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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가해자로 조사받던 남자의 자살, 그 이후

[넷플릭스 리뷰] 다큐멘터리 영화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

등록|2020.09.11 11:59 수정|2020.12.17 11:51
성폭력 가해자로 조사받던 남자가 자살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그때, 성폭력 피해자는 허탈감을 느꼈다. 법정에서 치밀하게 진실을 밝히려 했건만, 훼손됐었던 자존감을 되찾으려 했건만, 피해자의 말을 들어야 할 당사자가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곧이어 그의 자살이 '진짜 자살이냐, 타살일 수도 있지 않냐' 하는 의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정황증거를 따져보는 이들이 생겼고, 타살가능성이나 음모이론을 뒷받침하는 몇몇 논리들도 등장했다. 지난해(2019년) 여름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그때 자살한 성폭력 가해자의 이름은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dward Epstein, 1953년생).

 

제프리 엡스타인영화의 한 장면. ⓒ 넷플릭스



가해자 자살 이후 미국의 법정은

그런데, 엡스타인의 죽음 이후 미국의 법정은 상당히 흥미로운 결정을 내렸다. 사망으로 인한 공판각하를 결정하지 않은 것이다. 담당판사 리처드 버먼(Richard Berman)은 성폭력 피해여성들을 법정에 설 수 있도록 했다. 그녀들은 거기서 자신의 사연을 '발언'할 기회를 얻었다. 버먼 판사는 가해자가 없다 해도 미국의 법정이 중요한 사건을 적법하게 그리고 '공적으로(in public)' 다루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성폭력 피해자들들이 원하는 건 무엇일까. 추상적으로 말하면 피해자들은 공정한 법정이 추구하는 '정의구현'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며, 그것을 원한다.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 개개인이 원하는 건 대체로 가해자의 공개적 인정(사과)이며, 나아가 "네 잘못이 아닌 가해자의 잘못"이라는 공식적 확인이다. 지난해 여름, 버먼 판사는 바로 그 공식적 확인을 가능케 했다.
 

제프리 엡스타인영화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제프리 엡스타인영화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이 모든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Jeffrey Epstein: the Filthy Rich)> 안에 차곡차곡 담겨있다. 넷플릭스에서 관람할 수 있다. 총 4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편당 러닝타임은 60분 안팎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대하는 '어떤' 반응들

성폭력 사건들을 대할 때 "(피해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반응 아래에는 이런 물음들이 놓여있는 듯하다. 왜 강력히 저항하지 않았는가? 왜 그 야심한 시각에 거길 찾아갔는가? 등등.
 

제프리 엡스타인영화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아닌 게 아니라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하면 어떤 이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피해자의 행동거지에 더 열을 올린다.

그러나, <제프리 엡스타인>은 가해자의 문제적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 가해자가 인간성의 취약한 지점 중 어디를 어떻게 치밀하게 파고들었는지 면밀히, 분명히 지적한다. 또 그가 선택한 피해자들이 대체로 미성년이라는 점도 강력히 비판한다. 그럼으로써 그의 행동이 얼마나 '추잡한(filthy)' 행동인지를 입증해낸다.

엡스타인의 성폭력 가해방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피해자를 피해자 본인의 약점에 집중시키는' 방법이었다. 엡스타인은, 과거의 성폭행 피해경험, 폭력 피해경험, 경제적 빈곤, 불행한 현실과 상황에서 탈피하고픈 젊은이의 희망 등을 아주 신속히 포착했다. 미성년 혹은 스무 살 안팎의 여성, 경력을 위한 재정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사회초년생이, 자신의 약점을 틀어쥔 갑부이자 권력자인 남자 어른의 말을 거역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제프리 엡스타인영화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이 다큐멘터리 안에서는 실제로 생존자('피해자'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음)들이 고백하는 여러 약점들이 공개된다. 생존자들은 용감하게, 수치심을 무릅쓰고 자신들의 약점을 회상한다.

어떤 생존자는, 자신처럼 성폭력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 예측하면서도 여동생을 당시 자신의 재정지원자였던 엡스타인에게 소개했다. 심지어, 어떤 생존자는 자기가 그 끔찍한 성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해 학교 친구들을 가해자에게 '데려다주기'까지 했다(무려 24명이나 말이다).
 

제프리 엡스타인영화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엡스타인의 폭로

엡스타인은 정계, 재계,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두루 사귀면서 각각이 지닌 '약점'들을 간파했다. 사실 엡스타인은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들 이름을 재판정에서 줄줄 나열할 가능성조차 있었다. 그들 중에는 빌 클린턴도 있고, 도널드 트럼프도 있고, 영국 앤드류 왕자도 있으며 그 외에도 많다.

엡스타인의 폭로를 예방하려면 그 유명인사들은 그가 무죄판결을 받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실제로 엡스타인은 2008년에는 사법거래를 성사시켰다. 수사도 기소도 중지됐다. 그때 연방검사가 이를 도왔는데 그는 훗날 트럼프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다.

인간을 개인으로 볼 때는 약점도 있고, 문제도 있다. 약점 없는 사람, 문제 없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렇지만 인간공동체로서 사회는 정의를 추구하며, 진실을 추구한다. 공동체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것이 좋은 사회다.

좋은 사회는 적극적으로 범죄자를 분별하려 노력한다. 그 분별의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 미국 법정에서 담당판사 리처드 버먼이 피고의 사망을 이유로 제기된 공판각하 요청을 거부하고 법률전문가로서 전격적으로 실천했던 행위의 기준을 생각해보자. 그는 바로 이 기준을 적용했으리라. 약점을 가진 게 범죄인가. 약점을 공격한 게 범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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