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리터 봉투에 쓰레기 '몰빵'하던 나, 변해도 너무 변했다
[소소하고 확실한 실천]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제대로... 환경 정책도 마련되어야
코로나19로 전에 없던 순간을 매일 마주하고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요즘,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거대한 기후 위기와 예측할 수 없는 전염병 앞에서, 그저 무력하게 손 놓고 있어야 할까요? 그럴 순 없죠! 우리가 살아갈 지구를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찾아나서려고 합니다. 시민기자가 되어 같이 참여해 주세요. [편집자말]
▲ 일회용 용기도 설거지가 필요해요 ⓒ pixabay
물을 마시다 친구의 행동에 잠시 '뜨악'했다. 조금 전 우리가 배달해 먹은 짜장면, 짬뽕이 담겨 있던 일회용 용기를 세제까지 풀어 깨끗이 설거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일회용 용기를 왜 씻어?" 나는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얘는 원래 이렇게 씻어서 버리더라고"라고 대신 답변을 해줬다. 정작 당사자인 친구는 묵묵히 일회용기와 더불어 그릇들을 설거지할 뿐 대답이 없었다.
이 상황은 10년 전 일이다. 그리고 나는 재활용품을 분리 배출할 때 깨끗이 씻거나 헹궈서 내놔야 한다는 것을, 그로부터 5년 후쯤에야 알았다. 또한, 타인의 손을 배려하고자 했던 그 친구의 습관이 옳은 행동이었다는 것도 함께 알게 되었다.
쓰레기봉투 몰빵 하던 나, 이젠 달라졌다
하지만 분리배출 요령을 안다고 해도 이를 실제 생활에서 실천에 옮기기란 쉽지 않았다. 그 친구처럼 습관을 익혔던 것도 아니었고 그 당시 나는 워킹맘이기도 했다. 변명을 하자면, 대한민국 워킹맘은 가사와 직장일에 육아까지 병행해야 했으므로 재활용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재활용은 그저 다른 쓰레기들과 같은 쓰레기일 뿐이었으니까.
시간이 나면서 페트병이나 유리병 정도는 분리배출 했지만, 나머진 20리터 쓰레기봉투에 '몰빵' 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직장을 그만두고 '집사람'으로 생활하면서부터 조금씩 재활용 분리수거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이 한 가지 일에 몰두를 하면 보이지 않던 부분도 세세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 경우엔 분리수거가 그랬다.
처음엔 비닐류, 페트병, 유리병, 캔, 종이류 등 큰 단위로 분리배출을 시작했다. 비닐류는 과자봉지든 포장지든 무조건 비닐 종류에 버리고, 종이류는 우유팩뿐만 아니라 코팅된 포장지부터 쓰고 버린 휴지까지 몽땅 같은 분류함에 넣었다. 그러다 모든 종이가 다 '재'활용이 될 수 없다는 불편한 사실을 알게 됐다.
열심히 분류하던 비닐류는 우리나라에선 재활용이 되지 않고 대부분 소각된다고 했다. 코팅된 종이는 일반쓰레기이고, 플라스틱에 부착된 라벨의 띠지는 생각보다 쉽게 떼어지지 않아 대부분 그냥 통째로 버려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일회용 비닐은 아무리 깨끗이 헹구어 분리수거를 하더라도 이미 한번 사용되어 쉽게 오염되므로 재활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페트병 또한 라벨지를 떼어낸 후 버려야 하고, 그나마 유색보다는 투명한 무색 페트병이 재활용률이 더 높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페트병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정작 '고품질 원료'로 사용해야 하는 재활용 페트병은 일본에서 수입해 온다고 한다. 우리는 돈 주고 옆 나라의 쓰레기를 사 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니 더 꼼꼼히 분리배출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재활용 분류는 점점 '나노 단위'처럼 이뤄졌다. 기준이 가장 모호한 건 비닐류였다. 때문에 비닐류는 조금만 사용의 흔적이 있어도 종량제 봉투로 들어갔다. 또한 모든 일회용 용기는 우리 집 식기 못지않게 깨끗이 씻어 배출해야 마음이 편했다. 페트병뿐 아니라 플라스틱 용기도 안에 남은 내용물을 깨끗이 씻고 라벨지를 떼어낸 후 말려서 배출했다.
모든 재활용품들이 목욕재계 후 새 삶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엄마의 행동과 지침에 따라 아이들도 처음엔 분리수거를 힘들어하며 어디까지가 쓰레기이고 어디까지가 재활용인지 구분하기 어려워했다. 지금도 적응 단계이지만,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겨 우유팩이든 음료수병이든 용기에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면 무조건 헹구거나 씻어서 배출하게 되었다.
지구가 보낼 '후불청구서'를 받고 싶지 않다면
▲ 21일 오전 광주 북구 재활용품선별장에서 북구청 청소행정과 자원순환팀 직원들이 코로나19 장기화로 일회용품 배출량이 증가하자 쓰레기 처리 상황 등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분리배출은 매일이 숙제였다. 올바른 분리배출을 위해 아이들까지 합세하여 파고 들어간 분리수거 과정에서, 다른 방향의 의문점이 생겨났다. 모든 식료품은 포장이 되어 있다. 텃밭에서 갓 수확된 농산물이 아니고서는 마트에서 파는 음식 재료가 되는 물품들은 대부분 비닐 포장이 들어간다.
실제로 장을 봐와 물품 정리하며 분리수거를 하다 보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비닐류다. 식품이 인쇄돼 있는 포장지부터, 묶음 포장되어 있는 비닐과 일회용 비닐랩(PVC)까지... 비닐류가 차지하는 비율이 캔 종류 빼고 대부분을 차지했다.
분리배출 목록 중 재활용 비율이 가장 낮은 비닐류가 일상에서는 사용처가 가장 많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개인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 노력한다지만, 기업들이 제조과정에서 사용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이 큰 비중이다. 일반 시민들이 아무리 분리수거를 뼛속까지 철저히 한들, 정부가 기업을 위해 모호한 규정으로 빈틈 많은 법령을 제시하는 한 올바른 분리배출은 영원히 정착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올해 1월부터 대형마트 자율포장대에 끈과 포장 테이프가 사라졌다. 처음 시행되었을 때, 마트 이용객들의 불만과 불편이 뒤따랐다.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여론까지 일었다. 나 또한 처음엔 불편하였지만 지금은 그 시행에 맞춰 장바구니에 들어갈 양만큼만 장을 본다.
무엇이든 시행 초기엔 좋든 싫든 사람들의 말이 오고 간다. 그러면서 부족한 부분은 채우며 정착해 간다. 정부가 얼마나 의지를 갖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기업들도 따라갈 것이고, 시민사회는 그 의지에 부합하는 행동으로 함께 동참할 것이다.
코로나가 물러가면 지구로부터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후불 청구서'가 날아들 거란 말이 나온다. 이미 올해 최장기 장마와 국지성 폭우가 기후위기로 인한 문제임을 인식한 때다. 불안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집-사람'으로서 분리수거를 더 꼼꼼히 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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