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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죽이고 풀려났다, 성폭행하고 또 풀려났다, 그리고... 연인을 죽였다

[교제살인 ⑧] 그를 풀어줘선 안 됐다, 전자발찌도 채워야 했다

등록|2020.11.19 07:13 수정|2020.11.19 07:13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서로 사귀다가 상대를 죽인 사건. 우리는 '데이트'라는 서정적 단어를 지우고, 이 죽음을 '교제살인'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 기사는 교제살인 판결문 108건을 분석한, 여덟 번째 기사다.[편집자말]
 
살인 : 피고인은 1989년 4월 28일 인천지방법원에서 배우자인 피해자 A를 목 졸라 살해한 범죄사실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2000년 8월 15일 징역 20년으로 감형돼 복역하던 중 2007년 10월 26일 가석방돼 2009년 8월 15일 사면으로 남은 형의 집행을 면제받았다.

특수 강간 : 2010년 1월 28일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서 연인관계로 동거 중이던 피해자 B를 칼과 농약으로 협박 감금하고 4회에 걸쳐 강간한 죄로 5년을 선고받고 2014년 10월 18일 그 형의 집행을 종료하였다.

(2017년 11월 3일, 인천지방법원 제15형사부, 피고인 OOO에 대한 살인죄 판결문 중)

그의 전과다. 자신의 부인을 죽였고, 자신의 애인을 성폭행했다. 그는 또 다시 살인을 저질렀다. 2016년 8월, 동거하던 여성 C의 목을 베었다.

당초, 살인죄로 무기징역형을 받아 아직까지 감옥에 있어야 할 그는 징역 20년으로 감형 받았다. 법무부는 그런 그를 가석방 시켰고, 정부는 그를 사면해줬다. 국가는 그가 "교정성적이 우수하고 뉘우치는 빛이 뚜렷하여 재범의 위험성이 없다고 인정"(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 245조에 따른 가석방 '적격심사신청 대상자 선정 기준') 했다.

그러나 그는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 거듭 범죄를 저질렀다. 결국 또 한 명의 목숨이 사그라들었다.

그는 재판에서 "피해자가 사실혼 관계임에도 수시로 외박을 했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외도, 사치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 격분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격분의 이유를 연인에게 돌렸지만,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피해자는 사망했다.

2017년 11월 열린 재판에서 재판부는 그의 범죄 전력을 나열했다. 그러면서 "상당 기간 수형생활을 하였음에도 교화되지 못하였고, 여전히 폭력성과 생명 경시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라며 "이 사건 범행이나 이전 범행들에 대하여 피해자들의 행실을 탓하는 등 자신의 잘못을 축소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이미 2명의 여성을 죽이고, 또 다른 여성의 삶을 파탄 낸 후 내려진 결론이다. 그는 이번엔, 죽을 때까지 수형생활을 하게 될까.

살인 미수로 가석방... 40일 만에 여자친구 살해
 

▲ 그는 자신의 부인을 죽였다. 그로 인해 무기징역을 받았던 가해자는 징역 20년형으로 감형됐다. 가석방 후 그는 자신의 애인을 성폭행했고, 다시 감옥에서 나온 후에는 자신의 연인을 살해했다. ⓒ 이정환


이런 사례는 또 있었다.

2014년 7월, 피해자는 결별을 통보했다. "남자관계를 의심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피고인을 피해 가출했다"고 판결문에 적혀있다. 가해자는 분노했다. 미리 준비한 과도로 피해자 우측 가슴을 찔러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고, 이를 말리던 2명에게 상해를 가했다. 이로 인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형 집행 중에 2016년 6월 가석방 됐다.

이번에도 법원은 "뉘우치는 빛이 뚜렷하여 재범의 위험성이 없다고 인정"했다.

출소 후 40여 일 만에 가해자는 또 칼을 들었다. 피해자가 운영하던 가게로 들이닥쳤다. 주방에 있던 식칼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피해자를 방으로 불러내 "오늘 장사하지 말라"고 말했다. 겁을 먹은 피해자는 자신의 지인이 가게에 들어오는 순간 밖으로 도망쳤다. 가해자는 화가 났다고 했다. 피해자를 쫓았다. 찌르고 또 찔렀다.

재판에서 가해자는 피해자 탓을 했다. 판결문에는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 조사 받을 당시 피해자의 행실을 탓하며 피해자에 대한 집착을 드러냈다"고 나와 있다.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무기징역이더라도, 25년 정도 있으면 대부분 출소한다"고 말했다. '그'가 20여 년이 흐른 뒤에 세상에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이 교수는 "국가가 '재범 가능성이 없다'고 평가해서 풀어주었는데 재범을 했다? 그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며 "교도소 안에서 모범수였으나 사회에 나와서 괴물이 되는 자들은 교도소 안에 여자가 없어서 얌전했던 것일 뿐 교도소에서 오래 살았다고 갱생된다는 증거가 없다, 형을 행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비판했다.

그는 "재범가능성에 대해 문제제기하면 인권 침해라는 반박이 제기되는데, 회복 불가능한 여성의 죽음보다 중요한 건 누구의 인권이냐"라고 반문했다.

교제살인 전자발찌 기각률 78%, 평균 비율 훨씬 웃돌아
 

▲ <오마이뉴스>가 '교제살인' 판결문 108건을 분석한 결과, 전자발찌 부착명령 기각 비율은 78%에 이르렀다. 이는 평균적인 기각률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 한승호


더군다나 가해자에 대한 전자발찌 부착명령 기각 비율이 교제살인의 경우는 7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평균적인 기각률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오마이뉴스> 분석 결과, 조사 대상 108건 중 검사 측이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청구한 것은 41건이었다. 이 중 32건(78%)은 기각됐고, 재판부가 부착을 명한 건 9건에 그쳤다.

현행 '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 관찰 및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전자장치부착법)'에서는 성폭력, 미성년자 유괴, 살인, 강도 등의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할 수 있게끔 규정하고 있다. 검찰이 부착명령을 청구하면 이를 재판부가 결정하는 구조다.

2019년 9월 국정감사에서 검사 출신인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최근 5년간 전자발찌 기각률이 63%"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송 의원은 <오마이뉴스>를 통해 "전자발찌 부착명령 인원은 매년 줄어들지만 기각률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전자발찌 부착명령에 대한 법원의 적극적인 심리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재판부는 전자장치 부착에 소극적일까.

한 현직 판사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자장치 부착은 범죄예방을 위한 일종의 보안처분으로서 남용될 우려가 상당히 크고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 전자장치 청구가 될 정도의 사건은 상당히 중범죄로서 장기의 형벌이 부과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형 종료 후 다시 전자장치를 부착할 것을 명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 아닌가하는 판단 등에 의해 전자장치 부착을 실무에서 다소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어쩌면 더 빨리 출소한다, '전자발찌' 없이...
 

▲ 전자장치 부착명령이 기각된 32건의 교제살인 사건 가운데에는 피해자를 21차례 찔러 사망케 한 사건도 있었다. ⓒ 한승호


전자장치 부착명령이 기각된 32건의 교제살인 사건 가운데에는 피해자를 21차례 찔러 사망케한 사건도 있었다. 해당 피고인에 대한 전자장치 부착명령을 기각하며 재판부는 "평소의 성격이나 성품이 타인을 살해하거나 상당한 위해를 가할 정도로 폭력적이라고 판단할 근거나 정황은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20년 형을 선고 받았다.

"평소 술을 마신 상태에서 피해자를 폭행하고, 이에 피해자가 112신고를 하면 이를 빌미 삼아 다시금 피해자를 폭행하곤 하였다"는 피고인은 결국 식칼로 피해자를 찔러 살해했다. 징역 15년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평소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과격한 폭력성향이 있음을 단정할 정황은 되지 못하는 점" 등을 이유로 전자장치 부착 청구를 기각했다.

집행유예 기간 중에 피해자의 목을 졸라 죽인 피고인에 대해서는 "피고인에게 폭력 전과가 있으나 피해자와 다투다가 비롯된 전력으로서, 피고인의 범죄전력만으로 피고인에게 폭력 성향이 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10년 형을 선고 받았다.

그들은 10년, 15년, 20년 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빨리 출소한다. '전자발찌' 없이.

이수정 교수는 교제살인 사건의 전자장치 부착명령 기각률이 높은 데 대해 "기본적으로 재판부가 '구애 행위 끝에 일어난 극단적 실수'라고 보기 때문"이라며 "판사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피고인의 재범 가능성을 제대로 판단하려면 피해자 주변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와 수사가 이뤄져야 하는데, 피해자가 이미 사망한 경우 피고인이 자수하면 추가적인 수사도 안 하는 실정"이라며 "판사들이 피고인의 폭력성 재범 가능성에 대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수사단계에서부터 이런 직무유기를 멈춰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판사 역시 "범죄예방을 위해 전자장치 부착을 일반적으로 확대하는 것을 충분히 고려해 볼 여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만약 확대 기조를 취할 경우 수많은 유사사례에서 모두 전자장치를 붙여야 하므로 다소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

취재 : 이주연·이정환
조사 : 이지혜·박지선·한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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