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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탄압받고, '친일' 하고... 종잡을 수 없는 김동인의 삶

김동인의 작품 세계는 왜 친일로 돌아섰나

등록|2020.08.24 11:50 수정|2020.08.24 11:50
아래는 1900년 10월 2일 출생하여 6.25전쟁 중인 1951년 1월 5일 세상을 떠난 어느 소설가의 일제 관련 이력이다. ✩가 붙은 것은 그가 일제로부터 탄압받은 이력이고, 나머지는 그의 친일 행각이다. 약간 오락가락한 듯 여겨지는 행보를 보여주는 이 소설가는 누구일까?

✩ 1919년 2월 12일
동경 유학생 독립 시위 행사 참여로 피체, 이튿날 석방
✩ 1919년 3월 5일
3.1운동 관련 격문 기초 혐의로 구속, 6월 26일 석방
1938년 2월 4일
<매일신보>에 산문 〈국기〉 발표, 일제에 협력 시작
1939년 4월-5월
'황군(皇軍) 위문 작가단' 활동
1942년 1월 23일
<매일신보>에 〈감격과 긴장〉 발표 (이하 1건 생략)
✩ 1942년 7월
일본 국왕을 '그 같은 자'로 호칭, 불경죄로 징역 8월
1943년 4월
조선 문인 보국회(朝鮮文人輔國會) 참가
1944년 1월 1~4일
<매일신보>에 〈총동원 태세로〉 발표 (이하 4건 생략)
1945년 3월 8일
<매일신보>에 〈전시 생활 수감〉 발표 (주1)

이 소설가는 김동인이다. 김동인의 주요 단편소설을 발표 시기 순으로 살펴본다. 1919년 2월 1일에 처음 발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 문예 동인지 <창조> 창간호에 수록된 〈약한 자의 슬픔〉이 첫 작품이다. 그 후 1921년 〈배따라기〉, 1923년 〈태형〉, 1925년 〈감자〉, 1930년 〈광염 소나타〉, 1933년 〈붉은 산〉, 1935년 〈광화사〉 등으로 이어진다.

사회적 내용과 개인적 내용을 번갈아 소재로

〈약한 자의 슬픔〉은 세상이 강자와 약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부도덕하고 냉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강엘리자베스는 부모를 잃은 고학생으로 남작의 집에서 가정교사로 생활한다. 어느 날 그녀는 남작으로부터 반강제성 겁탈을 당한다. 그 후 부적절한 관계가 유지되다가 임신 중에 남작이 나 몰라라 하자 그녀는 소송을 제기한다. 법원은 증거가 없다며 남작의 손을 들어준다. 충격을 받은 엘리자베스는 낙태를 하게 된다.

〈약한 자의 슬픔〉 2년 뒤에 나온 〈배따라기〉는 시작과 끝은 '나', 본 줄거리는 '그'가 주인공인 액자소설이다. 나는 어느 화창한 봄날, 대동강에서 봄 경치를 구경하던 중 배따라기 노래를 듣는다. 나는 노래를 부르는 뱃사람을 만나 그의 사연을 듣는다. 그의 의심 때문에 아내가 물에 빠져 죽고 아우는 집을 나간다. 그 이후 그는 계속해서 아우의 생사를 찾아 방황하고 있다. 사연을 이야기한 후 그는 떠나고, 나는 해마다 그 자리에 가보지만 다시 그를 만나지 못한다.

이어지는 〈태형〉과 〈감자〉의 현실 고발

〈배따라기〉 2년 뒤에 발표된 〈태형〉은 〈약한 자의 슬픔〉보다 더 사회적이다. 이 작품은 환경이 사람의 도덕성을 마비시킨다는 인식을 보여준다고 해서 흔히 자연주의 작품으로 언급되지만, 은근히 독립운동을 이야기하면서 일제의 잔혹한 폭행을 고발한 작가의 숨은 의도도 주목되어야 한다. 줄거리는 '찌는 듯한 무더위에 사람까지 가득찬 감방에 갇혀 있던 죄수들이 지금보다 나은 수형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한 노인 죄수에게 태형 구십 도를 맞고 출옥할 것을 강요하고, 일제로부터 혹독한 매질을 당한 노인은 죽음에 이른다'로 요약된다.

〈태형〉 2년 뒤 〈감자〉가 발표된다. 이 소설 역시 〈태형〉처럼 환경이 사람을 타락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극도의 가난에 빠진 조선인 빈민층의 삶을 정면으로 취급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자연주의 소설로만 치부할 일은 아니다. 가난하지만 정직한 농가 출신의 복녀가 성매매의 길로 들어섰다가 중국인 왕서방에게 죽임을 당하고, 왕서방은 의사에게 돈을 주고 복녀의 죽음을 자연사로 무마해버린다.

위대한 예술가는 창작을 위해 범죄도 가능?

〈감자〉 5년 뒤 〈광염 소나타〉가 발표된다. 이 소설은 다시 사회를 떠나 개인으로 돌아간다. 음악 비평가 K씨가 훌륭한 예술작품 창작에 도움이 된다면 예술가의 범죄 행위는 허용될 수 있으며, 예술 차원에서 저지른 범죄 때문에 위대한 천재 예술가를 매장시키는 것은 더욱 큰 죄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이 소설의 대강이다.

〈광염 소나타〉 3년 뒤 〈붉은 산〉이 발표된다. 다시 소설은 사회 이야기로 돌아선다. 심지어 이 소설은 식민지 상태에 놓여 있는 우리 민족의 현실과 미래를 거론함으로써 일견 문학을 통한 독립운동의 경지까지 나아간다. 조선인 소작인들이 사는 만주 어느 마을에 '삵'이라는 별명의 정익호가 들어와 마을사람들의 미움을 받지만,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에게 항의하다가 죽음에 이르고, '붉은 산과 흰 옷이 그립다'면서 마을 사람들이 불러주는 애국가를 들으며 숨을 거둔다.

〈붉은 산〉 2년 뒤 〈광화사〉가 발표된다. 이 소설에서 김동인은 다시 사회를 떠난다. 자칭 '솔거'인 화공은 소경 처녀를 아내로 맞아 그녀를 모델로 미인도를 그리지만 눈동자가 완성되지 않는다. 솔거는 아름다운 눈빛을 지어보이라고 윽박을 지르다가 아내를 죽게 만든다.  아내가 쓰러지면서 튀긴 먹물이 그림 안으로 들어가 족자 속 미인도의 눈동자가 완성된다. 그러나 그 눈동자는 원망에 가득찬 눈빛을 뿜어낸다. 미쳐버린 솔거는 줄곧 그 미인도를 품에 안고 지내다가 삶을 마감한다.

친일로 확 돌아서는 김동인의 작품세계

다시 3년 뒤인 1938년 2월 4일 김동인의 작품 세계는 <매일신보>에 〈국기〉를 발표하면서 사회로 돌아온다. 다만 〈국기〉는 소설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감자〉‧〈태형〉‧〈붉은 산〉 경향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배따라기〉‧〈광염 소나타〉‧〈광화사〉 경향도 아니었다. 〈국기〉는 친일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경향으로 나아간 첫 출발이었다. 그가 1942년 1월 23일 <매일신보>에 발표한 〈감격과 긴장〉의 일부를 읽어본다.
 
만주국이 탄생하고 만주국 성립의 감정이 지나사변(支那事變, 1931년 중일전쟁)으로 부화되자 조선에선 '내선일체'의 부르짖음이 높이 울리고 내선일체의 대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다시 대동아전(大東亞戰,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되자 이제는 '내선일체'도 문제거리가 안 되었다.

지금은 다만 '일본 신민'일 따름이다. 한 천황폐하의 아래서 생사를 같이하고 영고(榮枯)를 함께할 한 백성일 뿐이다. '내지'와 '조선'의 구별적 존재를 허락지 않는 한 민족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종족을 캐자면 다를지 모르나 일본인과 조선인은 지금은 합체된 단일민족이다. (중략)

대동아전이야말로 인류 역사 재건의 성전(聖戰)인 동시에 나의 심경을 가장 엄숙하게 긴장되게 하였다. (주2)

'일본과 조선은 단일민족이다'라는 대목을 읽으면 저절로 탄식이 일어난다. 그런데 김동인은 이 글 발표 후 불과 여섯 달 뒤 일본 국왕을 '그런 자'로 호칭하다가 불경죄로 8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작품 경향이 이랬다저랬다 한 점은 작가의 주제 및 소재 선택의 폭이 넓다는 장점의 과시로 볼 수도 있으니 문제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항일과 친일을 오락가락한 이력은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할 사안이 아니다.

이익 추구가 아니라 인간이 되려는 야망이 필요

식물학자 클라크(Clark)의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명언이 떠오른다. 우리는 흔히 "Boys, be ambitious!"만 기억한다. 클라크는 "Boys, be ambitious(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Be ambitious not for money or for selfish aggrandizement(돈과 이기적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not for that evanescent thing which men call fame(헛된 명성을 위해서도 아니라) Be ambitious for the attainment of all that a man ought to be(인간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위하여)!"라고 말했다.

클라크의 명언은 인간의 특성을 나타내는 여러 명제들, 그러니까 이성적 동물, 사회적 동물, 정치적 동물, 도구적 동물, 문화적 동물, 유희적 동물, 종교적 동물, 윤리적 동물 등을 두루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인간다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동인은 그 중에서 특히 인간이 윤리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일정 부분 놓친 결과 항일‧친일을 오락가락했던 듯하다. 현실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본능에 사로잡혀 인간이 마땅히 준수해야 하는 윤리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다만 필자는 김동인만 유난히 친일 행위자로 비난할 생각은 없다. 친일 행위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은 흔히 현실의 이익을 얻을 욕심 때문에 유혹에 넘어간다. 필자는 그저 1920년대 우리나라 소설을 대표하는 김동인이 친일 문학가로 변절한 점이 특별히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점에서, 남다른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누리려면 남다른 절제를 실천해야 마땅하다는 교훈을 얻는다.

김동인을 기리는 상이 꼭 필요한가?

김동인이 친일 행위를 한 것은 엄연한 객관적 사실이다. 그가 반민족 친일 행위자로 나라 안에서 비판을 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의 이름으로 된 문학상을 제정하여 해마다 누군가에게 상을 주기도 한다. 나라 전체가 오락가락하는 듯하다.

*(주1) 글 서두에 나오는 김동인의 일제 관련 이력은 임종국 <친일문학론> 본문의 내용과 필자가 수집한 내용을 혼합한 것임.

*(주2) 인용된 김동인의 〈감격과 긴장〉 일부는 임종국 <친일문학론>에서 재인용한 것이며, 괄호 안의 보충설명은 필자가 덧붙인 해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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