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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중심, 노동자 배제를 넘어선 뉴딜을 상상하자

[한국판 뉴딜, 문제점과 대안 모색 7]

등록|2020.08.26 09:45 수정|2020.08.26 09:45
우리 사회는 재벌 중심의 성장을 위해 노동권을 유보와 희생, 배제의 대상으로 내몬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최소한의 노동 3권조차 부정했던 것에서, 노동자의 자주적 진출 확대로 노동 3권을 형식적이나마 허용할 수밖에 없게 된 1987년 이후에는 새로운 노동권 배제 방식을 끊임없이 모색해온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정부와 사용자들이 이른바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노동 유연화 논리를 전면화시켜 고용 형태를 유연화시키는 것을 새로운 노동권 사각지대 확산 및 노동권 배제의 주요 방식으로 고착화해왔다.

더구나, 이렇게 정부와 사용자들이 규제 완화와 노동 유연화 논리만을 앞세워, 노동권과 고용 형태, 고용구조를 끊임없이 '유연화'시킨 결과는, 오늘날 노동 양극화 확산과 좋은 일자리 축소, 청년 취업난 가중이라는 부메랑으로 우리 사회에 다가오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질적 발전을 가로막는다. 또 이런 식으로는 우리 사회가 고용구조, 일자리 구조의 왜곡에 따른 질곡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스스로 입증해가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 사회는 청년들의 선택폭이 넓어질 수 있는 탈-헬조선으로 가기 위해서라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 건설만을 외치며 끊임없이 노동권과 고용 형태의 유연화에만 매몰돼, 결과적으로는 나쁜 일자리 구조와 일자리 간 격차의 확대를 낳아온 역사에 과감히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불평등 양극화는 축소되고 좋은 일자리와 민주주의, 사회 공공성은 확대되며 노동권과 산업발전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새롭게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사회에 널리 확산된 노동권 사각지대의 제도적, 실질적 해소에 나서는 것은 상향평준화방식의 노동 양극화 해소는 물론, 일자리 간 격차 축소 통한 일자리 문제의 중장기적 해결 전망 확립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이는 또한 노동권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길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모든 낡은 것은 궁극적으로는 새것으로의 대체됨이 없이는 제대로 극복될 수 없다. 그런 만큼 우리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라도 신자유주의 시기에 확산한 재벌 중심 노동 배제, 불평등 양극화 확대의 현 산업 체제를, 대안적으로 개편시키는 것을 중심 목표 중 하나로 삼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권 사각지대 해소뿐 아니라, 산업정책 협의권 확대, 초기업 산별 교섭권 확대 등 노동권의 질적 상향 과제도 함께 풀어야 할 과제로 적극 제기돼야 맞다.

우리 사회는 촛불혁명 후 사회 대개혁 과제를 제기해놓고도 아직 그 상과 실체, 실현 전망을 제대로 구체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오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상당 부분은 97년 이후 신자유주의 방식의 친재벌 성장 우선 정책 및 노동권 유연화 정책의 확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때문에 현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이후 다른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뉴딜을 말하려면, 이미 폐해가 드러난 기존 방식에 대한 성찰을 전제로 이를 시정하기 위한 새로운 내용이 계획안에 명확히 담겨야 한다.

산업전환과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과 기준

자동화, 전동화, 스마트화, 디지털화는 무조건 선인가? 아니다. 이윤 중심의 자본과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살아온 노동자들은 자본의 이윤 동기에 의해서 추동되는 신기술 도입이나 산업구조 전환이 노동과 사회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신기술 도입이나 산업구조 전환 자체가 아니다. 노동자나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의 마련이다. 자본 중심 체제하에서 기술 도입이나 산업구조 전환이 자본에 의해 노동권을 후퇴시키고 좋은 일자리를 축소시키는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을 최소화시킨다. 노동권과 산업발전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의 길로 그나마 나아갈 수 있다.

신기술 도입 등에 앞서 노동조합과의 사전협의권을 제도화함으로써 신기술 도입이나 산업구조 전환이 노동자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을 미리 차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플랫폼 노동을 확산시키기에 앞서 플랫폼 노동의 확산이 노동권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미리 마련해야 한다.

더구나 그러한 이치는 그린 뉴딜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기후위기대응을 위한 그린 뉴딜이 인류사적 당위라면, 노동자는 그러한 당위 실현을 위한 당당한 주체로 자리매김해야 맞다. 그래야 우리는 기후 위기 대응도 사회적 공감에 토대를 두고 효과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뿐더러, 생태 가치 실현과 불평등 양극화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을 분명히 하는 가운데, 사후안전망을 넘어 사전 협의를 통해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제도적, 정책적 방안 모색에 함께 나서는 것, 그 결과로 정의로운 전환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 길로 나가기 위한 실질적 전제 조건 중 하나다.

뉴딜에 노동자들이 원하는 딜을 담고 있나?

문재인 정부의 뉴딜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안전망 강화를 3대 축으로 설계돼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뉴딜에는 노동권 사각지대 확대, 불평등 양극화 확대, 노동의 비전 실종으로 한국 사회 현실을 넘어 노동권과 산업발전이 조화를 이루게 하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 다른 처방, 새로운 딜(Deal)의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직 재벌 중심의 산업체제가 디지털시대, 그린시대에 맞게 성장 동력을 재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경쟁에서 재벌들이 성장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기재부의 의지만 여기저기 덕지덕지 존재할 뿐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뉴딜에는 전국민고용보험제도 포함하여 포용국가로 가기 위한 안전망 강화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산업 전환의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이기도 하다.

문제는 산업 전환과정이 여전히 재벌 중심으로만 설계되어 있고, 노동은 산업정책의 입안과정에서 참여해야 할 당당한 주체로 호명되고 있지 못한 점이다. 또한 자본 주도산업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문제점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스스로 권력을 갖도록 하는 방안이나 획기적인 노동권 강화 방안 포함하여 사전 안전장치나 제도적, 구조적 개선 방안 마련이 더 중요한데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불안정 노동 확산이나 고용위협의 문제점은 그대로 존치시킨 상태에서 자본 주도의 산업구조 전환을 촉진하는 의미밖에는 지니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의 뉴딜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한국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내용은 없이 자본 위주의 산업재편 필요성만을 반영하여 추진되고 있다. 한국사회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딜(Deal)의 내용은 제대로 갖추고 있기는커녕, 재벌 중심 노동 배제로 치달아온 구(舊) 딜(Deal)의 재판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계는 이에 매우 비판적일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이 위와 같은 근본 한계를 지니게 된 원인은 (1) 노동배제에 기초한 재벌 중심의 성장 우선주의 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성찰 과정 결여, (2) 기재부라는 주체의 한계, (3) 여전히 재벌 우위인 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단순히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나 반대 위주의 즉자적 비판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의존을 넘어 노동부터 다른 노동, 다른 한국 사회 건설의 주체로 서기 위한 성찰과 새로운 노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노력을 토대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한국 사회 실현을 위한 힘을 노동과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강화해갈 때, 다른 한국 사회 건설의 계기도 앞당겨질 수 있다. 이는 기재부 주도 재벌 중심의 뉴딜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넘어 노동권이 강화되고 불평등 양극화는 축소되며 사회공공성과 민주주의는 강화되는 다른 한국 사회 실현을 위한 노동-시민 연대 강화에 우리의 미래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광규 시민기자는 민주노총 정책국장입니다. 위 기고는 코로나19 사회경제 위기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코로나19시민대책위)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시민대책위는 전세계적 코로나19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위기를 대응하기 위해 모인 약 35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 기구입니다. 코로나19시민대책위의 활동 자료는 홈페이지에서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 covid19socio.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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