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책 출간한 혜화1117, 거기가 어디요?
[에디터만 아는 TMI] 이현화 지음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
오마이뉴스 라이프플러스 에디터만 아는 시민기자의, 시민기자에 의한, 시민기자를 위한 뉴스를 알려드립니다.[편집자말]
재주가 없어 SNS 하는 일에 자신이 없다던 그였는데 왜 이토록 도서정가제 이슈에 관심이 많은 걸까. 출판사 대표면 그저 내가 만든 책이 많이 팔리기만 하면 되는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난 4월 그가 펴낸 책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을 손에 들었다. 여기서 내 궁금증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지만.
이현화씨는 지난 2018년 3월 27일부터 2019년 4월 2일까지 오마이뉴스에 '작은 한옥 수선기'를 연재했다. 그리고 이를 엮어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를 출간했다. 사실 이현화씨와 오마이뉴스의 인연은 깊다면 깊다. 박상규(탐사보도 전문매체 '셜록'의 그 박상규 기자가 맞다. 그도 시민기자였다) 외 49명의 시민기자들이 쓴 사는이야기를 모은 책 <아 유 해피?>(한길사, 2004년 8월 5일 출간)의 편집자가 바로 이현화씨였다.
누구보다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에 애정이 많은 분이다. 나는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출간 당시 한 인터뷰(관련 기사 : 충격적인 한옥 수선 사진, 왜 그랬냐면)에서 그와 나눈 이야기로 한 편의 글을 쓰기도 했다(관련 기사 : "사는이야기는 오마이뉴스의 출발 아닌가요?").
▲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 이현화 지음. ⓒ 유유출판사
사실 나는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에 쓴 내용의 대부분, 그러니까 30대 후반 이후 10년 넘게 동네책방을 꿈꿨던 사람이(이를 위해 해외 책방 탐사는 물론,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그가) 왜 책방이 아닌 작은 출판사를 차리게 됐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1936년 지어진 한옥집이 살림과 일터가 공존하는 집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봤으니까(물론 그가 쓴 연재를 통해서다). 그래서다. 그와 출판사에 대해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던 건.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모르고 있었다는 걸,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가 동네책방에 주목한 이유와 도서정가제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하는 이유까지.
그도 말했지만, 작은 출판사는 책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이 만들고 싶은 책을 내는 곳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출판은 나 혼자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 저자들은 출판사 대표의 소박한 삶을 위해 책을 내는 게 아니다. 나는 더 널리, 더 많이 책을 알리고, 팔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건 몰랐다.
출판사 보도자료는 응당 편집자가 해야 하는 일의 하나로 생각했다. '최소한 봉투를 열고 살펴보게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노력의 최대치'를 끌어올리고, '메일 한 통 마다 담긴 간절함을 메일의 수신자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하는 일이라는 건 몰랐다.
책 한 권 만들면서 '책의 의미가 뭔지, 책을 만드는 행위는 무엇이며, 책을 만들 때마다 독자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 건지, 그 독자들과 책을 나눈다는 의미는 무엇일지' 깊이 고민하는지 몰랐다.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과거에 편집자였을 때처럼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은지, 결국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지를 고민했다'는 건 몰랐다.
알게 된 것도 있다. 출판 생태계를 무너뜨린 줄만 알았던 온라인 서점이 '1인 출판사의 진입로를 넓혀주는' 순기능을 했다는 것, '빠르고 쉽게 책을 만들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1인 출판사가 부흥할 수 있었다는 것도.
또 작지만 매력적인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로 살아남기 위해, '출판사를 어떻게 알릴 것인지' 계속 고민한 끝에 떠올린 게 '동네책방'이란 것도 몰랐던 사실이다. 이를 그는 '작은 존재끼리의 연대'라고 말했다.
'10년 넘게 동네 책방을 꿈꿨던 사람이니까, 동네 책방의 신흥과 부흥, 고통과 고민에 공감하며 보낸 세월이 꽤 길었으니까'라고 말한 그가 동네책방과 함께 살아나갈 방도를 고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였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의 동네책방 어제오늘 관찰기+지속가능 염원기'라는 부제가 담긴 책 <동네책방 생존 탐구>를 이현화씨가 최근 출간한 것도 그런 고민의 결과일 거다. 이 작은 존재들이 살아남기 위해 '완전한 도서정가제'는 꼭 필요한 것일 테고... 그의 SNS 분투가 저절로 이해가 됐다.
나에게 맞는 출판사와 편집자 찾는 법
책을 내려는 분들이 주변에 많다. 올해 책을 출간한 시민기자만 해도 이미 여럿이다. 나도 그랬지만, 첫 책을 낼 때 고민스러운 게 바로, '첫 책은 그래도 이름 있는 출판사, 제법 규모 있는 곳에서 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거다.
그동안 유명한 출판사에서 책을 낸 사람도 봤고, 1인 출판, 혹은 독립출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봤지만, 유명하다고 만족도가 높은 것은 아니었다. 안 유명하다고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잘 알려진 출판사는 회사 시스템 자체가 좋은 책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잘 분업된 시스템 때문에 작가의 의지와 다르게 책이 만들어질 때도 생기더라. 작은 출판사는 작아서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가령 '저자와 편집자가 시간을 두고 지지고 볶는 일'이 가능하다(오해 마시라, 유명 출판사에 그런 과정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큰 회사가 주지 못하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편집자가 왜 편집자인지 가까이서 보고 직접 체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책을 한번 내고 말 것이 아니라면, 작가에게 꽤 중요한 경험이다. 어떤 출판사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시민기자들에게 "유명한 출판사라고 꼭 좋은 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이유다. "궁금한 것 뭐든지 물어보면서 기자님과 맞는 출판사를 찾아야 한다"면서.
나를 저자로 점찍은 단 한 명의 편집자가 내 글의 어떤 점을 눈여겨 본 것인지, 또 그걸 어떻게 엮어서 유의미한 책으로 만들겠다는 것인지 꼼꼼히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 출판사의 유명세를 떠나, 크기를 떠나, 편집자가 그려놓은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판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책이 나왔을 때, 내 만족도가 크다. 어디 내놔도 어여쁜 내 책이 된다.
최근 SNS를 통해 이현화씨와 그가 만드는 책에 대해 소소하게 알게 되는 일이 잦다. 누군가 '주위에 조영남 선생 좋아하는 건 너밖에 없는 거 같다'고 한 말에도 굴하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지난 7월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현대미술에 관한 조영남의 자포자기 100문 100답)을 출간했다. 이어 9월에는 시인 이상 탄생 110주년에 맞춰 조영남 선생의 새 책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 - '조영남의 시인 이상 띄우기 본격 프로젝트'가 출간된다는 소식이다.
나 역시 혜화1117에서, 이현화씨가 조영남 선생의 책을 낸 데 놀랐고, 그 사연이 궁금했다. 이현화씨는 말한다.
"다른 이유는 없다, 조영남 선생만큼 일반 독자들에게 현대미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쓸 만한 사람이 없다고 판단했다. 뛰어난 상상력과 기발함을 현실로 구현하는 조영남 선생이 보여주는 폭넓은 스펙트럼이 다양성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영남'이라는 사람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얻어야 할 게 많다고 판단해서 책을 만들게 됐다."
출판사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논란이 될 만한 일을 한 게 아니라는 설명이 붙었지만, 그와 상관없이 독자들의 머리에 '혜화1117'은 남았을 거다(조영남 선생과 이현화씨는 알고 지낸 세월이 길다). 나처럼 궁금했을 거다. 유유출판사가 낸 <미래의 서점>과 <동네책방 생존 탐구>를 콜라보 해서 홍보하는 것을 보고 "혜화1117이 어디냐?"는 질문도 들었다지 않나. 차곡차곡 책 목록이 한 권씩 늘어날 때마다 출판사에 대한 기억도 쌓이는 것이겠지.
부디 그의 말대로 "할 수 있는 만큼만 무리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고요히 내 속도에 맞춰 그렇게 일하며 한 뼘씩 자라는 출판사 혜화1117"을 오래 지켜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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