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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망가뜨린다"... 경찰서 나온 그 남자는 불산을 뿌렸다

[교제살인 ④] 112 신고 후 48시간 안에 숨진 여성들, 누구의 직무유기인가

등록|2020.11.13 07:08 수정|2020.11.13 07:08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서로 사귀다가 상대를 죽인 사건. 우리는 '데이트'라는 서정적 단어를 지우고, 이 죽음을 '교제살인'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 기사는 교제살인 판결문 108건을 분석한, 네 번째 기사다.[편집자말]
 

▲ 가해자는 피해자를 죽였고, 완전히 망가뜨렸다. ⓒ 이주연


한 남자가 문자를 보냈다.

"완전 망가뜨린다."

한 남자는 말했다.

"너를 죽이고 교도소에 가야겠다."

한 남자도 문자를 보냈다.

"니는 보이모 간다 진짜."

세 남자에 의해, 세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자신이 사귀던 남자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 남자들을 앞서 경찰에 신고한 '그 때'로부터 불과 48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모두.

<오마이뉴스>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발생한 '교제살인' 판결문 108건을 분석한 결과, 피해자 108명 중 3명은 경찰 신고 후 48시간 안에 죽음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44시간 36분 

앞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보낸 문자는 이런 것이었다.

"맘졸이고 힘들게 살고 싶지 않으니 내 맘 좀 편하게 해줘. 연락 이렇게 자꾸 하는 거 부담스러우니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돈은 되는 대로 천천히 갚아주구요."

그에 대한 가해자의 답은 이랬다.

"나도 할 만큼 했고, 내가 완전 망가뜨린다."

돌아온 것은 협박, 또 협박이었다. "너는 직장에서도 몇 일 못 간다, 내가 독한 놈이라서 조치를 취해놨다"고도 했다. 두려움에 떨던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했다. 파출소 안에서도 가해자는 경찰들이 보는 앞에서 피해자의 왼쪽 뺨을 때렸다. 경찰은 그 남자를 경찰서로 넘겼다.
 

▲ 판결문에는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가 적시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진은 판결문에 있는 문자를 재연한 것이다. ⓒ 이정환


조사를 받고 나온 다음날이었다. 가해자는 세탁소에서 쓰는 불산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았다. 그 용기가 든 검은 비닐 봉지를 들고 가해자는 피해자의 직장으로 갔다. 퇴근하는 피해자를 마구 때렸고, 쓰러진 피해자의 얼굴에 황산이나 염산보다도 위험하다는 그 맹독성 물질을 뿌렸다. 앞서 피해자를 협박한 가해자가 파출소에서 조사 받은 시간은 2016년 11월 23일 오전 1시 20분경이었다. 살인 사건이 벌어진 시간은 11월 24일 오후 9시 56분경. 44시간 36분만에 그 남자가 돌아왔던 것이다.

그 날, 서울 모 병원으로 옮겨진 피해자는 끝내 숨지고 말았다.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16시간 11분

비슷한 사건이 부산에서도 일어났다.
 
피고인은 이혼 후 홀로 된 자신을 수년간 보살펴준 피해자를 상대로 누범 전과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을 비롯하여 별다른 이유 없이 수시로 피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해 왔다. 오로지 피고인의 폭력 행사로 인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지는 않은 채... (2017노○○○ 판결문 중)

심지어 침까지 뱉었다고 했다. 경찰에 폭행 신고를 하려는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한 짓이었다. 술에 취해 피해자를 때리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그때마다 피해자는 112 신고를 했다고 했다. 그래서 더욱, 가해자가 앞서 했던 말은 끔찍한 것이었다.

"너를 죽이고 교도소에 가야겠다."

보름 후, 그 말이 현실이 됐다. 2016년 10월 2일 오후 10시 51분, 폭행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술에 취한 남자가 자신의 팔을 비틀고 때린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그 남자가 돌아왔다. 10월 3일 오후 3시 2분, 그러니까 경찰 신고 후 16시간 11분만에 그 남자는 칼을 수차례 휘둘렀다.

피해자는 병원으로 후송되지도 못했다. 현장에서 실혈사(失血死, 심한 출혈로 사망함)했다.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3시간 7분 

서울 ○○구에 있는 한 집에 경찰이 출동했다. 신고 내용은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더니 피해 여성의 집에 침입해 나가지 않고 계속 협박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2017년 1월 9일 오후 2시 25분경.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그 남자를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그 남자에게 경찰서는 낯선 곳이 아니었다. 2016년 9월 1일에도 피해자를 때려 형사처벌을 받은 바 있다. 그 때 '다시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까지 썼던 그 남자가 세 달 정도 흐른 후 헤어지자는 피해자에게 보낸 문자는 이랬다.

"사람 아닌 것은 맞아서 죽는 거 아나."
"니는 보이모 간다 진짜."

그리고 창문을 깨고 피해자 집에 버티고 있다가 출동한 경찰과 경찰서로 간 것이다. 2017년 1월 9일 오후 3시 48분경, 그 남자는 피해자가 피신해 있던 지인의 집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 남자는 그 여자가 어디 있을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가해자가 잠깐 만날 것을 요구하자 피해자가 지인과 함께 주차장으로 왔다. 그리고 오후 5시 33분경, 폭행이 시작됐다. 지인이 보는 앞에서 가해자는 피해자를 마구 때렸다. 가해자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사흘 후 피해자는 병원에서 사망했다.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징역 16년을 선고했다.

직무유기
 

▲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발생한 '교제살인' 108건 중 피해자가 죽음에 이르기 전 폭행 등 신고로 가해자에 대해 경찰이나 검찰 수사를 받았거나 재판까지 이뤄진 경우는 19건이었다. 공권력은 '살인의 전조'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사진 촬영 장소는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이정환


이렇게 3명이 경찰 신고 후 48시간 안에 죽음을 당했다. 경찰 신고 후 3개월 안에 살해당한 것으로 확인된 피해자는 12명(11.1%)에 이르렀다. 그 중에는 검찰 수사를 받았거나, 재판까지 받았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공권력이 '살인의 전조'를 분명 인지했던 것이다.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비극이다. 2019년 2월 20일에는 헤어질 것을 요구하는 피해자를 칼로 협박하던 가해자가 112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돌아간 지 2시 간여만에 피해자를 칼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8월 17일에는 이른바 '대구 식당 여주인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헤어진 남자친구(가해자)가 식칼을 들고 협박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현장을 떠난 지 1시간 여 만에 가해자가 피해자를 칼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었다.

직무유기.

어떤 일을 해결하지 않고 방치한다는 뜻이다. 이런 일이 세상에 알려질 때마다 경찰을 비판하는 요지 또한 그러하다. 피해자 신고에 부실하게 대응해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경찰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한다. 최근 있었던 데이트폭력 살인 미수 사건을 수사했던 경기도 모 경찰서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데이트폭력 경우는 남자가 또 찾아올 확률이 높거든요. 부부 같은 경우는 접근금지 명령으로 긴급 임시 조치를 할 수 있고, 그걸 위반하면 유치장에 송치할 수 있어요. 근데 부부 지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피해자한테 임시 숙소를 제공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번 경우엔 피해자 거주지와 일터가 같았어요. 일해야 먹고사는 입장이라 옮길 수가 없는 거죠. 또 주소를, 집을 옮기더라도, 직장 그만두지 않는 이상은... 데이트폭력 같은 경우는 (가해자가) 직장, 일터 다 알잖아요. 이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직원 몇 명 되지 않는데, 다른 데도 출동 나가야 하고 순찰도 돌아야 하는데, 거기만 24시간 지키고 있을 수도 없고... 구조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경찰의 '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구조적 원인이 따로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일선 경찰관의 관점에서 발표된 논문의 문제의식도 역시 비슷했다.
 
데이트폭력은 가정 폭력 사건 처리 경우처럼 피해자의 보호 조치에 한계가 있으므로('접근금지' 등 임시조치 규정이 없으므로) 독자적인 데이트폭력처벌법의 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현재 일선 치안 현장 경찰관들의 여론이다... (중략) 데이트폭력 사건 거의 대부분이 불구속으로 처리되어, 가해자가 경찰서를 나와 다시 피해자의 집 앞으로 온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때부터이다. (2019년 6월, 김한중·강동욱, 데이트폭력 실태와 그 대책방안 중)

<오마이뉴스>가 판결문을 분석한 결론 또한 그랬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이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사람들은, 국회에 있다. ◆

취재 : 이주연·이정환
조사 : 이지혜·박지선·한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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