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학자들의 국회'에 손 대려는 '레이와 아저씨', 스가

[일본 현지 리포트] 학문의 자유 훼손 비판받는 스가... 대체 일본학술회의가 뭐길래?

등록|2020.10.12 19:11 수정|2020.10.12 19:11

▲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 5일 오후 출입 기자단과 공동인터뷰를 마친 뒤 마스크를 쓴 채 관저를 나서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일본이 시끄럽다. 스가 총리가 일본학술회의 회원 후보 6명을 임명거부했기 때문이다. 도쿄의 수상 관청 앞에서는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가 몇 차례 열렸다. 학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등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체 일본학술회의가 뭐길래 일본이 들썩이는 걸까.

학계·영화계 '발끈'

"전쟁 전으로 되돌아갔다."

지난 2일 열린 일본학술회의 총회에서 나온 발언이다. 일본학술회의 회원들은 신회원 6명을 임명거부한 스가 정권에 비판과 항의를 표명했다. 학계에서만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감독을 포함한 영화인 22명은 지난 5일 일본 정부를 향해 "학문의 자유에 대한 침해뿐만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에 대한 도전이다"라는 항의성명을 발표했다.

야당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스가 총리는 임명거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종합적이고 대국적으로 판단했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판단했다"는 스가 총리의 발언에서 파문이 일고 있다. 일본학술회의 법 제7조2항에 따르면 일본학술회의는 "우수한 연구 아니면 실적이 있는 학자"를 회원으로 추천하게 돼 있고, 그 추천을 두고 내각 총리가 임명을 하도록 돼 있다. 내각 총리가 "판단한다"는 권한은 명기돼 있지 않고, 형식적으로 임명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법 해석이다. 가령, 총리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학자를 추천해 임명하는 건 일본학술회의법상 불가능하게 돼 있다. 회원의 임명권자는 총리지만, 실질적으로 일본학술회의의 추천에 대해 "판단한다" 등의 의견을 갖지 않는 게 지금까지 일본 내각의 공식 입장이었다.
 

▲ 일본 시민들이 지난 6일 저녁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일본학술회의' 회원 후보 6명의 임명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가 거부한 것과 관련,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최 측은 이날 집회에 700여명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학자들의 국회', 일본학술회의

일본학술회의는 일본정부의 지원을 받지만, 정부와 독립적인 단체다. 문부과학성 소속이 아니라 내각부 소속이며, 정부 자문위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학술회의 전신은 1920년에 설립된 '학술연구회의'다. 일본 패망후 원자폭탄 피해조사연구팀을 조직하는 등 전후에도 활동을 지속했다. 그후 2차대전시 일본 학자들의 연구가 전쟁에 동원된 것에 대한 깊은 반성을 토대로 1949년에 일본학술회의가 만들어졌다. 정리하면, '학문의 관점으로 권력을 가진 정부의 방침에 조언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관'이다. 일본학술회의의 모든 활동은 '일본학술회의법'에 근거한다.

일본학술회의는 일본 학술연구자 84만 명가량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정회원 210명, 관련 회원은 2000명에 달하는 '학자들의 국회'로 불린다. 회원의 임기는 6년이며 3년에 한 번 정회원 210명의 절반인 105명을 교체하는 시스템이다.

회원 선출 방식은 세 차례 개정이 이뤄져 현재의 방법이 됐다. 1985년 7월(12기)까지는 전국 학자에 의한 직접선거로 회원을 선출했지만, 조직표를 만든다는 우려가 있어 이후 일본학술회의에 등록된 학술학회에서 회원을 추천하는 방법으로 변화를 꾀했다. 그러나 학회 파벌표가 생긴다는 이유로, 2005년부터는 일본학술회의에 설치된 위원회에서 연대회원을 포함한 회원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선정하는 지금 방법으로 개정됐다. 일본학술회의 회원의 선정기준은 "우수한 학술업적과 성과"다. 정치 성향은 정회원 추천·선정 기준과 전혀 관계가 없다.

최근엔 성별, 지역별, 연구 부분에 있어서 보다 공정한 방법을 구축하고 있다는 게 일본학술회의의 입장이다.

전쟁·군사 목적에 학문이 동원되는 걸 경계한 조직

일본학술회의는 패전으로부터 5년 뒤인 1950년에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연구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결의안을 내놨다. 또한 1967년 베트남전쟁 때 일본 연구자가 미국으로부터 연구비를 받은 걸 문제삼고 "군사목적을 위한 과학연구를 하지 않는다"라고 재차 성명을 발표했다.

40년 가까이 지난 2017년 3월, 일본학술회의는 또다른 성명을 발표했다. 이름은 '군사적안전보장연구에 관한 성명'. "연구자는 국가의 안전보장을 군사적 수단으로 실현하는 연구에 관여하는 것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배경은 일본 정부에 있었다. 2015년 일본 정부는 '안전보장기술 연구 추진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대학·연구소·기업 등이 군민양용 기술을 연구·개발할 경우 연구비를 보조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연구 주제는 방위정비청이 직접 정하고, 예산 규모도 점차 커졌다. 제도 도입 첫해 3억 엔, 두 번째 해 6억 엔, 세 번째 해 110억 엔으로 증가했다.

일본학술회의가 '안전보장기술 연구 추진제도'에 문제가 많다고 판단한 이유는 헌법 23조에 보장된 '학문의 자유'가 침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연구의 자주성, 자율성, 연구성과의 공개성에 제약을 받는다'는 판단이다. 일본학술회의는 '학술의 연구는 정치권력에 의해 제약을 받아서도 동원이 되어서도 안되며, 연구자의 창의에 의해 자유롭게 돼야 하며, 그래야 학술이 발전한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정부의 연구 지원 예산은 커져가는 반면, 대학의 연구 지원 예산은 매년 축소되는 경향이 있어 일본학술회의가 비판에 나선 것이다.

이처럼 일본학술회의는 과학·학문의 관점으로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매년 입장이나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일부 일본 언론은 '세금만 낭비하는 나이 많은 학자들의 폐쇄적 모임'이라고 비난하지만, 이는 편향된 보도 태도로 보여진다.

스가에 거부 당한 학자 6명의 공통점
 

▲ 지난 9일 일본 수상관청 앞에서 스가 정권 비판 1인시위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피켓엔 "레이와 아저씨라고 말하지 마"라고 적혀 있다.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를 스가 당시 관방장관이 발표한 것을 계기로 스가는 일본에서 '레이와 아저씨'라고도 불린다. ⓒ 강운섭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3일, 일본학술회의가 신규회원으로 추천한 후보자 105명에 대해서 "내각부(관련부처)는 그대로 수상관청에 보고했다고 알려졌으며, 내각부는 (임명거부 등의) 내막에 대해 알 수 없어 국회에서 야당의 질의에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요약하면, 임명거부의 열쇠는 총리가 쥐고 있다는 이야기다.

스가 총리에 임명거부를 당한 학자 6명은 각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학자들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아베 정권에서 통과된 '안전보장관련법' '조직범죄처벌법(공모죄법)' 등에 반대입장을 취했다는 것이다. 거부당한 학자 6명은 아래와 같다.
 
1. 우노 시게키, 동경대 사화학과연구소 교수(정치사상사) : 2013년 12월에 성립된 특정비밀보호법에 반대 입장 표명

2. 오카다 마사노리, 와세다 대학원 법무연구과 교수(행정법) : 안전보장관련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와세다대학유지의회 구성원

3. 오자와 류이치, 동경 지케이카이 의과대 교수(헌법학) : 2015년 7월 중위원특별위원회의 중앙공청회에서 야당의 추천인으로 출석해 안보관련법안에 대해서 폐지를 주장

4. 가토 요코, 동경대 대학원 인문사회연구과 교수(일본 근현대사) : 개헌과 특정비밀보호법에 반대 입장

5. 마쓰미야 다카아키, 리쓰메이칸대 대학원 법무연구과(형사법) : 2017년 6월 공모죄의 개요법안에 대해서 참위원법무위회의 참고인 질의에서, '전후 최악의 치안법안'이라고 비판

6. 아시나 사다미치, 교토대 교수(그리스도교학) : 안전보장관련법에 반대하는 학자의 모임, 안보법에 반대하는 모임의 구성원

아베 정권은 안정보장관련법을 통해 국가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2017년 '조직범죄처벌법'이 시행돼 범죄 실행 여부와 상관없이 계획하거나 모의한 사실만 입증돼도 범법자가 될 수 있게 됐다. 시민사회에서는 '감시사회를 만들려고 하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상황이 이렇기에 스가 총리의 일본학술회의 임명거부는 '아베 정권과 현 정권의 정책에 반론을 제시할 가능성이 큰 인사를 배제하기 위해서'라는 합리적 의심이 나오고 있다. 나아가 '정권이 정책에 비판적인 학자를 관리한다'는 소위 '블랙리스트' 논란도 뒤따라 나온다.

<도쿄신문>은 이번 사태를 두고 세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 (정부가) 법해석의 변경, 경위와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 법령과 관례보다는 정부 방침을 우선시한다. ▲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으면 좌천시킨다.
 

▲ 스가 일본 총리의 일본학술회의 회원 6명 임명거부를 반대하는 한 남성이 수상관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 강운섭


현재 스가 정권은 학자 6명에 대한 임명거부에 대해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일부 언론을 통해 일본학술회의 존재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연간 10억 엔의 국고보조금 사용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를 물타기 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지에서 살펴보면, 스가 정권은 지금까지 아베 정권이 해왔던 것처럼 강경하게 일처리를 하고, 여론이 잠잠해지길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학술회의에 대한 정부의 '관리'는 이미 시작됐다. 고노 다로 일본행정개혁 담당상은 지난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학술회의를 '행정개혁의 대상'으로 검토할 것이란 방침을 발표했다. 고노 다로는 그 이유를 "자민당으로부터 (일본학술회의를) 행정개혁의 관점으로 보길 바란다는 요청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시민들의 의견도 양분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스가 정권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6일엔 수상관청 앞에서 스가 총리의 일본학술회의 회원 6명 임명거부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엔 700명가량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지난 9일엔 태풍이 북상하고 있는 악천후 속에서도 수상관청 앞 1인시위가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스가 정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 일본 수상관청 앞. ⓒ 강운섭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