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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눈물... "우리 아들은 짧지만 잘 살았어"

[새 이름을 갖고 싶어 ⑤] 한빛의 오순절 추모 영상을 보며

등록|2020.09.27 21:01 수정|2020.09.28 09:45
2016년 10월 26일, 방송계의 비인간적인 제작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생을 달리한 고 이한빛 PD를 향한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한빛에 대한 그리움과 한빛이 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기자말]
 

▲ 누구는 아이들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크겠다며 부러워했다. 그러나 솔직히 아니다. 단지 내가 편하려는 궁여지책이었는데, 어느 날 대단히 너그러운 엄마로 포장되어 있어 당황스러웠다. ⓒ pixabay


한빛, 한솔이 어렸을 때 친정엄마는 항상 이사 가기 전날 같은 우리 집에 대해 안절부절하셨다. 정리를 해주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해했다. 하긴 장난감을 마음대로 어지럽혀도 잔소리 안 하고 좀 너무하다 싶을 때나 큰 바구니에 담게 했으니 거실은 항상 정신없었다. 발로 밀고 다닐 때도 있을 만큼 대책이 없기도 했다.

그럼에도 무심하려고 애썼다. 누구는 아이들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크겠다며 부러워했다. 그러나 솔직히 아니다. 식탁 위에 첩첩이 쌓여 있는 책, 볼펜, 영수증 등이 눈에 거슬려도 정리를 못 하면서 어린 애들한테 정리를 강요하기가 그랬다. 단지 내가 편하려는 궁여지책이었는데, 어느 날 대단히 너그러운 엄마로 포장되어 있어 당황스러웠다.

또 주위에서는 6학년 때까지 한빛, 한솔을 태권도학원만 보내는 것을 보며 대단하다고 했다. '같이 놀 친구들이 없다'며 한빛이 보습학원에 보내 달라고 했지만, 무시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내 이기적인 계산이었지 괜찮은 엄마라서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멋대로 내 기준대로 한빛의 생각은 물어보지도 않고 어른으로서 횡포를 부렸다. 좀 돌아가더라도 한빛 생각을 읽어야 했는데 놓쳤다.

"그거 문제집에 다 나와요"

한빛 1학년 때 학교 공개의 날이 있었다. 교사로서 수업 공개를 많이 했지만, 학부모로서 아들의 수업을 참관하려니 미리부터 가슴이 설렜다. 1학년 교실은 어떨까? 한빛은 어디쯤 앉았을까? 대답은 잘할까? 모든 게 궁금했다.

학부모가 거의 안 오는 중학교 공개수업을 상상하고 시간에 맞춰 가니 교실 뒤가 꽉 차 있었다.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 앞에 서 있는 학부모 어깨 너머로 한빛을 찾았다. 한빛은 4분단 구석에 있었다.

자연시간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이 단풍잎을 보여주면서 생김새에 대해 질문했다. 많은 아이가 참새처럼 짹짹대며 손을 들었다. 한빛도 거의 일어나다시피 하고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이 다른 애를 지명하자 실망하는 것 같았다. 일상적이고 당연한 상황인데도 엄마 눈에는 자기 아들만 보인다. 아이의 작은 표정 하나하나에 마음을 포개게 된다. 1학년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한 남자아이가 "아기 손처럼 생겼어요"하고 대답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대단히 창의적인 답변이었다. '중학교 국어시간에도 저런 답이 나오지 않는데 역시 어릴수록 상상력이 풍부하구나, 저 상상력을 잘 키워줘야 하는데 중학교 교사인 내가 다 망치고 있나' 순간 반성도 했다.

저녁때 한빛에게 물었다. "너는 뭐라고 답하려고 했어? 걔 대답이 멋지더라. 아기 손... 걔는 책을 많이 읽었나 봐"하니 한빛이 "그거 문제집에 다 나와요" 하는 게 아닌가? 학기말 대비로 장만했던 긴 문제집을 들춰보았다. 정말 있었다. 답이 아기 손이었다.

당시는 생활통지표에 아이의 학습발달과정을 서술형으로 기재했기에 점수에 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교사들은 각 교과별로 일일이 학습과정을 기록하는 데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학기 말에는 생활통지표 기초자료를 위한 평가가 있었다.

점수화되지 않는 분명 부담없는 평가임에도 나역시 속물이었다. 학기말에 문제집을 한 권 사서 풀게 했다. 최소한 시험이란 게 뭔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였다. 아니 나중에 시험이라는 것을 보게 될 때 낯설지 않게 하기 위한 준비였다. 이제 1학년인데.

보습학원을 안 보내고 문제집 한 권으로 학습 뒷바라지를 했다는 것은 괜찮은 엄마라서가 아니었다. 초등학교에 일제고사가 있고 평가가 많았어도 나는 초월할 수 있었을까? 한빛한테 공부얘기 안하고 태권도만 열심히 하라고 했을까? 그랬을 거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나에게 한빛의 인생 목표는 행복한 삶이 아니었다

중학생 학부모와 상담하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엄마가 아이의 학습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각오로 초등학생 때처럼 끼고 관리할 때이다. 1학년 때는 원하는 결과를 얻겠지만 학년이 높아지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이의 성적은 한없이 떨어진다. 어이없는 결과에 당황해 다시 기를 써 보지만, 이미 아이는 자기주도능력이 없어 모두 좌절할 수밖에 없다. 내 아이는 달라 하면서 미련을 못 버리는 엄마들이 많은 게 슬픈 현실이다.

나는 이런 사례를 미리 학습했음에도 엄마로서는 똑같았다. 학원을 안 보냈던 것도 나의 속물 계산이었다. 내 아이는 자기주도학습을 잘 할 거라는 착각과 어릴 때 치열하다가 정작 고등학교 가서 학습 흥미를 잃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증 때문이었다.

결국 나에게 한빛의 인생 목표는 행복한 삶이 아니었다. 주체적인 삶도 아니었다. 대학진학이었고 아이 인생도 내가 관리하겠다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만큼 교만했고 그렇게 한심했다.

한빛 오순절 추모제 때(불교의 49재와 같이 카톨릭에서 50일 되는 날 하는 추모제) 대학친구들이 만들어 온 영상을 보았다. 친구들은 앞에 놓인 많은 과제 중에 그 길이 비록 이익이 없고 갑갑하더라도 우선순위라고 생각되면 기꺼이 선택한 한빛을 추억했다.

그 속에서 한빛은 많이 웃고 있었고 환하게 빛났다. 저렇게 행복했다면, 저렇게 열심히 잘 살았다면 왜 그 중 한 조각이라도 절박하게 외로울 때 매달릴 무엇이 되어 줄 수 없었을까? 한빛은 분명 지금 없는데 살았을 때 행복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한빛아빠는 "한빛은 정말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았어. 짧지만 잘 살았어. 저렇게까지 열심히 산 줄은 몰랐어. 그러니 우리 한빛 잘 보내자"하며 울었다. 치열하게 고민하느라 시간을 쪼개 살면서도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집중했다면 한빛아. 엄마도 너에게 정말 잘 살았어하며 보내야 하니?

가슴이 먹먹해 왔다. 그러나 한빛아 너가 한 순간이라도 행복했다면 엄마도 그 순간만 기억하며 살아갈게. 한빛아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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