 강화로 인해 위축되는 반면 무주택자들은 더욱 빠른 속도로 뛰어들 수 있다. 무주택자의 1주택 유입 속도가 빠르면 신규주택을 아무리 공급한들 집값 상승을 막을 방도가 없다.
서울 집값 상승은 천재지변이 일어나 주택 수가 갑자기 급감하여 주택 공급 물량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다주택자가 주택을 싹쓸이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와 불안감에 다주택자, 1주택자, 무주택자 모두 부동산 매매시장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원인이 집값상승에 대한 기대감이라면 이 기대감을 꺾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지금의 문제는 다주택자들의 기대감은 꺾었지만 무주택자들의 기대감은 꺾지 않고 오히려 북돋워주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 5월 용산 신도시 주택공급 계획 발표가 나자 수도권과 지방의 가점이 높은 청약 대기자들이 용산 신도시 청약 자격을 얻기 위해 서울로 거주지를 옮긴다는 뉴스도 전해졌다.
분양가상한제로 인해 청약 당첨만 되면 수억 원의 시세차익이 발생하니 지방에 있는 사람들도 아파트 청약을 위해 서울로 이전하는 형국이다. 다주택자들을 아무리 잡아놓은들, 무주택자들이 서울로 몰리면 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부시 정부의 '오너십 소사이어티'의 불행한 결말
▲ 9일 노원구의 한 부동산에 전월세, 매매 매물 안내문이 써붙어 있다. ⓒ 연합뉴스
부시 대통령의 모든 사람이 자기 집을 가지는 소유자 사회 정책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발 금융위기로 막을 내렸다. 2000년대 초반 저금리와 파격적인 대출완화 정책 및 파생상품 등 금융기법의 발달이 만들어낸 유동성 과잉과 맞물린 탓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 역시 소유자 사회와 비슷한 구상을 한 바 있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쓴 <아파트 공화국>은 서구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독특한 현상인 아파트가 주류 주거문화가 된 원인에 대해 정치적·역사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발레리 줄레조는 정치적 기반이 불안정한 박정희 대통령이 자산을 가진 대규모 중산층을 만들어 자신의 정치적 지지층을 만들려는 전략 속에서 빠른 속도로 획일화된 대단지 아파트를 공급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박정희 정권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택지공급을 해주고 대형 건설사에게 막대한 이윤 보장을 해줬다.
현재 47~48% 수준인 서울의 자가보유율이 70%로 높아진다고 가정해보자. 1주택자가 대폭 늘어나면 부동산시장의 선진화를 위해 필요한 정책 추진에 탄력을 받을까. 그렇지 않다. 집이라는 자산을 중심으로 이해관계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선진화의 필수조건인 보유세 강화·거래세 완화 관점에서 볼 때 매우 후진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절반도 되지 않는 보유세 실효세율과 거래를 가로막는 양도세, 취·등록세의 중과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지만 내 집 소유자가 많아질수록 보유세 강화에 대한 정치적 저항은 클 수밖에 없다. 1주택자든, 다주택자든 보유세 완화를 주장하는 정치세력을 더 지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위기에 취약한 대출 받아 산 집
민간임대주택 양성화를 목표로 다주택자들을 좋게 설득하려다 실패한 정부는 돌연 다주택자들을 만악의 근원으로 취급하며 표정을 바꾸었다. 다주택자를 부동산폭등의 원흉으로 몰기 위해서는 선한 롤모델이 있어야 하기에 1주택자를 선한 롤모델로 상정하였다. 문제는 모두가 1주택자가 될 수도 없을뿐더러 집값 상승을 기대하며 과도한 대출을 당겨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경제위기에 매우 취약해진다는 점이다.
정책의 방향은 1주택자 양성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 선진화와 주거안정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1주택자가 가져가는 토지불로소득은 용인해주고, 다주택자가 가져가는 토지불로소득은 환수하는 방식으로는 미국처럼 실효세율 1% 수준의 보유세를 이루어내기는 불가능하다.
정부·여당의 의도는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다주택자를 만악의 근원으로 몰고 1가구1주택에 대한 혜택을 제공하는 정책 기조는 결과적으로 부시 정부의 소유자 사회의 결말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은 전 세계가 코로나 19로 인한 경기침체와 대규모 유동성 공급으로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의 격차가 매우 벌어진 상태이다. 전 세계 어디 한 곳에서 악재가 터지면 국경을 불문하고 도미노처럼 자산시장의 거품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급격한 경기침체가 온다면 과도한 대출로 내 집 마련을 한 1주택 실수요자들은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1주택을 권장하는 정부·여당의 프레임이 위험한 이유이다.
1주택이든, 다주택이든 미국 수준으로 부동산 시가의 1% 수준의 보유세나, 더 정확히는 토지사용 대가인 지대를 토지보유세로 공공이 환수한다면 주택가격에 과도한 거품이 끼지 않는다. 토지보유세가 해당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지대 수준으로 높아진다면 다주택자들도 투기목적으로 주택을 더 매입하기는 쉽지 않다. 내 집 마련을 하려는 사람들도 집값 상승을 기대하며 자신의 소득 수준에 비해 과도한 대출을 받아 집을 사지 않는다.
다주택자의 주택 매입 수요도 낮아지고, 무주택자의 주택 매입 수요도 낮아지고, 임차인보호제도 강화로 세입자의 안정적인 주거기간이 보장되면 자연스레 주택가격은 안정된다. 주택가격이 안정 국면에 접어들면 시장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양도세, 취·등록세는 낮추면서 부동산시장도 선진화하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정부·여당은 집값을 잡기 위해 무리하게 '다주택자 마녀사냥, 1주택자 권장' 프레임을 설정할 필요가 없다. 지대추구 근절과 주거안정을 목표로 두고 정책을 펼친다면 자연스레 집값 안정 및 부동산시장 선진화, 건강한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바깥에서 어떤 대외변수가 터져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미국의 신용등급이 떨어졌다는 소식은 불길한 징조이다. 대한민국 경제가 위기에 취약한 체질이 될지, 건강한 체질이 될지는 부동산정책 철학과 프레임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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