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대로 신고하려면, 먼저 탐정이 돼야 할까요?
집 근처에서 발견한 방치된 개들... 구청, 경찰, 동물단체 모두 "그 정도론 구조 어렵다"
▲ 개가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언제까지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 pixabay
지난 폭염과 길었던 장마 속에서도, 개들은 그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있었다. 묶여 있다 사라지고, 다시 그 자리를 다른 개들이 채우고, 그 와중에 임신하고, 출산하고... 그렇게 방치된 듯했다.
그대로 구경만 할 수 없어서 뜻있는 동네 사람들 몇이 모여 이 문제를 해결해 보기로 했다. 개들도 불쌍할뿐더러 마을을 위해서라도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먼저 구청에 민원을 접수했다. '동물등록법 위반', '동물보호법 위반', '공유지 무단점유'는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담당 직원은 귀찮다는 듯이 '거기 원래 들개들 많은 곳이라 들개들 잡아서 묶어 놓은 것 같은데 왜 그리 신경 쓰냐'고 말했다. 다음 주에 나가서 보기는 하겠지만 기대는 말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아니 들개들은 그렇게 묶어 놔도 된다는 말인가? 담당자의 말을 들어보니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경찰의 도움이라도 받아보자고 생각해서 '동물학대'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난감해한다. 그 정도만 가지고 학대라고 보기에는 어려울뿐더러 지금 여력이 없단다. 예상은 된다. '사정이 있어서 잠깐 묶어 놨어요. 데리고 갈 거예요. 밥과 물은 사람 없을 때 주고 먹으면 치워요.' 개주인이 이렇게 나오면 끝이다.
이를 뒤집을 만한 근거라고는 주민들의 증언뿐이다. 그렇다고 경찰이 잠복해 있다가 '적극적 동물학대' 증거를 잡아 '적극적 제재'를 해 줄 리 만무다. 동물 전담 경찰 제도도 생겼다고 들은 거 같은데 그건 우리만 아는 거였다.
"그 정도로는 구조 못 해요"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동물보호단체들에 도움을 청했다. 동물보호단체에서도 거의 동일한 답변이 왔다.
"그 정도로는 구조 못 해요. 보호소는 포화 상태이고, 정말 시급히 구조해야 할 심각한 상태의 동물은 너무 많아서 저희 나름대로 구조 원칙이 있는데, 그 사안은 거기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그럼 어느 정도 되어야 구조 가능한가요?"
"아주 적극적인 학대의 증거나 불법행위를 한 증거가 있어야 해요. 예를 들면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을 했다든지, 그렇게 도살하는 곳에 팔았다든지, 유기견을 무료로 분양받아와서 팔고 있다든지, 굶어 죽은 사체들이 즐비하다든지..."
"도살장 같은 곳에 파는 것 같아 보여요. 그렇지 않으면 왜 이렇게 큰 개들이 계속 바뀌겠어요?"
"심증만으로는 개를 구조할 수가 없어요. 현재로선 최선이 구청이나 시청에 민원을 넣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럼 계도가 될 거고, 달라질 수도 있어요."
그때 깨달았다. 우리 사회에서 동물학대로 신고하려면 그 전에 먼저 우리가 탐정이나 형사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을....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학대 증거'와 '끔찍한 학대 결과'를 제시하지 않으면 아무도 움직이게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우리들이 그들을 구하고 싶어 좌충우돌하며 절망하는 사이, 그 개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개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 성견이 아닌 듯 보이는 개 두 마리가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언제까지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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