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바다가 된 모니터, 인생 최초 비대면 강의 해봤습니다
책 내고 처음 해본 구글 '줌' 강의... 컴퓨터 너머로 전해졌던 진한 감동
▲ 코로나 때문에 강의가 인터넷 줌(zoom)으로 실시된다고 했다. ⓒ pixabay
몇 달 전 라디오에 출연해 내가 쓴 책 <다락방 미술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이후 나는 여러 곳에서 강연 요청을 받았다. 첫 무대가 교육청이다 보니 자꾸 교육청에서 강의가 들어와 연구사님들 상대로도 강연했고 신규 교감 선생님 백여 분 앞에서도 강연했다.
처음엔 조금 떨렸는데 역시 나는 무대 체질(?)인지 할수록 재미가 있었다. 반응도 예상보다 뜨거워서 강의가 끝나면 내 연락처를 받으러 사람들이 줄을 섰다. 이 사실을 들은 내 친구는 다음날 바로 내 명함을 파왔다. 이러다 나 스타 강사 되는 것 아닌가, 혼자 질소가 잔뜩 든 과자 봉지처럼 부풀어 있는데, 시련이 닥쳤다.
"ppt는 이렇게 띄우고, 동영상은 이렇게 띄워. 강의 시작할 때는 상대에게 음소거하라고 말해. 질문할 때는 음소거를 다시 누르고 질문하라고 말하고…"
정신이 혼미할 지경인데 뭐라 뭐라 설명하면서 순식간에 하는 말, "쉽지?" 난 하나도 못 알아들었는데 "쉽지?" 라니. 반복되는 나의 질문에 아들은 슬슬 지쳤는지 대충 알려주기 시작했다. 이놈의 자식, 엄마가 그동안 얼마나 잘 해줬는데. 속으로 서운해도 아쉬운 건 나. 지갑을 들고 와 용돈을 투척했다. 그제야 차분히 자세히 알려준다. 모자지간에도 어쩔 수 없이 파고든 엄혹한 자본주의.
사용법은 알았지만, 수업을 한번 해봐야 알겠는데 도대체 누구한테 해보지? 고민하는데 학원 강사로 일하는 친한 동생한테 톡이 왔다. "언니, 나 다음 주부터 줌으로 수업해야 하는데 언니 줌 알아요?" 나는 답을 보냈다. "암, 알고말고."
세 시간도 긴데 네 시간 반 분량을 하라고?
밤 열 시에 줌으로 접속해서 방을 만들고 동생을 초대했다. 아이디를 알려주고 암호를 보냈건만 나보다 더 컴퓨터 무식자인 동생은 못 들어왔다. 그렇게 개미지옥에 걸린 듯 빙글빙글 헤매다 자정이 다 돼서야 우린 서로 화면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둘 다 지쳐서 얼굴이 노랬다.
막상 얼굴을 보니 두 컴퓨터 무식쟁이가 이렇게 화상으로 만나니 어찌나 대견하고 웃기던지 우린 눈물이 나게 웃었다. 서로 번갈아가며 ppt도 띄워보고 연습 삼아 강의도 대충 해보았다. 21세기가 이런 거였구나. 우린 세상 참 좋아졌다고 호들갑을 떨며 시계를 보니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날 줌으로 수업을 해봤다는 친구랑 통화를 하는데 줌으로 수업하면 대면으로 할 때보다 강의 내용을 1.5배는 더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농담도 못 하니 서로 웃으면서 보내는 시간이 없음은 물론, 혼자 강의하다 보면 말이 빨라져서 진도가 금방 나간다고 했다. 헐, 그럼 네 시간 반 분량을 준비해야 한단 말이지? 세 시간도 긴데 네 시간 반 분량이라니.
놀라 분열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준비한 화가와 어울리는 음악가를 엮어서 강의 내용을 수정했다. 무작정 많은 화가를 소개하는 것보다 음악과 섞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미술책도 썼고 클래식 기사를 일 년 넘게 연재했던 터라 가능한 일이었다. 김환기 화백과 쇼팽, 프리다 칼로와 클라라 하스킬의 생애를 교차해서 강의를 준비했다. 만들고 보니 ppt만 백 오십 장이 넘는 대작이 되었다.
▲ 나는 교육청에 직접 가서 빈 강의실에서 혼자 강의하고 대상자들은 집에서 듣는 형식이었다. ⓒ pixabay
그런데 이번에 내가 강의하는 대상자는 지방 교육청 신규 장학사들이었다. 신규 장학사 연수 프로그램 중 하나로 내가 초청되었는데, 나는 교육청에 직접 가서 빈 강의실에서 혼자 강의하고 대상자들은 집에서 듣는 형식이었다. 옆 강의실에는 혹시라도 모를 사고(?)를 대비해 숙련가가 대기, 화면을 모니터하고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었다. 어색한 오 분이 지나자, 줌 사용이 손에 익어 드디어 '뻘 줌(줌 사용법을 잘 모르는 사람을 부르는 신조어)'에서 벗어나 몰입되었다.
강의 내용에 울컥하는 문구가 많았는데, 내가 울컥할 것 같은 문장은 대신 읽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런데 그분들이 대신 읽어주는 문구를 듣다가 난 또 눈물을 흘리고. 내가 우니 몇 분이 따라 우셨고 우는 그분들을 보고 나도 또 따라 울고, 또다시 시작된 다람쥐 지옥.
비까지 오고 온라인이 눈물바다가 되었다. 강의가 끝날 무렵이 돼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망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막상 준비한 강의의 반밖에 못 했음을 알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애써 생각했다. 예술이 별건가. 우리가 이렇게 공감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으면 그게 예술이지.
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문득 사는 게 연극 같았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다가 이제 무대 위에서 내려와 집으로 가는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돌아보니 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광대인 것도 같았고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악당인 것도 같았다.
타인의 삶을 소개하면서 문득 내 삶을 돌아본 건지, 단지 울고 나면 그 순간엔 사람이 조금은 착해지는 것인지,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렬한 생각이 들었다. 제발 그러라고 나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결코 변치 않는 것
집에 도착해 자려고 누웠는데 친구 작가한테 톡이 왔다. "나 줌으로 글쓰기 수업하는데 줌 해 봤어?" "그럼, 나 줌 전문가야." 진짜 세상이 난리구나! 생각하며, 벌떡 일어나 노트북을 켰다. 또 두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헤매던 친구가 화면에 나타났을 때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 화면 전체에 친구의 이마가 꽉 차 있었다. 긴장한 친구가 노트북 앞에 너무 바짝 앉아 있었기에 나는 뜻하지 않게 그녀 이마의 모공까지 다 보게 되었다. 나는 노트북과 약간의 거리를 둘 것을 1차로 당부했다.
친구는 나에게 첫 줌 강의가 어땠냐고 물었다. 난 프로라면 내 감정은 조절하면서 상대에게 감동을 줘야 마땅한데 내가 먼저 울어버리는 아마추어 짓을 하고 말았다고 고백하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내 강의 인생의 종지부를 찍은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가 웃느라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이번엔 정수리 모공이 다 보였다. 쩝, 한밤중에 안구 테러.
친구는 안 봐도 왠지 그랬을 거 같다고 자꾸 웃었다. 이왕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으니 나머지 조작법도 꼼꼼히 알려주고 작별 인사를 하니 또 새벽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줌을 끄고 보니 메일이 와 있다.
"작가님, 잘 도착하셨는지요. 오늘 강의 너무 감동적이었고요, 장학사님들의 열렬한 요구로 한 번 더 모시고 준비하신 2부 강의를 듣고 싶습니다."
코로나로 세상이 빠르게 변하지만, 변치 않는 사실은 인생은 이렇듯 항상 내 예상과 반대로 흐른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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