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임대료로 고통받는 자영업자가 꼭 알아야 할 권리
[재난의 시대, 매뉴얼을 만들자 ②] 법 조문에만 있던 '차임감액청구권' 활성화 하려면
코로나19로 민생은 절벽 앞까지 내몰렸습니다. '경제방역'을 통해 '예측 가능한' 재난의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와 우리 사회 안전망이 될 다섯 가지 정책을 제안합니다. [편집자말]
▲ 지난 9월 24일 서울 종로구 젊음의 거리 한 실내포차에 영업 종료 안내문이 붙어있다 ⓒ 연합뉴스
[사례] 대구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이던 B씨는 코로나19로 손님이 완전히 끊기자 폐업을 결심했다. B씨는 2015년 개업 당시 음식점이던 상가에 입점하면서 기존에 이미 설치되어 있던 가스·수도 설비 등을 그대로 활용하기로 하고 환풍시설만 일부 보강해 가게를 열었는데 임대인은 원상회복을 이유로 환풍시설뿐 아니라 가스·수도 설비의 철거비용까지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폐업에 들어가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1년 가까이 남은 임대료를 어떻게 할지도 전혀 협의가 되지 않고 있다. 남은 임대료만이라도 감면을 요청해봤지만 임대인은 묵묵부답이다. 상가임대차 분쟁조정을 신청하려고 해도 임대인이 응하지 않으면 법원으로 가야 하는데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몰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월 24일 국회는 ▲6개월 간 임대료 연체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거나 ▲권리금 보호기회를 박탈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코로나19로 인한 차임감액청구 사유를 구체화하는 내용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사실 위 조항은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처음 제정될 당시부터 있었던 내용이었지만 실생활에서 거의 활용된 사례가 없었다. 몇몇 하급심 판례를 제외하면 대법원이 IMF사태와 같은 전국가적인 경제위기조차도 차임감액이 필요한 사유로 인정하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차임감액청구는 임차인이 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였지만 말그대로 '법 조문'에만 존재했던 셈이다.
그러자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상가임차인들의 임대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차임감액청구의 요건을 완화해 활성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자체적으로 임차인들의 차임감액청구를 상담하고 지원하기 위한 별도의 행정시스템을 구축·강화했고 국회는 법개정을 통헤 차임감액청구의 요건에 코로나19를 포함시켰다.
서울시의 경우 차임감액청구에 대한 안내와 상담행정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차임감액조정과정에서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평가절차를 서울시가 지원하고, 원칙적으로는 양 당사자가 동의해야 진행되는 감정평가절차를 코로나19 기간동안 임차인의 요청만으로도 지원할 수 있도록 개선하기도 했다.
그러나 차임감액청구 활성화를 위한 길은 아직도 먼 상황이다. 서울시의 경우 차임감액청구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행정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실제로 임대료 감액으로 이어진 건수 자체는 많지 않다. 올해 서울시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처리된 사건현황을 보면, 올해 1월부터 8월 31일까지 접수된 전체 분쟁조정 건수 중 임대료 조정과 관련된 건수의 비율이 거의 작년 동기대비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2019년 19.4% → 2020년 33.9%)하긴 했지만, 실제로 분쟁조정이 이루어진 건수는 채 10건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분쟁조정을 통한 차임감액청구가 가능하다는 것 자체를 알지 못하는 상가임차인들이 부지기수인 것도 문제겠지만, '을'인 임차인 입장에서는 사실상 '갑'의 위치에 있는 임대인에게 임대료를 감면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 자체가 자칫 다른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최후에 고려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한계가 크다. 게다가 지금의 법제도에서는 임차인이 분쟁조정을 통해 차임감액청구를 하더라도 임대인이 분쟁조정 개시절차에 동의하지 않으면 조정 자체가 열리지 않고,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민사소송으로 해결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분쟁 조정 절차의 강제력·구속력을 높이자
▲ 지난 8월 24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텅빈 거리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고 있는 모습. ⓒ 이희훈
이에 중소상인단체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차임감액청구의 활성화를 위해 분쟁조정 절차의 강제력과 구속력을 높이고 지자체의 역할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차임감액청구의 경우 임차인 일방이 신청하더라도 일단 분쟁조정 절차를 개시하도록 하고 분쟁조정위원회가 감정평가를 통해 적정한 수준의 임대료를 산출하여 조정안을 권고하도록 하는 긴급구제입법이 그것이다.
정부가 상가나 차임의 규모, 코로나19로 인한 소득감소분 등을 감안하여 차임감액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 각 지자체에 권고하고, 코로나19 상가임차인지원센터를 설치하여 상담과 지원행정 인력을 확대하고 필요할 경우 분쟁조정절차에서 상가임차인들을 대리하는 방안도 고려해볼만 하다. 정부나 지자체가 보유하고 있는 상가나 시설의 임대료를 선제적으로 감면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아래 상가임차인들이 차임감액청구에 적극 나서도록 안내하고 독려하는 일이다. 차임감액청구권은 청구한 시점부터 그 이후를 향해 효과가 발생하는 '형성권'이어서 일단 임차인이 내용증명 등을 통해 청구만 하면 일단 그 시점부터 감액된만큼의 임대료만 납부하면 되고 설사 이후 분쟁조정 결과 그보다 높은 임대료가 정해지더라도 그 차액만큼만 부담하면 된다.
반대로 얘기하면 감액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그 이전에 발생한 사유를 이유로 차임액을 청구할 수 없기 때문에 내년에 코로나19를 이유로 차임감액을 청구하더라도 올해의 임대료를 감면받기는 어렵다. 법개정을 통해 코로나19가 차임감액의 사유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고,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들이 적극적인 분쟁조정 행정을 펼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높은 수준의 임대료로 고통받고 있는 상가임차인들은 일단 차임감액청구를 해놓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차임감액청구와 관련해 또 한 가지 놓치지 않아야 할 점은 바로 주택임차인 즉 주거세입자도 행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해외는 코로나19로 인한 임대료 대책에 있어 주택과 상가를 굳이 구분하지 않고 있으며, 우리 법제에도 차임감액청구권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과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모두 규정되어 있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한 상가임차인들의 어려움이 더욱 많은 주목을 받으면서 지난 9월 국회에서 상가법은 개정이 되었지만 주택임대차보호법은 개정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중소상인은 물론,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소득감소도 뚜렷한만큼 주택임대차 관계에서도 상가에 준하는 입법·행정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될수록 그 위협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주거공간까지 깊숙이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기사]
골목상권까지 줄줄이 붕괴... '임대료 유예'로는 못막는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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