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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이 일어난 도시, 더 충격적인 사람들의 반응

[리뷰] <공포분자>, 에드워드 양의 도시가 담아내는 의미

등록|2020.09.10 08:45 수정|2020.09.10 08:45
 

▲ <공포분자> 포스터 ⓒ (주)에이썸픽쳐스


대만의 역사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우리가 광복 이후 오랜 시간 독재정권에 시달렸던 거처럼, 대만은 1948년 시작된 계엄령이 1987년에 해제됐다. 에드워드 양, 허우 샤오시엔 등의 감독에 의해 시작된 1980년대 초 대만 뉴웨이브 영화는 현실을 조명하는 시각에서 시작됐다. 독재 하에서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으나,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우울과 불안, 가족의 해체 등을 주제로 다룬다.

에드워드 양의 도시는 우울을 품고 있다. 그의 카메라는 건조한 도시의 풍경을 비추고 사람들은 무료함과 권태로움을 느낀다. 그들에게는 희망도 꿈도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의 대만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자 마지막으로 국내에 정식개봉하게 된 <공포분자>는 이런 도시의 모습을 담는다. 이 작품의 도입부는 다소 충격적이다. 총격이 일어나고 사람이 길가에 쓰러진다. 보통 총격이 일어나면 나타나는 풍경이 있다.
  

▲ <공포분자> 스틸컷 ⓒ (주)에이썸픽쳐스


길 가던 사람들이 겁에 질리거나 아니면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어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보거나. 그런데 도시의 사람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 광경을 카메라로 찍은 소년은 우연히 현장에서 한 혼혈 소녀를 발견하고 촬영한다. 그 이후 소년은 소녀의 사진을 커다란 영화 브로마이드처럼 인쇄해 벽에 붙인다. 소년에게는 마치 소녀가 미래이고 꿈인 듯하다.

소녀는 소년의 카메라를 훔친다. 소녀에게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과 함께 대만을 떠나고자 한다. 소녀의 미래는 대만에 있지 않다. 이곳을 떠나 미래를 그리고자 한다. 소년과 소녀의 공통점은 미래를 그린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희망이 가슴 뛰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영화의 건조한 색감과는 별개로 두 사람은 이름이 없고 서로의 희망을 말하지도 않는다. 이는 또 다른 주인공인 주울분, 이립중과 다른 모습이다.

주울분과 이립중 부부는 소년, 소녀와 달리 이름이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삶은 미래도 사랑도 없다. 권태기에 빠진 두 사람은 고독하고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의사 이립중은 출세의 기회에 서 있고, 소설가인 주울분은 다시 소설을 쓰고자 한다. 내레이션으로 들리는 주울분의 소설은 그와 남편 사이의 이야기다. 그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아쉬움을 표하며 가정을 시도한다. 이런 설정을 통해 두 부부의 이야기는 실체와 허구 사이를 보여준다.
  

▲ <공포분자> 스틸컷 ⓒ (주)에이썸픽쳐스


부부는 기성세대를 의미한다. 이들은 아픈 대만의 역사 속에서 살아왔다. 그 시간을 견뎌냈지만 남은 건 슬픔과 가족의 해체다. 아스팔트로 지어진 아파트의 벽처럼 그들 부부는 대화의 시간을 가지지 못할 만큼 단절되었다. 때문에 소설은 가정을 보여준다. 독재로 인한 발전 속에서 행복을 찾지 못한 기성세대는 소설을 통해 행복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래서 부부에게는 이름이 있지만 실체가 아닌 가정이란 희망을 지닌다.

반면 소년과 소녀는 새로운 세대를 보여준다. 이들은 독재라는 기성세대의 위협에 시달리지만 그 안에서도 자신만의 희망을 지닌다. 다만 이 희망은 발현되기 힘든 조건에 있다. 도시의 단절 속에서 젊은 세대는 연대하지 못하고 흩어진다. 소년의 카메라는 독재의 억압과 소녀로 대변되는 희망을 사진이란 실체로 남기지만 희망을 이루지 못한다. 바람에 흩날려 날아가는 소녀의 사진은 이를 의미한다. 역사 속에 사라질 꿈을 지닐 소녀와 소년은 그래서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 <공포분자> 스틸컷 ⓒ (주)에이썸픽쳐스


부부와 소년·소녀 사이의 간극은 경찰 간부 캐릭터를 통해서도 표현된다. 경찰은 소녀를 쫓는다. 또 소년에게 사진을 찍지 못하게 막으며 역사를 기록하지 못하게 막는다. 이 경찰 간부는 이립중의 친구다. 기성세대에 편입된 이립중은 경찰의 위협을 받지 않지만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소녀는 쫓기는 대상이 된다. 그래서 총성은 계엄령 하의 독재정권이 만들어낸 도시의 위협을 상징한다.

작품의 제목인 '공포분자'는 도시 그 자체를 의미한다. 부부가 기성세대에 편입되어 있다면 그들은 행복해야 한다. 하지만 네 명의 주인공은 모두 고독과 우울을 지니고 있다. 독재로 인해 만들어진 도시는 옛 대만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이는 현재 서울의 모습과 비슷하다. 옛 건물을 밀고 빠르게 도시화를 진행하면서 인간소외와 고독화 현상을 가져왔다. 에드워드 양은 대만의 도시에 담긴 현실을 담아내며 대만인이 느끼는 불안을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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