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도 끄떡없는 소고깃집 청년 사장, 그가 돈 모아 한 일
[관서동 사람들] 봉천동 '소블리' 유영경 공동대표의 독특한 투잡
서울 관악·서초·동작 청년들과 함께 알고 싶은 가게를 소개해드립니다. 관·서·동 청년세대 지원센터 '신림동쓰리룸'과 '프로딴짓러' 박초롱 작가가 안내하는 '관서동 사람들'은 당신 주변의 바로 그 사람들이 동네에서 먹고, 살고, 나누고, 웃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글쎄, 아파트 한 채 사고 세계여행? 아무것도 안 하고 평생 먹고살기?"
돈에 여유가 생기면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대개 자신이 갖고 싶은 것 혹은 즐기고 싶은 것을 이야기한다.
서울청년센터 관악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에서는 지역 가게를 소개해 지역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동네 상권 안에서 소비할 수 있도록 돕는 '관서동 사람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소블리의 유영경 공동대표를 만났다.
고깃집과 방문요양센터, 그 다음
▲ 봉천동 소블리 ⓒ 서울청년센터 관악오랑 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
- 고깃집과 방문요양센터를 함께 운영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독특한 투잡입니다. 연관성이 낮아 보이는데 어떻게 이 두 곳을 동시에 운영하게 됐나요?
"2018년도 3월에 감성 소고깃집 소블리를 운영하게 됐고, 2019년 12월에 아리아케어 동작사당센터를 시작했어요. 사실 고깃집을 운영하다가 어르신 방문요양센터를 한다는 게 조금 뜬금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제가 장사를 시작하고 1년 후에 우연한 기회로 친구와 봉사활동을 하게 됐거든요. 그때 어르신들 대상 봉사를 하면서 느낀 점이 많았어요. 내 일과 관련지어서 어르신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라는 고민을 시작하게 됐죠. 그런 고민이 점차 구체화돼서 방문요양센터까지 열게 됐네요."
- 어르신 대상 방문요양센터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치매, 파킨슨병이 있거나 몸이 불편하셔서 일상생활이 어려우신 어르신들께 좋은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을 연결해드려요. 요양보호사님께서 어르신들을 잘 도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리고 옆에서 필요한 부분을 도와드리고 있어요. 저는 낮에는 방문요양센터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고깃집이 문을 열면 이곳으로 와서 일해요."
- 그곳에서 대표님이 하시는 일은 구체적으로 뭔가요?
"어르신들이 나라에서 돈을 받을 때 여러 행정 절차를 어려워하시거든요. 그런 일을 도와드리거나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께서 편하게 일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일을 해요. 차로 어르신들을 바래다 드리거나 몸 쓰는 일은 주로 제가 하죠."
- 고깃집과 어르신들을 위한 일이 시너지를 내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만약에 제가 고깃집을 키워서 프랜차이즈화하게 되면 식자재가 많이 필요하게 되니까요. 제조를 위한 공장도 필요하게 되겠죠. 그럴 때 어르신들께 오래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 요양원에 급식을 납품해봐도 좋을 것 같고, 실버타운에 우리 고기를 제공해드릴 수도 있겠죠. 저희가 공장을 언젠가 만들게 되면 거기서 일하시는 어르신들이 또 다른 어르신들을 도울 수 있으면 더 좋고요. 초고령 사회인 만큼 노인분들과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려면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럼 서로 시너지가 나게 되겠죠."
코로나 위기에도 흔들림 없는 비결
▲ 봉천동 소블리 내부 ⓒ 서울청년센터 관악오랑 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
감성 소고깃집 소블리는 봉천동에서 유명한 '핫플레이스'다. 장사를 시작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고, 장사 이력이 없는데도 주말에는 대기손님이 있을 정도로 붐비고 단골도 많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까?
- 소블리는 합리적인 가격, 빈티지한 감성 인테리어라는 콘셉트를 유지하고 계신데요. 어떻게 이런 콘셉트를 생각하게 되셨나요?
"가게를 시작하기 전에 잘 나가는 소고깃집을 많이 돌아다녀 봤어요. 느낀 바가 많았죠. 정육식당은 싸고 양이 많아서 좋았고, 오마카세 집들은 분위기도 좋고 고기도 맛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남들이 하는 콘셉트대로 따라 하면 생각보다 운영이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럼 우리의 강점은 뭘까 고민하게 됐죠. 오마카세보다 고급스러움은 떨어지지만 정육식당보다는 맛과 분위기가 있는 콘셉트를 만들었어요. 그게 빈티지한 감성 인테리어에 합리적인 가격인 소블리를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 봉천동에 자리를 잡으신 이유도 궁금해요.
"서울에 와서 처음 터전을 잡은 곳이 봉천동이에요. 저희가 소블리를 시작하려고 했을 때 봉천동 주변이 '샤로수길'이라는 이름으로 뜨기 시작했죠. 임대료도 지나치게 비싸진 않았고요. 모든 부분이 잘 맞아서 이곳에서 시작하게 됐죠."
소블리로 들어가는 복도에는 공동대표 오영태님이 소와 함께 찍은 흑백사진이 빼곡하다. 내부에도 유화로 감각적인 소 그림이 걸려 있다. 이들은 왜 많은 창업 아이템 중에 소를 선택했을까?
- 창업을 고민하신 거라면 분식집이나 카페도 있었을 텐데요. 소고깃집이라는 진입장벽이 높은 종목을 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저와 함께 소블리를 공동 운영하는 친구의 매형이 시골에서 소 농장을 하세요. 저랑 제 친구가 별다른 수입도 없이 놀고 있을 때 한번씩 불러서 일도 시켜주고 밥도 사주셨죠. 매형을 따라다니면서 좋은 경험을 하게 됐어요. 소고깃집을 해보면 괜찮겠다란 생각이 그때 들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아는 게 많지 않아서 덤벼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코로나19 때문에 여기도 타격이 좀 있나요?
"2~3주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다시 단골들이 꾸준히 찾아주세요. 저희가 매장을 꾸준히 소독하고 직원들도 마스크를 절대 벗지 않거든요."
- 코로나19 유행에도 매출이 꾸준한 이유가 뭘까요?
"저희가 고기를 직접 구워주는 일을 하다 보니 손님들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단골이 많이 생겼어요. 정 때문에 찾아주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퇴사 후 자영업? 말리고 싶어요"
▲ 봉천동 소블리 구성원들 ⓒ 서울청년센터 관악오랑 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옛말에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 나이 든 어르신들도 자식에게 자영업을 권하기보다 에어컨 잘 나오는 사무실에 앉아 있기를 기대한다. 지금은 소블리가 잘 자리를 잡았지만 처음에 자영업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탐탁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자영업 경험이 없는데 장사를 시작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반대하진 않았나요?
"왜 괜찮은 직장 다니지 않고 힘든 길을 택하냐고 하시긴 했죠. 지금이야 자랑스러워하시지만 저희 부모님이 공무원이셔서 안정적인 길을 더 좋게 보셨었거든요. 이제는 칭찬도 많이 해주세요. 친구들도 잘하고 있다, 멋있다 많이 말해주죠. 보람 있어요."
- 자영업 해보니 생각보다 좋은가요? 장단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쉬고 싶을 때 마음껏 못 쉰다는 점, 장소에 매여 있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죠.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이니 내가 마음껏 결정할 수 있다는 점, 결과에 대한 성취감도 크다는 게 장점이에요. 물론 가끔 망할 수도 있겠다 싶을 때는 부담도 되죠. 회사에서 일을 망치면 혼나지만, 자영업에서 일을 망치면 다 잃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언변도 신중해진 것 같아요. 제 말을 줄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습관이 생겼어요."
- 청년들에게 자영업 추천할 만 한가요?
"말리고 싶어요. 만약 직장생활이 힘들어서 선택하는 길이라면요. 돈을 많이 벌 수도 있지만 반면 다 잃을 수도 있어요. 저도 운이 따라서 유지하는 거지 망했으면 진짜 큰일 났을 것 같아요."
- 어떤 사람에게 자영업을 추천하고 싶으세요?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요. 자기 사업을 하다보면 같이 일하는 동료에 의견이 맞을 수도, 혹은 나의 의견이 맞을 수도 있는데 보통은 자기 의견이 더욱 맞다고만 생각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동료들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 또 동료들이 틀렸을 때 감쌀 줄 아는 이해심이 있다면 어떤 아이템이든 잘 끌고 나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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