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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 소설 '순국'으로 다시 태어나다

이석영 선생의 일생을 그린 소설

등록|2020.08.20 13:30 수정|2020.08.20 13:30
이석영 선생은 우당 이회영과 성재 이시영의 둘째 형이다.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 대감의 양자로 들어가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았다. 전 재산을 모두 독립운동에 바쳤으나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이다.

국가보훈처에서는 독립군을 양성하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이석영 선생을 독립전쟁 전승 100주년을 맞은 금년에,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소설가 박정선은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에 맞추어 푸른사상사에서 역사 장편소설 <순국> 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이석영, 이회영, 이시영 등 여섯 형제의 삶을 그렸다. 만주 망명에서부터 독립운동 기지 건설까지,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도 익명으로 존재했던 그의 순국을 거룩하고 장엄하게 묘사했다.

삼한갑족이라 일컬어지는 명문가의 후예로서 고위관료였던 이석영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재산과 생명을 모두 바치고 유골마저도 망명지 허공에 흩어버렸다. 그러나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오늘날까지 그를 기억하는 이가 많이 없다. 박정선은 이석영의 동생인 우당 이회영의 독립운동을 그린 소설 <백 년 동안의 침묵>에 이어 이번에는 이석영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들 형제들의 가슴 뜨거운 희생을 소설로 그려낸 것이다.

이석영은 당시 영의정 이유원의 양자로 출계했다. 굴욕적인 경술국치의 한일합방이 체결되자 그는 독립군을 양성할 신흥무관학교를 만주 서간도에 세우기 위해 전 재산을 처분했고, 여섯 형제 전 가족 40여 명이 함께 망명했다.

이들은 독립운동 비밀결사 신민회 회원들과 같이 망명 동포들의 자치단체인 경학사를 세우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10년 동안 독립군 간부 3500여 명을 양성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이룩한 주도세력이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다. 또한 의열단, 다물단, 흑색공포단 등을 조직하여 밀정을 처단했고, 광복군을 창설하여 독립전쟁의 구심점 역할을 했으며, 독립운동에 대한 용기와 희망의 불을 지폈다.

이석영은 경술국치 이전부터 아우 이회영의 항일운동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했다. 이회영이 항일의병을 도왔던 것도, 인삼밭과 제재소를 차린 것도,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기로 한 것도 모두 이석영의 자금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이석영은 재산을 모두 바치고 말년에는 굶어 죽는 비극을 맞이했다. 아들 형제까지 바치고 혈육마저 끊어지고 말았다. 그는 조국을 위해 철저히 산화했다. 조국 해방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질수록 더욱 불타올랐던 혁명가가 끝내 맞이한 비참한 죽음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자세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박정선은 숙명여대 대학원(문학석사)을 졸업한 소설가이며, 시인이고 문학평론가이다.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당선했다. 장편으로 <백 년 동안의 침묵>(2012년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외 <동해 아리랑> <가을의 유머> <유산> <새들의 눈물> <수남이> 등이 있다. 심훈문학상, 영남일보문학상, 천강문학상, 김만중문학상, 해양문학대상(해양문화재단), 한국해양문학상 대상, 아라홍련문학상 대상, 부산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중견 소설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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