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가족 외출'에 적당한 대구 인근 명산 넷
오르기 부담없고, 역사가 서린 곳... 의성 청화산, 고령 주산, 성주 독용산, 구미 천생산
봄이 꽃밭의 계절이라면 여름은 강과 바다의 계절이다. 가을은 단풍 물든 산의 계절이고, 겨울은 얼음을 지치는 호수와 눈싸움을 하는 들판의 계절이다. 엄청난 도시화 탓에 자연과 벗하며 지내기 힘든 세상을 살면서 봄, 가을, 여름, 겨울마다 제철에 어울리는 '외출' 한 번은 하면서 지내야 한다. '생각하는 동물'이 그 정도의 생각과 실천은 해야 사람다운 인생이 아니겠느냐고 다짐하면서, 지금은 가을이니 산으로 가본다.
어느 산으로 가볼 것인가? 특히 코로나 사태에 맞춰야 한다. 등산객이 북적대지 않으면서도 높이가 적당하고, 또 역사가 서려 있어 생각하고 느낄 바도 있는 그런 산이면 금상첨화다. 물론 필자의 거주지를 감안하면 대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산이 좋다.
가을이라면 단풍이니, 단풍으로 유명한 산을 찾을 것인가? 아니다. 단풍보다 훨씬 인문학적 인식을 키워주는 풍경이 있다. 가을에는 누렇게 벼가 익은 들판 풍경을 보아야 한다. 가을이 아니면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의성 청화산, 황금물결 출렁이는 가을을 보여준다
경북 의성군 구천면 청산리 마을 뒤편 청화산이 적격이다. 청산리에서 산중턱까지 차도가 닦여 있어서 실제 등산은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게다가 청산리부터 주차장까지는 좌우로 단풍나무가 심어져 있어서 정취도 아주 좋다. 주차장에서 산 정상까지도 길이 평탄한 편이어서 그 역시 좋다.
이 산 정상에는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파한 아도화상 전설이 서려 있다. 뿐만 아니라, 가을에 청화산을 오르는 일이 좋은 것은 안계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점이다. 안계평야는 경북에서 가장 넓은 평야로, 지리 교과서에도 나오는 곳이다. 누렇게 익은 벼가 아득하게 넓은 들판을 바라보이는 장관은 대단하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녀들에게 한 번은 보여줘야 할 풍경이다. 농사짓는 일의 의미, 농민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 이런 게 저절로 생겨나는 곳이다.
하산할 때 보는 낙동강의 모습도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풍경이다. 1960년만 해도 다리가 놓여있지 않아서 의성군과 상주시를 오가는 버스를 배로 실어 옮겼다는 이야기를 하면 요즘 아이들한테 산교육이 된다. 과학의 발달이라거나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등등을 연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사다함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지는 고령 주산
고령 주산도 좋다. 주산의 '주(主)'는 임금을 가리킨다. 대가야국의 임금이 머물렀던 산이라는 이야기다. 현재 고령향교 일대에 궁성이 있었는데, 적의 기습 등으로 빚어진 위기 상황 때 대가야국 임금이 대피한 장소가 주산 정상부였다.
고령향교 쪽에서 출발해서 비교적 평탄한 등산로를 천천히 30분만 걸으면 대가야고분군 맨 위에 닿는다. 거기서 왕릉체험관 쪽으로 내려오면서 고분군을 감상하면 재미가 쏠쏠하다. 힘도 거의 들지 않고, 남녀노소 온가족이 등산할 수 있는 길이다.
대가야고분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분이 밀집해서 많이 모여있는 곳이다. 경주 고분들처럼 평지에 있지 않고 산등성이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는 것이 최고의 특징이다. 이곳을 찾으면 순장에 대한 교훈을 살펴볼 수 있다. 순장은 왕이나 높은 사람이 죽을 때 시중들던 사람 등을 함께 묻는 옛날 풍습으로, 신라 중기 지증왕 시대(500-514)에 없어진다. 그만큼 인권사상이 높아진 것이다.
주산에서는 사다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신라는 진흥왕 때 대가야를 정벌하는데 그때 선봉장수가 사다함이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당시 사다함의 나이는 15~16세에 불과했다. 대가야가 신라에 항복한 후 진흥왕은 1등 공신으로 사다함을 선정해서 상을 준다. 나이는 어렸지만 무용이 대단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기록이다.
사다함 이야기를 돌이켜 보는 것은 그가 군사적으로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 아니다. 진흥왕이 포로 200명과 논밭을 상으로 주자 사다함은 노예로 받은 200명을 모두 풀어주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논밭은 함께 전쟁을 치렀던 병사들에게 나눠준다. 이때가 562년이다. 미국에서 노예해방 문제로 남북전쟁을 하는 것이 1860년대라는 데 견주면 1300년 빠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사실을 '10대 청소년' 사다함이 보여준 것이다.
임진왜란 때 피란민들이 발견한 삼국시대 옛성
성주 독용산도 추천할 만하다. 이곳도 거의 정상부까지 자동차로 올라간 다음 평평한 길을 산책하듯이 걸으면 되는 곳이다. 주차장에서 성곽까지 대략 20분이면 충분하다. 이곳 성곽은 삼국시대 때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성문이 하나 복원되어 있고, 성곽들이 잘 축성되어 있다.
삼국통일 이후 독용산성은 국경 지대 군사 시설의 기능을 잃는다. 신라와 백제 중간 지점에 쌓은 성이니 왜구를 지키는 기능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성의 존재가 잊혀지는데, 임진왜란을 맞아 재발견된다. 성주 사람들이 왜적을 피해서 깊은 산으로 피란을 가면서 이 성을 발견한다.
성이 있다는 것은 그 안에 우물이 있고, 약간의 농토도 있다는 뜻이다. 군인들이 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란을 간 성주사람들이 전쟁 끝날 때까지 독용산성 안에서 살게 된다. 그와 같은 특이한 임진왜란 역사가 깃든 성이 바로 독용산성이다.
성 안이 평평해서 산책을 하기에도 좋다. 전쟁의 역사도 깃들어 있고, 올라가는 데 별로 어렵지도 않고, 성문과 성곽도 남아 있다는 점에서 독용산 산책은 가족 등산지로 제격이다. 성곽에 올라 성주 호수의 광활한 수면을 바라보면서 호연지기를 만끽하는 유쾌함도 보기 드문 즐거움이다.
곽재우 장군이 절묘한 속임수로 왜적을 물리친 곳
구미 천생산도 가볼 만하다. 이곳에도 산성이 남아 있다. 홍의장군 곽재우가 쌓은 것으로 전해지므로 역시 임진왜란 유적이다. 거의 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사찰까지 자동차가 가기 때문에 이곳 역시 올라가는 데에 별로 힘이 들지 않는다.
이 산은 북쪽이 아주 대단한 절벽이다. 절벽 끝에 큰 바위가 있는데 홍의장군이 그 위에 검은 말을 세워두고 흰쌀을 말등에 계속 부었다. 산 아래에서 지켜보던 일본군들이 그걸 보고 포위를 풀고 철수한다. 물이 떨어지면 홍의장군이 항복을 할 걸로 생각했는데 말을 목욕시킬 정도로 물이 많다고 속은 것이다.
주차장에서 산 정상부까지 20분 정도 걸리고 길도 좋다. 사방으로 내려다보이는 경치도 대단하다. 특히 산 꼭대기, 즉 성 안이 평평해서 산책을 하는 데도 아주 좋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사람들이 많지 않고, 오르기도 쉬운 산을 찾아 가족 나들이를 한 번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대구 인근에서는 의성 청화산, 고령 주산, 성주 독용산, 구미 천생산이 추천 대상이다.
어느 산으로 가볼 것인가? 특히 코로나 사태에 맞춰야 한다. 등산객이 북적대지 않으면서도 높이가 적당하고, 또 역사가 서려 있어 생각하고 느낄 바도 있는 그런 산이면 금상첨화다. 물론 필자의 거주지를 감안하면 대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산이 좋다.
의성 청화산, 황금물결 출렁이는 가을을 보여준다
경북 의성군 구천면 청산리 마을 뒤편 청화산이 적격이다. 청산리에서 산중턱까지 차도가 닦여 있어서 실제 등산은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게다가 청산리부터 주차장까지는 좌우로 단풍나무가 심어져 있어서 정취도 아주 좋다. 주차장에서 산 정상까지도 길이 평탄한 편이어서 그 역시 좋다.
▲ 청화산에서 바라본 안계평야의 가을 ⓒ 정만진
이 산 정상에는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파한 아도화상 전설이 서려 있다. 뿐만 아니라, 가을에 청화산을 오르는 일이 좋은 것은 안계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점이다. 안계평야는 경북에서 가장 넓은 평야로, 지리 교과서에도 나오는 곳이다. 누렇게 익은 벼가 아득하게 넓은 들판을 바라보이는 장관은 대단하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녀들에게 한 번은 보여줘야 할 풍경이다. 농사짓는 일의 의미, 농민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 이런 게 저절로 생겨나는 곳이다.
하산할 때 보는 낙동강의 모습도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풍경이다. 1960년만 해도 다리가 놓여있지 않아서 의성군과 상주시를 오가는 버스를 배로 실어 옮겼다는 이야기를 하면 요즘 아이들한테 산교육이 된다. 과학의 발달이라거나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등등을 연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사다함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지는 고령 주산
고령 주산도 좋다. 주산의 '주(主)'는 임금을 가리킨다. 대가야국의 임금이 머물렀던 산이라는 이야기다. 현재 고령향교 일대에 궁성이 있었는데, 적의 기습 등으로 빚어진 위기 상황 때 대가야국 임금이 대피한 장소가 주산 정상부였다.
고령향교 쪽에서 출발해서 비교적 평탄한 등산로를 천천히 30분만 걸으면 대가야고분군 맨 위에 닿는다. 거기서 왕릉체험관 쪽으로 내려오면서 고분군을 감상하면 재미가 쏠쏠하다. 힘도 거의 들지 않고, 남녀노소 온가족이 등산할 수 있는 길이다.
대가야고분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분이 밀집해서 많이 모여있는 곳이다. 경주 고분들처럼 평지에 있지 않고 산등성이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는 것이 최고의 특징이다. 이곳을 찾으면 순장에 대한 교훈을 살펴볼 수 있다. 순장은 왕이나 높은 사람이 죽을 때 시중들던 사람 등을 함께 묻는 옛날 풍습으로, 신라 중기 지증왕 시대(500-514)에 없어진다. 그만큼 인권사상이 높아진 것이다.
▲ 고령 주산(능선에 대가야 고분군이 보이는 풍경) ⓒ 정만진
주산에서는 사다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신라는 진흥왕 때 대가야를 정벌하는데 그때 선봉장수가 사다함이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당시 사다함의 나이는 15~16세에 불과했다. 대가야가 신라에 항복한 후 진흥왕은 1등 공신으로 사다함을 선정해서 상을 준다. 나이는 어렸지만 무용이 대단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기록이다.
사다함 이야기를 돌이켜 보는 것은 그가 군사적으로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 아니다. 진흥왕이 포로 200명과 논밭을 상으로 주자 사다함은 노예로 받은 200명을 모두 풀어주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논밭은 함께 전쟁을 치렀던 병사들에게 나눠준다. 이때가 562년이다. 미국에서 노예해방 문제로 남북전쟁을 하는 것이 1860년대라는 데 견주면 1300년 빠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사실을 '10대 청소년' 사다함이 보여준 것이다.
임진왜란 때 피란민들이 발견한 삼국시대 옛성
성주 독용산도 추천할 만하다. 이곳도 거의 정상부까지 자동차로 올라간 다음 평평한 길을 산책하듯이 걸으면 되는 곳이다. 주차장에서 성곽까지 대략 20분이면 충분하다. 이곳 성곽은 삼국시대 때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성문이 하나 복원되어 있고, 성곽들이 잘 축성되어 있다.
▲ 독용산성에서 바라본 성주호 ⓒ 정만진
삼국통일 이후 독용산성은 국경 지대 군사 시설의 기능을 잃는다. 신라와 백제 중간 지점에 쌓은 성이니 왜구를 지키는 기능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성의 존재가 잊혀지는데, 임진왜란을 맞아 재발견된다. 성주 사람들이 왜적을 피해서 깊은 산으로 피란을 가면서 이 성을 발견한다.
성이 있다는 것은 그 안에 우물이 있고, 약간의 농토도 있다는 뜻이다. 군인들이 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란을 간 성주사람들이 전쟁 끝날 때까지 독용산성 안에서 살게 된다. 그와 같은 특이한 임진왜란 역사가 깃든 성이 바로 독용산성이다.
성 안이 평평해서 산책을 하기에도 좋다. 전쟁의 역사도 깃들어 있고, 올라가는 데 별로 어렵지도 않고, 성문과 성곽도 남아 있다는 점에서 독용산 산책은 가족 등산지로 제격이다. 성곽에 올라 성주 호수의 광활한 수면을 바라보면서 호연지기를 만끽하는 유쾌함도 보기 드문 즐거움이다.
곽재우 장군이 절묘한 속임수로 왜적을 물리친 곳
구미 천생산도 가볼 만하다. 이곳에도 산성이 남아 있다. 홍의장군 곽재우가 쌓은 것으로 전해지므로 역시 임진왜란 유적이다. 거의 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사찰까지 자동차가 가기 때문에 이곳 역시 올라가는 데에 별로 힘이 들지 않는다.
▲ 구미 천생산성 북쪽 끝 부분의 풍경 ⓒ 정만진
이 산은 북쪽이 아주 대단한 절벽이다. 절벽 끝에 큰 바위가 있는데 홍의장군이 그 위에 검은 말을 세워두고 흰쌀을 말등에 계속 부었다. 산 아래에서 지켜보던 일본군들이 그걸 보고 포위를 풀고 철수한다. 물이 떨어지면 홍의장군이 항복을 할 걸로 생각했는데 말을 목욕시킬 정도로 물이 많다고 속은 것이다.
주차장에서 산 정상부까지 20분 정도 걸리고 길도 좋다. 사방으로 내려다보이는 경치도 대단하다. 특히 산 꼭대기, 즉 성 안이 평평해서 산책을 하는 데도 아주 좋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사람들이 많지 않고, 오르기도 쉬운 산을 찾아 가족 나들이를 한 번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대구 인근에서는 의성 청화산, 고령 주산, 성주 독용산, 구미 천생산이 추천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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