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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지면 밥 굶어야 해요" 소중한 마을식당 '밥풀꽃'

채식 식당 '밥풀꽃'이 5년째 자리를 지키는 까닭

등록|2020.10.10 16:05 수정|2020.10.10 16:05

▲ 전환마을협동조합 '밥풀꽃' 내부 모습 (사진제공 : 서울시) ⓒ 은평시민신문


구산역 3번 출구와 예일여고 사이 골목엔 '밥풀꽃'이라는 작은 식당이 있다.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이 식당은 2015년 11월 문을 열어 5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풀과 꽃이 입구부터 식당 안까지 곳곳에 자리 잡은 '밥풀꽃'은 채식, 로컬, 친환경이라는 원칙을 지킨다. 그러다 보니 은평구 비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곳'이 되어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밥풀꽃이 폐점을 고민하고 있을 때, 한 손님은 "밥풀꽃 없으면 굶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밥풀꽃'은 오전 11시 30분 문을 열고 오후 2시 30분에 문을 잠시 닫았다가 오후 3시 카페로 변신한다. '단짠단짠'으로 무장하고 매콤한 음식을 판매하는 트렌디한 '요즘 식당'과 다르게 이 가게에서는 풀내음 가득한 밥상이 나온다. 음료 판매 시간에도 크림과 초코 등으로 무장한 음료 대신 과일이 담긴 상큼한 음료가 기다리고 있다.

동물권, 환경 보호, 건강 등 각기 다른 이유로 채식을 선택한 주민들에게 '밥풀꽃'은 "없어서는 안 될 곳"이다. 은평시민신문은 지난 24일 밥풀꽃에서 이 식당을 운영하는 전환마을협동조합 박지현 이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국내 최초의 전환마을, 은평에서 말하는 '환경'

밥풀꽃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매우 단순하다. 밥을 파니까 밥, 풀이 식재료니까 풀, 나물과 아름다움, 풍요로움을 상징하니까 꽃, 합쳐서 밥풀꽃이다.

밥풀꽃은 평범한 밥집으로 친환경 식재료를 사용하는 식당이었다. 이곳에 환경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환경과 지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풀학교'를 운영하면서, 명아주, 새별꽃 등 풀을 이용한 음식, 화장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립자족학교'를 은평구평생학습관과 함께 운영하며 친환경 세제를 만들어 주민들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식당을 경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협동조합으로 방향을 잡았다. 조금씩 출자금도 모으고 정관도 검토하면서 협동조합을 준비해 나갔다. 지난해 상반기에 준비를 시작했고 12월 전환마을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올 2월 마을기업에 지정됐다. 그렇게 평범한 식당이었던 밥풀꽃은 친환경 채식 식당이 됐다.

"처음에는 돈을 많이 못 벌어서 차라리 환경단체처럼 활동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비문화가 바뀌어야지 삶이 바뀐다. 사회적 경제 안에서 같이 실천할 필요가 있다. 돈은 못 벌어도 경제활동이 정의로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지현 이사장의 이야기다.
 

▲ 전환마을협동조합 '밥풀꽃' 식사 및 재료 (사진제공 : 서울시) ⓒ 은평시민신문


지구의 시간 되돌리기 위해 전환마을협동조합 만들어

국내 첫 전환마을은 은평구다. 전환마을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처음 시작된 운동으로 마을 공동체 안에서 에너지와 먹거리의 자립을 추구한다. 은평구는 처음으로 전 세계 전환마을 네트워크에 등록됐고, 밥풀꽃을 거점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전환마을협동조합'을 탄생시켰다.

박지현 이사장은 "이전에도 기후위기와 환경파괴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삶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올해처럼 절실하게 느낀 적이 없다"며 "지구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 조합을 만들었고, 먹거리를 중심으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구온난화를 가속화 하는 고기... 돈 안 돼도 채식문화 필요

소의 트림과 방귀는 메탄가스다. 메탄가스의 온실효과는 이산화탄소의 25배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축산업이 18%를 차지한다. 교통수단(13%)보다 높은 수치다.

박 이사장은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채식을 선택하는 분들이 많지만, 채식할 곳이 없다. 외식이 육류 중심이다 보니 비건은 소수자"라며 "채식 식당이 은평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도전했더니 멀리서도 밥풀꽃을 찾아온다. 소수자들도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밥풀꽃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로컬 식재료다.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아는 사람들과 직거래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파주 쌀을 이용하고, 두부는 같은 동네 가게 두부, 풀과 꽃은 조합원들이 의정부나 고양 텃밭에서 재배하는 것을 쓴다. 맛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식재료, 생산자와의 연결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음식이 지겨울 손님들을 위해 신메뉴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 친환경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 서울시) ⓒ 은평시민신문


어르신을 위한 도시락 배달... 이웃과 꾸준한 만남으로 관계 형성

밥풀꽃은 마을기업으로서 어르신들께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은평 노인 인구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고 가난한 노인들 역시 늘어난다. 돌봄이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손길이 닿지 않고 있다.

"노인들에게 식사를 드리는 일이 필요하고, 이를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 3회 하루에 2번씩 스무 명 안팎의 어르신들에게 건강에 좋은 음식을 드리고 있다. 어르신들께는 단백질이 필요하니까 생선이나 무항생제 달걀, 두부 등을 포함시키고 있다." (박지현 이사장)

밥풀꽃 도시락의 차별성은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달도 직접 한다. 어르신들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서다.

"직접 전달하면서 만족도는 어떤지, 어떤 음식을 드시지 않는지 등을 파악한다. 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를 안 드실 수 있고,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이 있을 수도 있고, 죽이 지겨워 드시지 않을 수도 있다. 더불어서 어떻게 사시는지, 어떤 것이 필요한지 얘기를 나눈다. 정신질환이나 파킨슨병으로 인해 병원에 방문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살림의원 왕진서비스를 연결해 드리기도 했다."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는 얼굴을 비추고, 말동무가 돼 드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박 이사장은 청소도 하지 못하고, 곰팡이가 슬어있는 등 좋지 않은 주거환경에 사는 노인들을 위해서 지원 방법을 찾기도 했다. 이웃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힘들어도 보람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 전환마을협동조합 '밥풀꽃'을 이끌어가고 있는 박지현 이사장(왼쪽), 강효선 조합원(오른쪽 위), 소란 조합원(오른쪽 아래) (사진제공 : 서울시) ⓒ 은평시민신문


주민을 위한 공간... 동네 사람들 많이 모였으면

"코로나19가 안정화되면 예전에 진행했던 행사들을 정상화하고 싶다. 예전엔 채식음식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토종 종자도 나누고, 친환경 샴푸, 화장품, 세제도 만들었는데 다시 해보고 싶다." 

코로나 19로 인해 밥풀꽃은 계획했던 다양한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하지 못해 박 이사장의 말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환경을 생각하고 이웃을 돌보는 따뜻한 식당, 밥풀꽃에 많은 사람이 모여 더 나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빨리 오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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