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열매까지... 저는 '대반전' 커피나무를 키웁니다
기대 없었는데 무럭무럭 자라준 커피나무, 이 열매로 커피 마실 날 올까요?
▲ 커피나무 열매나의 커피 나무에 열매가 수줍게 열려있다. ⓒ 오창경
그런데 커피나무가 무럭무럭 잘 커 주는 반전을 일으켰다. 어느새 키가 자라서 큰 화분으로 분갈이도 해주었고 다섯 송이의 꽃을 피워서 커피 열매를 달기까지 했다.
어차피 내 지인들 중에는 커피나무를 키우는 사람들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키울 수 없는 커피나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쭐해지는 기분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 활짝 핀 커피나무 꽃커피나무 꽃에서는 커피향과는 다른 신비한 향이 나기도 했다. ⓒ 오창경
그 감동 그대로 내 SNS 프로필 사진을 커피나무 꽃으로 내 걸어두기까지 했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커피나무 화분을 두고 물 관리만 해 준 것만으로도 나의 커피나무는 착하게도 잘 자랐다.
어느 날 옆 동네에 새로 오픈한 커피숍에 갔더니, 커피 열매가 가지마다 조롱조롱 매달린 장장 수령 10년이라는 커피나무가 입구에 떡 버티고 서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너무 부러웠지만 나의 커피나무에도 커피 열매 풍년을 안겨줄 날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키워 먹는 것만으로도 뿌듯한데, 커피를 키워서 원두를 직접 수확하고 로스팅 하고 갈아서 내려 먹는 맛을 언제쯤 보게 될까?
잎 하나 건드리지 않고 애지중지 키운 커피나무
딱 5개만 열린 커피 열매를 매일 들여다보며 감동의 도가니를 채워가던 어느 날 열매 1개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화분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빨간 껍질에 둘러싸인 나머지 4개의 열매도 갈색 반점이 생기면서 검은색으로 변색되고 있었다. 수확해야 할 열매를 마냥 관상용으로 보고만 있으니 그런 것 같았다.
가슴이 쓰라린 아픔을 삼키며 나머지 커피 열매를 수확했으나 달랑 4알의 원두를 로스팅하고 어쩌고 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어서 그냥 식탁 한쪽에 두고 보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나의 커피나무에는 가지마다 꽃눈이 달린 것이 관찰되었다. 아이들을 키울 때와 같은 가슴 뿌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벌써 코끝에는 원두를 로스팅하는 구수한 향기가 스쳤고 눈앞에는 하얀 커피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거름도 필요하고 햇볕도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유튜브까지 검색해서 계란 껍데기와 바나나 껍질을 갈아서 만든 천연 퇴비를 만들며 커피 농부 코스프레를 했다.
올봄 날씨가 변화무쌍하여 함부로 커피나무 화분을 바깥으로 내놓을 날을 받지 못하다가 동네 고추 모종 심기가 끝날 무렵 어느 날 햇볕이 좋은 날에 현관 앞에 커피나무를 내놓고 물을 충분히 주었다.
그동안 커피나무를 방안에서 아기 키우듯이 키우면서 이파리 한 장도 함부로 따지 않았었다. 너무 무성해서 환기가 안 되는 것도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난 차마 나의 커피나무의 이파리 한 장도 건드릴 수 없었다.
▲ 햇볕에 데인 나의 커피 나무봄 햇살 한줌에 훅 가버린 나의 커피 나무 ⓒ 오창경
동네 다육 식물 화원을 하는 언니에게 자문을 구하니 실내에서 키우던 화분을 갑자기 바깥에 내놓으면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사람도 어두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빛을 쬐면 눈앞이 보이지 않거나 살갗을 데이는 것 같은 현상이라고 했다.
흉측한 몰골로 변한 커피나무를 다시 거실로 들여놓았다. 나의 반려 식물이자 힐링의 나무였던 나의 커피나무가 어처구니없는 한 순간의 실수로 몸살을 앓게 생겼다.
다행히 나의 커피 나무는 긴 장마를 잘 견디고 기력도 회복해 새로 나온 잎들로 채워져가고 있다. 돌아오는 봄에는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가 맺힐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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