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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권총으로 자결한 우리나라 최초 전문 외교관

[친일파 처단과 의열 독립운동 이야기 12] 아버지 이범진과 아들 이위종

등록|2020.08.28 16:18 수정|2020.08.28 16:18

▲ 1910년 8월 근정전에 일장기가 걸린 사진. 인터넷 등에서 흔히 보는 이 사진에 필자가 포토샵으로 일장기를 빨갛게 색칠했다. ⓒ 정만진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이후를 산 우리나라 사람들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일제와 싸웠거나, 친일파로 일제에 빌붙었거나, 그 중간쯤에 머무르는 '보통 사람(주1)'으로 살았다.

독립운동에 투신한 항일지사들도 외교독립론, 실력배양론, 군사전쟁론, 의열투쟁론 등 노선에 따라 서로 다른 방법으로 일제와 맞섰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목숨을 잃는 분들이 생겨났다. 우리는 그들을 '순국(殉國) 지사'라 부른다. 殉이 '따라 죽다'이므로, 순국은 나라를 구하려고 애쓰다가 자신도 나라의 뒤를 따라 죽었다는 뜻이다.

순국 지사의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의사(義士)는 직접 무기를 들고 전투나 의협 투쟁을 벌이다가 세상을 떠난 분들이다. 열사(烈士)는 총칼 없이 일제에 맞서다가 생명을 잃은 분들이다. 열사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주 자강의 의지를 천하에 밝힘으로써 본인의 자존도 지키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독립 의기도 북돋운 '자정 순국' 지사들도 있다.

국어사전에 실려 있지 않은 '자정'이란 낱말

자정(自靖)은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自는 우리말에서 '스스로', 靖은 '편안하다, 평안하다, 안정시키다, 평정하다, 다스리다' 등에 해당된다. 글자 그대로 읽으면 '자정 순국'은 스스로를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나라를 따라 죽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상한 해석이다. 이는 자정이라는 낱말이 무엇인가를 에둘러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자살(自殺)은 스스로(自)를 죽였다(殺)는 직설적 표현이고, 자결(自決)은 스스로(自)의 삶을 끊었다(決)는 우회적 표현이다. 이에 견주면, 자정은 자결을 좀 더 순국에 어울리게 나타내기 위해 창조된 신조어이다.

하지만 '자정'이라는 말까지 만들어가며 일제에 저항했던 선조들에 비해 우리 후대인들의 독립운동정신 계승 노력은 너무나 미미하다. 경술국치를 기억해야 다시 그같은 국가적 치욕을 당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할 수 있고, 독립지사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경술국치를 기리는 국가적 행사도 갖지 않고, 추념일 지정도 않으며, 관청들도 겨우 한다는 것이 '조기 게양 독려' 수준이다.

경술국치 맞아 돌이켜보는 순국 열사들

그렇다고 그 탓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나부터 무엇인가를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언행일치의 선비정신이다. 필자는 8월 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 일을 맞아 19 10년(庚戌) 당시 나라(國)를 빼앗긴 부끄러움(恥)을 자정의 방법으로 밝힌 순국 지사들을 두루 살펴보는 것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가다듬으려 한다.

경술국치 자정 순국 지사 중 한 분인 이범진(李範晋) 선생을 독자들께 소개한다. 1905년 을사늑약 전후부터 1910년 경술국치 이후까지 "일제 침략에 항거하여 전국에서 1910년 이전에 10명이, 1910년대에 56명이 자결하였다."(주2) 지면 부족으로 이 분들을 모두 알리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지만, 무엇보다 필자의 준비 부족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차근차근 챙겨왔으면 경술국치를 맞아 모든 자정 순국 열사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반성한다.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실려 있는 이범진 초상 ⓒ 국가보훈처


이범진은 26세 때 문과에 급제했다. 이범진은 여러 관직을 역임하던 중 1896년 아관파천으로 김홍집 내각이 무너지면서 법부 대신(현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그는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시해되는 을미사변을 맞아 사건 경위를 적극적으로 수사하려 했지만 일제와 이완용 등 친일파들의 압박 때문에 도리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처지로 몰렸다. 그래서 결국 주미 공사로 나가게 되었다.

1896년 9월 9일 워싱턴에 도착한 그는 약 3년 반 동안 미국에서 활약했다. 그 후 1900년 6월 12일 파리에서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고, 7월 12일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가서 러시아 황제에게 신임장을 제출한 이래 약 5년 동안 주러시아 공사를 역임했다. 러시아 공사 재직 중에는 때로 주프랑스·주독일·주오스트리아 공사를 겸임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력으로 이범진은 "일제의 국권침탈이 자행되던 1900년대에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전문 외교관"(주3)으로 평가된다.

1904년 2월 23일 한일의정서를 체결한 일제는 세계 각국에 주재 중인 한국 공사들을 소환했다. 이범진은 고종 황제의 칙명이 오기 전에는 소환에 응할 수 없다고 저항하며 계속 러시아에서 국권 회복을 도모했다. 일제가 4월 1일 그를 러시아 공사에서 면직했지만, 이범진의 애국심에 감동한 러시아는 그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하는 것을 허용했다. 당시 러일전쟁 중으로 한국에 우호적이었던 러시아는 한국 공사관에 체류 비용도 지원해주었다.

일제로부터 공사 면직을 당한 후에도 러시아에서 구국 활동

1906년 6월 4일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파견된 이상설·이준 특사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이범진은 두 특사와 협의하여 고종의 친서를 작성하는 한편, 영어·불어·러시아어에 모두 능통한 아들 이위종(李瑋鍾)을 통역을 겸해 특사단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조치했다. 이위종은 각국의 신문기자들과 일부 국가 대표가 모인 파리에서 한국이 처한 현실과 일본의 반평화적 행태에 대한 〈한국을 위한 호소(a plea for korea)〉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이위종의 연설은 모든 참석자들로 하여금 감명과 찬사를 금치 못하게 했다. 그 결과 즉석에서 한국의 입장을 동정하는 결의안을 만장의 박수로 의결까지 하였다. 이위종의 이 강연의 성과는 당시 헤이그에서 발행되던 신문인 《헤이그 신보(haagsche courant)》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국제여론의 환기에 상당히 큰 작용을 하였다. (그 이후에도) 밀사들은 투숙한 호텔 정문에 태극기를 걸고 열성적으로 활동했다.(주4)

그러나 일본과 영국의 방해 때문에 특사단은 결국 만국평화회의에서 발언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급기야 7월 14일 이준 열사가 분사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헤이그 특사 활동 힘껏 도왔지만 끝내 실패

이범진은 그 후에도 1908년 연해주에서 의병이 조직될 때 지원금을 보내고,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의 여러 학교들을 통합하여 규모가 큰 한민학교(韓民學校)를 설립할 때에도 1천 루불을 보내어 교포들의 교육 구국운동을 지원했다.

그러나 1910년 8월 29일 마침내 나라는 일제에 병탄되었고, 이범진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칩거하던 중 이윽고 자정 순국을 결심하였다. 그는 1911년 1월 26일 천장의 램프 갈고리에 혁대를 걸어 목을 맨 상태에서 세 발의 권총을 자신에게 쏘았다. 향년 59세였다.

이범진은 자정 순국에 앞서 고종 황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등에게 유서를 남겼다. 그는 '한국, 서울, 덕수궁'의 '황제 폐하께' 보낸 유서에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나라 대한제국은 망했습니다. 폐하는 모든 권력을 잃었습니다. 저는 적을 토벌할 수도, 복수할 수도 없는 이 상황에서 깊은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자결 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오늘 목숨을 끊으렵니다.(주5)"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이범진〉의 본문은 "그의 아들 이위종도 일제 헌병대에 체포되어 잔혹한 고문을 받고 폐인이 되었다"로 끝난다. 이 끝 문장을 읽으니 이준 열사가 어째서 분사(憤死)했는지 저절로 헤아려진다. 아, 우리 역사가 분하다!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이위종 지사 사진 ⓒ 국가보훈처


(주1) 전두환과 함께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던 노태우는 전두환의 후임을 선출하는 1987년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주2) 문화체육관광부 '문화 데이터 광장' 〈항일 자정 순국〉
(주3) 2011년 8월 국가보훈처 '이달의 독립운동가'
(주4)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이위종〉
(주5) 2011년 8월 국가보훈처 '이달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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