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주장] 100년의 시각장애인 안마, 개방만이 정답인가

법원, '비시각장애인 마사지사'에 첫 무죄... 시각장애인 안마사 생존권 어떻게 되나

등록|2020.09.28 10:45 수정|2020.09.28 10:45
일제 강점기인 1913년부터 시각장애인들은 '제생원 맹아부'라는 곳에서 안마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10년 후인 1923년에는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시각장애인들은 안마 이외에는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했기에 이를 통해 생계를 이어나갔었다. 해방된 후에는 안마법 관련 법적 뒷받침이 없어 어렵게 생활하기도 했다.

당시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안마 피리를 불며 집 앞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면, 돈 있는 어르신들이 창문을 열고, "저기 그 안마사 양반, 우리 집으로 오시오"라는 소리가 들린다. 더듬더듬 지팡이를 짚어 그 집으로 방문해 안마한 후, 일당을 받는 식으로 시각장애인들은 생계를 꾸렸다. 시각장애인에게 안마 일은 피눈물 나는 일이다. 때로는 안마 피리를 불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시궁창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있다. 시각장애인과 안마업은 100년 동안,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대한민국 의료법 82조는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증이 취득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이는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안마사 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직업이 없는 시각장애인들의 현실을 반영한 법이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법률을 정면으로 뒤엎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8단독(최창석 부장판사)은 무자격으로 안마 업을 한 피고인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최 부장판사는 "시각장애인에 한해 안마사 자격을 부여한 것은 헌법상 생존권 보장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근래 안마나 마사지 시장의 수요가 폭증하고 있고 마사지업 종사자는 최소 1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데 반해 자격 안마사는 1만 명도 채 안 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수요에 턱없이 못 미치는 시각장애인 자격 안마사에게 모든 안마행위까지 전적으로 독점하게 하는 것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의 직업선택권과 평등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 입장에서도 다양한 안마를 필요와 기호에 따라 선택해 즐길 수 있는 '행복추구권'이 침해당하는 상황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탈법행위에 동참하게 하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나는 되려 묻고 싶다. 비장애인의 직업 선택권을 위해, 시각장애인의 생존권과 사회 참여권은 뒷전으로 밀려나야 하는가?

시각장애인의 안마 자격증 취득 독점권과 관련한 법이 국회 본회의로 처음 입법이 된 건 2006년이다. 그 이후로 비장애인 안마 업자들의 헌법소원 제기가 빈번히 있었고, 이에 헌법 재판소는 4차례(2008년, 2010년, 2013년, 2017년)에 거쳐 모두 '합헌' 결정을 내린 바가 있다.

당시 재판부의 결정은 "시각장애인 안마 제도는 생계보호를 넘어, 스스로 안마시술소를 개설하여 운영할 수 있는 자아실현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한다. 즉, 비장애인의 직업선택 자유나 행복추구권보다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이 앞선다는 판례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자격 비장애인 안마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최근 판결은 4번의 헌법 재판소의 결정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이다. 또한 의료법 88조에 의해, 무자격 안마사가 안마 행위를 할 경우에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을 어긴 판결이다. 법률은 공동체를 이루는 다수가 합의한 약속이다. 이를 무력화시키는 초 법적 판사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비장애인의 안마 자격증 취득이 허용되면, 시각장애인들의 유일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는 이웃나라 일본의 사례만 비춰 보더라도 예측 가능한 일이다. 일본은 안마업이 개방된 나라 중 하나이다. 필자는 10여 년 전, 우연한 기회로 일본 여행을 갔다 온 적이 있는데, 그때 일본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일본에서 안마업이 개방된 이후로 우리 시각장애인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 "한국에서는 안마업이 개방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그들의 슬픈 목소리를 나는 기억한다.

시각장애인들이 바라는 건 그리 큰 게 아니다. 스스로 벌어 먹고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한 일자리가 보장받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시각장애인 안마사들 간의 내부적인 결속이 더욱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또한 불법 윤락행위를 위한 안마시술소는 즉각 폐업시켜야 한다. 동시에 지속적인 안마 업계 발전을 위한 안마사들의 기술적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해당 글쓴이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