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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호에서 터져나온 통곡... "제발, 이러지 마"

[교제살인 ⑦] 집요한 스토킹을 당한 그 여자는, 지금도 혼자다

등록|2020.11.18 07:02 수정|2020.11.18 08:54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서로 사귀다가 상대를 죽인 사건. 우리는 '데이트'라는 서정적 단어를 지우고, 이 죽음을 '교제살인'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 기사는 교제살인 판결문 108건을 분석한, 일곱 번째 기사다.[편집자말]
 

▲ 피해자가 물었다. "왜 보자는 건데... 나 죽이려고?" ⓒ 한승호

 
고작 한 달여 만났을 뿐이다. 11월에 만나 크리스마스에 헤어졌다.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게 아니냐'는 남자의 지속적인 의심에 여자는 이별을 고했다. 남자의 집착은 이제 시작이었다.

2017년 12월 말. 여자의 집을 찾아와 비밀번호 해제를 시도했다.

2018년 1월 1일. 남자는 다시 만나주지 않으면 떨어져 죽어버리겠다고 했다. 여자는 '스토커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지만,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신고할 테면 해봐라, 죽여 버리겠다, OO 바닥에서 너 못살게 하겠다, 내가 가만히 있을 것으로 보이냐"고 협박했다.

2018년 1월 6일. 남자는 0시부터 13시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여자의 집 앞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만나자마자 '남자와 외박한 것이냐'고 추궁했다.

남자 : "너 안 보는 데서 죽을 거니까 걱정말고."
여자 : "제발 이러지마... 그러지마 진짜... 무섭게 하지마... 지금 너무 무서워. 내일 왜 모텔에서 보자는 건데..."
남자 : "OO모텔 예약했다."
여자 : "나 죽이려고?"


여자는 결국 죽었다.

2018년 1월 7일, 여자는 5시간 동안 608호 모텔방에 갇혀 있었다. 남자의 손에는 칼이 들렸다. 칼로 자신의 손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다른 남자와 외박한 것이 아닌지 또 추궁했다. "헤어질 거면 같이 죽자"고 했다.

507호 투숙객은 "여자가 엉엉 통곡하듯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진술했다.

여자는 모텔 베란다 난간에서 추락사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피고인을 피하기 위하여 철제 난간 바깥쪽으로 나갔다가 손가락이 미끄러져 추락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남자의 죄명은 '특수감금치사'다.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지독한 스토킹의 흔적은 판결문으로만 남았다.

여자는 스토킹이 시작된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공권력에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남자의 협박을 받고 겁이 나서 미처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7개월 간의 폭력, 스토킹, 그리고 직장 복귀 첫 날...
 

▲ 피해자는 끝까지... 혼자였다. ⓒ 이정환


또 다른 여자가 있었다. 7개월 간 동거했던 남자와 헤어지려고 했다. 남자의 폭력 때문이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꿨지만 문 앞에서 기다리던 남자와 마주쳤다. 그대로 집으로 끌려 들어가 폭행 당했다. 코 수술을 하고 9일 후에나 퇴원할 수 있었다.

남자는 계속 매달렸지만 여자는 헤어지자고 했다. 남자는 앙심을 품었다.

2016년 3월 31일. 남자는 회칼을 샀다.

2016년 4월 3일. 남자는 여자의 집 방범창을 뜯고 침입했다. 다시 만나자며 여자를 칼로 협박했다.

2016년 4월 9일. 남자는 위치추적기를 구입했다.

2016년 4월 10일. 남자는 여자의 친척오빠와 만나 '다시 여자에게 접근하면 주거 침입을 신고 하겠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는 피해자를 만나지 않겠다' 약속했다.

2016년 4월 11~13일. 남자는 차를 빌렸다. 여자의 집과 직장 근처에서 여자를 감시했다.

2016년 4월 12~20일. 여자는 제주도에 머물렀다.

2016년 4월 22일. 남자는 여자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2016년 4월 23일. 남자는 여자의 차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했다.

2016년 4월 25일. 여자는 오전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자신의 일터에 도착했다. 직장에 복귀한 첫 날이었다. 이를 감시하던 남자는 여자가 건물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 오후 1시 26분, 여자를 칼로 찔러 죽였다.


여자는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자신이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그랬고, 방범창을 뜯고 남자가 자신의 집에 침입했을 때도 그랬다. "다시 만나지 말라"거나 "또 접근하면 주거침입으로 신고하겠다"는 친척 오빠의 말로는 여자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공권력의 도움 없이 7개월 동안의 폭력 그리고 그 후 계속된 스토킹을 감당했다.

그 여자는 지금도 혼자다
   

▲ 피해자는 끝내 112에 가해자를 신고하지 못했다. 유호정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인터뷰에서 "신고 이후 나에게 더 큰 위해를 가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신고를 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 한승호

 
여자는 끝까지 혼자였다. 왜 신고하지 못했을까.

한국성폭력상담소 유호정 활동가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가해자가 스토킹이나 협박 등으로 피해자를 위축시키기 때문에 신고 등의 행동에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며 "또한 신고 이후 나에게 더 큰 위해를 가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신고를 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유 활동가는 "신고가 어려울 경우 신뢰할만한 주변에 상황을 충분히 알리고 지지자원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라며 "피해자의 약점을 빌미 삼아 가해자가 협박을 한다면, 가해자의 말을 들어주다 보면 더욱더 큰 협박 또는 위해를 가할 수 있으므로 원천적으로 상대를 차단하는 방법을 권하고 있다, 상담소에서는 긴급 쉼터도 안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어떡해서든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스토킹 관련 처벌 법규가 없기 때문에 범죄 행위의 경우 속수무책으로 피해자들이 당하고만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스토킹은 그 행위의 지속성과 집요함으로 인하여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정신적·신체적 피해가 막대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인식의 부족과 현행 법규정의 미비로 인하여 방치되어 왔던 바, 스토킹을 범죄로 규정하여 형사처벌을 하도록...

1999년 8월 10일 국회 여성특별위원회, '스토킹 처벌에 관한 특례법안'을 공동발의한 정호선 의원의 말이다. 스토킹 관련 법은 1999년 당시 15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다. 그 때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21년이 흘렀지만 변한 것이 없다. 여전히 피해자는 법 바깥에 놓여있다.

그 여자는 지금도 '혼자'다. ◆

취재 : 이주연·이정환
조사 : 이지혜·박지선·한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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