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놀라운 '장애 교육', 교사였던 나는 부끄럽다
한 달 넘게 '장애를 지닌 사람들' 교육하는 호주... 아이는 몸으로 인권 감수성 배워
"엄마, 안돼. 선생님 말씀에 제이콥(가명)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래. 제이콥의 뇌가 우리랑 다르게 작동하는 거라서 본인도 어쩔 수 없고 속상하대. 우리가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했어."
호주 이민 생활이 조만간 30년을 꽉 채운다는 이민 선배가 들려준 말이다. 그의 딸이 20여 년 전에 초등학교에 다닐 때 같은 반에 장애 진단을 받은 제이콥이 있었다. 제이콥이 수업 중에 자꾸 산만하게 행동하고 집중을 방해한다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 지인은 발끈했다. 장애 아동 때문에 딸이 학습에 피해를 본다는 생각에 다음 날 학교로 쫓아가 항의하려 하자 딸이 이렇게 말렸다고 했다.
지인은 아이의 대답을 듣고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현재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하는 딸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타인을 배려하는 건강한 성인이 되었다며 덧붙였다.
"그 시대에 한국에 무슨 장애인의 권리나 복지란 개념이 있었겠어. 그런데 호주 학교에서는 이미 이런 교육을 하고 있더라고. 생각해 보면 호주 학교가 무식한 엄마까지 교육한 셈이니 얼마나 고마워."
일반교사가 한 달 넘게 가르치는 장애 교육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호주의 빅토리아주(멜버른이 속한 주)는 2차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집 근처 공립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학교는 6주째 '장애를 지닌 사람들'(People with disabilities) 교육을 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마다 진행하는 탐구학습(Inquiry)의 주제를 뇌성마비, 청각장애, 시각장애, 다운증후군 등 다양한 장애의 유형을 선택해서 실시한다.
"엄마, 시각장애인이 갖는 장점이 뭔지 알아?"
시각장애인에 대해 공부한 후 아들이 대뜸 질문한다. 장애인을 단지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만 가르치지 않고, 그들에게도 장점과 재능이 있음을 인지시키는 교육이, 나의 기존 인식에도 균열을 만든다. 장애를 지닌 사람들의 삶을 아이들이 직접 생각하고 느끼고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교육이다.
'일반교사가 몇 주에 걸쳐 직접 실시하는 장애 교육이라니?' 한국에서 한때 교사, 호주에서 현재 학부모인 나는 요즘 별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이다. 호기심과 신기함에 매주 담임이 구글클래스룸에 올리는 교수학습자료, 동영상 자료, 제시된 과제, 그리고 아이가 제출한 과제에 대한 피드백을 꼼꼼히 챙겨보지 않을 수가 없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스스로 부끄러운 점은 교사 시절 한 번도 이런 교육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과 안타까운 점은 주변 동료들로부터도 이런 양질의 교육을 찾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마지못해 이뤄지던 '장애 인식과 이해 교육'은 대부분이 형식적이었다. 모르면 두려운 법, 교사조차도 이 분야와 관련하여 제대로 된 교육이나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두렵고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교사가 직접 관련 자료를 개발하고 발굴하여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재구성해 가르친다는 생각보다, 강사들을 초빙하여 각각의 교실에 투입시킨다. 또는 비디오 방송으로 전 학년이 일시에 시청하기, 특수학급이 존재하는 학교의 경우에는 특수교사가 일반 학급을 돌며 교육을 하곤 했다.
본인의 주장 말하는 아이, 훌륭한 교육 덕분이다
어느 사회나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를 위한 인권 감수성은 까다롭고 불편하다. 인권 감수성은 화석처럼 굳어진 채 후세대로 전해지는 개념이 아니라, 시대적 변화와 사회적 요구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사유하지 않은 죄'를 짓기 쉽다. 현대는 '라떼 타령 죄'라고나 할까?
'암 걸리겠어.' 아이를 키우면서 속에서 부글부글 용암이 끓어오를 때마다 이 말을 입에 달고 산 적이 있다. 본인의 암 투병기를 그린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를 읽고 다시는 이 말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앤드류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1-시각장애인 편>을 읽고 나서는, '컴맹', '영어맹'이란 용어를 영원히 떠나보내기로 작정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한 말이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라면, 서슴없이 거둬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일을 호주의 교사들은 해내는구나!' 수시로 튀어나오는 감탄 뒤에는 호주의 교육이 내 아이에게 인권 감수성을 제대로 가르쳐 줄 것이란 믿음과 누구든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언제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잔소리라도 한마디 할라치면, 아이가 "엄마, 나한테 엄마의 생각을 강요하지 마. 선생님이 모든 사람은 다 다르다고 했어"라고 말한다.
어설프지만 본인의 주장을 거리낌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아이, 모두가 훌륭한 교육 덕분이겠지.
호주 이민 생활이 조만간 30년을 꽉 채운다는 이민 선배가 들려준 말이다. 그의 딸이 20여 년 전에 초등학교에 다닐 때 같은 반에 장애 진단을 받은 제이콥이 있었다. 제이콥이 수업 중에 자꾸 산만하게 행동하고 집중을 방해한다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 지인은 발끈했다. 장애 아동 때문에 딸이 학습에 피해를 본다는 생각에 다음 날 학교로 쫓아가 항의하려 하자 딸이 이렇게 말렸다고 했다.
지인은 아이의 대답을 듣고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현재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하는 딸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타인을 배려하는 건강한 성인이 되었다며 덧붙였다.
"그 시대에 한국에 무슨 장애인의 권리나 복지란 개념이 있었겠어. 그런데 호주 학교에서는 이미 이런 교육을 하고 있더라고. 생각해 보면 호주 학교가 무식한 엄마까지 교육한 셈이니 얼마나 고마워."
일반교사가 한 달 넘게 가르치는 장애 교육
▲ People with Disabilities(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6주가 넘게 장애이해 교육을 실시하는 호주 초등학교 ⓒ 이혜정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호주의 빅토리아주(멜버른이 속한 주)는 2차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집 근처 공립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학교는 6주째 '장애를 지닌 사람들'(People with disabilities) 교육을 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마다 진행하는 탐구학습(Inquiry)의 주제를 뇌성마비, 청각장애, 시각장애, 다운증후군 등 다양한 장애의 유형을 선택해서 실시한다.
"엄마, 시각장애인이 갖는 장점이 뭔지 알아?"
시각장애인에 대해 공부한 후 아들이 대뜸 질문한다. 장애인을 단지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만 가르치지 않고, 그들에게도 장점과 재능이 있음을 인지시키는 교육이, 나의 기존 인식에도 균열을 만든다. 장애를 지닌 사람들의 삶을 아이들이 직접 생각하고 느끼고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교육이다.
한국에서 마지못해 이뤄지던 '장애 인식과 이해 교육'은 대부분이 형식적이었다. 모르면 두려운 법, 교사조차도 이 분야와 관련하여 제대로 된 교육이나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두렵고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교사가 직접 관련 자료를 개발하고 발굴하여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재구성해 가르친다는 생각보다, 강사들을 초빙하여 각각의 교실에 투입시킨다. 또는 비디오 방송으로 전 학년이 일시에 시청하기, 특수학급이 존재하는 학교의 경우에는 특수교사가 일반 학급을 돌며 교육을 하곤 했다.
본인의 주장 말하는 아이, 훌륭한 교육 덕분이다
▲ 시각장애 이해 보고서. 호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장애 이해 교육을 받고 시각장애인들이 경험하는 장점과 단점, 그리고 본인이 느낀 바를 기록한 보고서. ⓒ 이혜정
어느 사회나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를 위한 인권 감수성은 까다롭고 불편하다. 인권 감수성은 화석처럼 굳어진 채 후세대로 전해지는 개념이 아니라, 시대적 변화와 사회적 요구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사유하지 않은 죄'를 짓기 쉽다. 현대는 '라떼 타령 죄'라고나 할까?
'암 걸리겠어.' 아이를 키우면서 속에서 부글부글 용암이 끓어오를 때마다 이 말을 입에 달고 산 적이 있다. 본인의 암 투병기를 그린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를 읽고 다시는 이 말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앤드류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1-시각장애인 편>을 읽고 나서는, '컴맹', '영어맹'이란 용어를 영원히 떠나보내기로 작정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한 말이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라면, 서슴없이 거둬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일을 호주의 교사들은 해내는구나!' 수시로 튀어나오는 감탄 뒤에는 호주의 교육이 내 아이에게 인권 감수성을 제대로 가르쳐 줄 것이란 믿음과 누구든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언제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잔소리라도 한마디 할라치면, 아이가 "엄마, 나한테 엄마의 생각을 강요하지 마. 선생님이 모든 사람은 다 다르다고 했어"라고 말한다.
어설프지만 본인의 주장을 거리낌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아이, 모두가 훌륭한 교육 덕분이겠지.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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