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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8개월'로 얻은 '피의자 2년'... "지옥 같은 나날들"

[뉴스 후] 정책개발비 유용 고발돼 '불기소 송치' 뒤 1년 5개월 감감 무소식

등록|2020.09.21 16:15 수정|2020.09.21 16:15

▲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은 2018년 10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참석해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에게 질의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팔다리가 잘린 것 같다.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었다."

전직 국회 인턴 비서 A씨가 <오마이뉴스>를 찾아와 내뱉은 말이었다. 자신을 고발한 이들을 향해 "미안하지도 않은가"라며 "사람이라면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라고 한탄했다.

A씨가 기자에게 처음 연락했던 건 19개월 전이었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계양갑)의 보좌진으로 일했던 그는, 의원실로부터 고발당했다. 의원실을 그만두기 직전, 정책개발비 980만 원 중 818만 원을 본인의 개인 계좌로 되돌려 받아 이를 횡령했다는 혐의였다.

A씨가 유 의원실에 근무했던 건 2016년 5월부터 12월까지였다. 의원실로부터 고발을 당한 건 2018년 11월이었다. <뉴스타파>가 연속보도한 '세금도둑 국회의원 추적' 시리즈를 통해 유동수 의원실의 정책개발비 유용이 드러났고, 이후 유 의원실의 서아무개 보좌관과 인턴 비서 A씨 사이의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디자인 업체로부터 되돌려 받은 818만 원의 행방은 의원실 매식비 통장으로 사용하던 인턴 비서의 계좌에서 현금으로 인출된 게 마지막이었다. A씨는 이를 서아무개 당시 보좌관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고, 서 보좌관은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맞섰다(관련 기사: 818만원 세금 빼돌렸던 유동수 의원실, 인턴에게 뒤집어 씌웠나).

A씨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언론과 접촉한 건 영등포경찰서의 수사가 시작된 후인 2019년 2월이었다. 몇몇 매체의 보도가 나간 뒤, A씨로부터 1년 7개월 만에 다시 연락이 왔다. 그는 "지옥 같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파혼에 입사 취소까지... A씨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살았나"
 

▲ A씨가 관리한 통장에서 818만 원을 인출한 내역. ⓒ NH농협은행


영등포경찰서는 조사 끝에 A씨에게는 혐의가 없다고 판단하고 불기소 의견으로, 반면 서 전 보좌관은 '기소 의견'으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송치했다. 경찰은 서 보좌관의 지시로 A씨가 돈을 인출해 봉투에 담아 그에게 전달했다고 봤다.

경찰이 서울남부지검에 이 사건을 보낸 건 2019년 4월이었다. 이때만해도 A씨는 몇 달 내에 검찰이 결론을 내려줄 것이고, 최대한 빨리 이 사건이 마무리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헛된 기대였다. 1년 5개월 동안 검찰은 A씨나 서 전 보좌관을 불러 조사하기는커녕 그 어떤 절차도 진행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경찰 수사가 끝난 뒤, A씨는 유동수 의원실에 고발을 취하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A씨는 '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으로 남았고, 삶은 피폐해져 갔다. 그는 "살과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로 몸이 많이 안 좋아졌다"라며 "내가 그렇게 잘못 살아왔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소연했다.

검찰에 사건이 묶여 있는 동안, A씨는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과 헤어졌다. 연인 측 가족에서 이 사건을 이유로 혼인을 반대하고 나선 것. 나름대로 새 출발을 해보려고 했던 A씨는 입사가 결정됐던 한 회사로부터 입사 취소 통보까지 받았다. 업무상 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는 그에게 회사 업무를 맡길 수 없다는 이유였다. 어떻게든 일상을 버티고자 찾아간 커뮤니티에서는, 도움을 호소했던 이들에게 오히려 안 좋은 소문이 돌아서 관계 단절을 겪었다.

A씨는 "하루는 괜찮다가도, 또 어떤 날은 극단적인 생각을 할 만큼 너무 힘들고 괴롭다"라며 "잘못된 일을 지시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믿고 열심히 일했는데 한순간에 범죄자로 몰고 가니 너무 억울하다"라고 토로했다. "하루 빨리 끝나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이야기였다.

2019년 11월 "계좌추적·압수수색 했다" 이후 감감... "정치적 고려 때문?"
 

▲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지난 6월 2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과 관련해 심의위원회를 마치고 나온 모습. ⓒ 연합뉴스


지난 7월, A씨는 검찰의 처분을 앞당기기 위해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다.

세금도둑잡아라, 좋은예산센터,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등은 앞서 2018년 10월과 11월, '입법 및 정책개발비' 유용과 관련해 유동수, 곽대훈, 조경태, 경대수, 박덕흠, 안상수, 이은재, 백재현, 황주홍, 강석진 등 10명의 의원들을 고발하고 서청원 의원을 수사의뢰했다. 그러나 검찰은 해당 사건들의 수사 역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가 지난해 11월,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검찰의 늑장수사를 비판하자,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남부지검은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계좌추적 및 의원실 압수수색 등을 진행했음을 알렸다. 그러나 이후로 다시 감감 무소식이다. 하승수 대표는 21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전화하면 검토 중이란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다"라며 답답해 했다.

A씨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검찰수사심의위 소집신청서를 서울남부지검에 제출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심의위 구성 없이 절차를 종료'한다는 통보였다.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이 아니기에 "심의대상이 아닌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해당 사건이 왜 서울남부지검에서 1년 5개월 동안 별다른 진척 없이 묻혀 있었는지 그 이유는 밝혀진 게 없다. 통상 이런 종류의 사건은 3개월 내외로 결정이 난다고 한다.

당시 이 사실을 보도한 법조전문매체 <로이슈>는 "A씨가 무혐의로 확정될 경우, 유동수 의원실을 무고죄로 처벌해야 하는 것 때문에 사건처리를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그 배경을 추측했다.

하승수 대표 역시 "정치적 고려가 없다면 사건을 이렇게 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라며 "고발인 조사도 마쳤고,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물적 증거도 확보돼 있는데, 사건을 이렇게 지연시키고 있다는 건 명백하게 정치적 고려를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검찰의 행태로 선량한 시민의 인권이 짓밟히고 있다"라며 "인턴 비서의 경우 피의자 신분으로 거의 2년을 보내고 있는 셈인데, 검찰은 왜 이렇게 정치적으로 나오는 건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하 대표는 "국회의원들을 봐주기 위해 정치적으로 눈치를 보고 있거나, 아니면 사건을 쥐고 있다가 적절하게 이용하기 좋을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고도 의혹을 제기했다.

서 전 보좌관 "빠른 처리를 바라는 건 나, 경찰 수사는 편파부당"
 

▲ 여의도 국회의사당. ⓒ 권우성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서 전 보좌관 역시 <오마이뉴스>를 만난 자리에서 본인의 결백을 주장했다. 사건 처리로 인한 고통도 호소했다.

그는 "경찰이 편파부당한 수사를 했다"라며 자신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것을 납득하지 못했다. "죽을 생각까지 했다. 내가 죽으면 이 사람들이 나를 믿어줄까 싶었다"고 말했다.

의원실 보좌관 일을 그만둔 서 전 보좌관은 자신 역시 검찰 수사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물질적‧정신적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불면에 시달리며 밥도 먹지 않으니 우습게 살이 빠지더라"라며 "그깟 818만 원 때문에 내 25년의 경력과 명예 등 모든 것이 날아갔다. 내가 왜 그랬겠는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변호인과 과거부터 나눈 카카오톡 대화 등을 보여주며 "검찰이 빨리 사건을 매듭지어주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건 바로 나"라고 항변했다.

이 사건은 이달 초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으로 이첩됐다. 서씨가 자신의 주소지가 있는 고양지청으로 이관을 요청한 데에 따른 것이다. 서 전 보좌관은 "검찰 수사만 이뤄진다면, 내 결백도 증명할 수 있고 모든 게 다 깨끗이 끝날 것인데, 그렇지 못하니 마냥 예정 없는 수사를 기다려야 하는 게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라며 "다른 사건들과 묶여서 수사가 안 되고 있으니, 따로 떼어두는 게 훨씬 진척이 빠를 것이란 변호인의 조언을 듣고 결정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남부지검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고양지청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해당 사건이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다른 사건도 워낙 많아서 아직 세밀하게 들여다보지는 못했다"라며 "개별 사건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나 약속을 할 수 없음을 이해해달라"라고 설명했다. 유동수 의원실 또한 "검찰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의원실이 특정한 입장을 밝히기 어려움을 양해해달라"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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