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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여학생 성폭행한 태권도 사범, '성범죄 전과자'였다

[그 코치 봐준 그 판결 ⑧] 범죄 이력, 채용에 영향 없어... 팽배한 패거리 의식

등록|2020.10.05 07:33 수정|2020.10.05 07:33
스포츠 폭력·성폭력 문제는 그 심각성에 비해 우리 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19년 심석희 선수의 성폭력 피해 폭로, 올해 최숙현 선수의 죽음을 거치며 스포츠 폭력·성폭력 문제가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20년 동안의 스포츠 폭력·성폭력 판결문 163건을 입수해 분석했다. 판결문에 담긴 사건의 심각성·특수성,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른 양형사유 등을 여러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이 기사는 그 여덟 번째 기사다.[편집자말]
2015년 여름, 지적 장애를 앓고 있던 10대 여중생이 강도 높은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는 피해 여학생이 다니던 태권도장의 사범이자, 성폭행 전과자였다.

가해자는 첫 범행 이후 2년 남짓 피해 여학생에게 수차례 강간·강제추행 등을 저질렀다. 범행 수위도 점차 높아졌다. 성추행 및 음행 강요로 시작된 범행이 성기 삽입에 이르는 성적 학대, 강간까지 이르렀다.

'태권도 사범님' 뒤에 숨겨진 이름
 

▲ 2015년 여름, 지적 장애를 앓고 있던 10대 여중생이 강도 높은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는 피해 여학생이 다니던 태권도장의 사범이자, 성폭행 전과자였다. ⓒ pixabay


가해자의 형사처벌 전력은 첫 범행 발생 후 3년이 지난 후, 법정에 오른 후에야 드러났다. 2018년 2월께 위 사건을 맡았던 대구지방법원 1심 (재판장 정재수) 판결문에는 가해자를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피고인은 2000. 5. 12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에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강간등상해·치상)죄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동종 범죄전력이 있다.

이어 1심은 "피고인에게 성폭력 범죄의 재범 위험성이 인정된다"면서 아래의 사실을 덧붙인다.
 
피고인에 대한 한국 성범죄자 위험성 평가척도(K-SORAS) 평가 결과, 재범위험성이 13점으로 '높음(13~29점)' 수준에 해당하고, 정신병질자 선별도구(PCL-R) 평가 결과 재범위험성이 9점으로 '중간(7~24))' 수준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내용은 첫 범행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나서야 알려졌다. 피해 여학생과 태권도 도장 관계자, 학부모 등은 이러한 사실을 법정에 서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 이들에게 있어 가해자는 '성범죄 전과자'가 아닌, '태권도 사범님'일 뿐이었다.

집행유예 받은 성범죄 전과가 감형 사유?

이 사건은 가해자의 전과를 바라보는 재판부의 판단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심과 달리 항소심(2심)에서 가해자의 전과가 '집행유예'로 그친 것을 감형 사유 중 하나로 고려했기 때문이다.

대구고등법원 2심(이재희 재판장)은 징역 6년을 선고했던 1심 판결 일부를 파기하고 가해자에게 징역 4년을 다시 선고했다. 당시 가해자(피고인) 측은 원심판결을 받은 후 형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다시 성폭력 범죄를 범할 위험성이 없는데도 보호관찰명령을 선고한 건 위법하다는 취지로 항소를 한 바 있다.

2심의 판단은 형이 무겁다고 주장한 가해자 측의 입장을 받아들인 결과다. 보호관찰명령을 내린 원심의 판단은 유지됐다. 2심은 가해자의 형량을 2년 줄인 이유 중 하나로 과거에 저지른 성범죄의 형량을 언급했다.
 
피고인은 성폭력범죄의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상해·치상)죄로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또다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

한편 피고인은 (중략) 실형을 선고 받은 전력은 없다.

이같은 2심의 판단은 1심과 대비된다. 앞서 1심은 가해자에게 동종 전과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한 반면, 2심은 동종 전과의 형량을 참작 사유로 고려했기 때문이다.

2심은 앞선 이유와 함께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지급하고 용서를 받은 점,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바라고 있다는 점을 종합해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형은 그 책임에 비하여 다소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폭력·성폭력 저질러도 채용에 영향 없는 체육계
 

▲ 서울 중구 저동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 김시연


<오마이뉴스>가 분석한 163건의 판결문에서는 위 사건과 같이 체육계 지도자가 이전과 동일한 범행을 저지른 경우가 다수 확인됐다.

▲강간 등 성범죄 전과가 있었던 축구부 감독이 가정 형편 어려운 12세 학생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그루밍 형태의 강간을 저지른 사건 ▲성폭력 특별법을 위반해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태권도 사범이 집행유예 기간 동안 본인의 학생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다시 저지른 사건 ▲폭행 전과가 있었던 태권도부 사범이 제자 엉덩이를 나무 몽둥이로 20여 회 내려쳐 치료일수 미상의 상해를 입힌 사건 ▲전과가 수회 있던 프로 골퍼가 14살의 지도학생을 강간 및 강제추행한 사건 등이다.

이와 관련해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장은 "범죄를 저지른 체육계 지도자들이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현장에 복귀하는 경우가 잦다"며 "체육계에서 지도자들의 재범이 잇따르자 삼진아웃제도(인권침해 사례가 3회 이상 적발 시 영구 제명 처분), 원스트라이크아웃제도 등 여러 대책이 나왔지만,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7월 내놓은 '스포츠계 인권보호체계 개선을 위한 권고' 결정문에서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인권위는 "각 기관의 지도자 및 선수 채용 등과 관련한 요건에 폭력·성폭력 등 인권침해 행위 전력을 결격사유나 계약해지 사유로 정하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인권위는 "최근 들어 각급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폭력·성폭력 등과 관련한 범죄나 징계 전력이 있는 자의 채용을 막고자 관련 장치들을 운영하고 있지만, 제도적으로 정착된 것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또 "운동 경기부를 운영하는 각 기관 및 체육단체들은 폭력·성폭력 관련 징계자의 정보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면서 "체육단체 상호 간 징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국회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감하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 25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인권침해 등으로 유죄 판결을 확정받은 체육 지도자에 대한 인적사항 및 비위사실 공표 ▲체육인의 징계이력, 인적사항, 경기실적 등을 통합 관리하는 통합정보시스템 구축·운영 등의 내용이 담긴 국민체육진흥법 후속 법안을 의결한 것이다.

이를 두고 최 소장은 "사실 현장에서는 법까지 가지도 않고, 그 전에 서로 봐주는 의식이 팽배하다. 온정주의라고도 하고 패거리 의식이라고도 한다"면서 "지도자가 된 사람들은 대체로 종목 협회 관계자들과 다 아는 사이다. 그렇다보니 아무리 전과가 있더라도 쉽게 이들을 배척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는 우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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