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면 매일 보는데... 결코 질리지 않는 너란 아이
[나만의 심리방역] 일상의 루틴을 만드는 좋은 습관, 식물 기르기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어느새 익숙해진 기분입니다. 코로나 블루는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어 우울감과 무기력함, 불안 등을 느끼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코로나19가 쉽게 종식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만큼, 섣부른 '극복'을 말하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작게라도 도움이 되고자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겪은 시민기자들이 자신만의 경험을 통해 얻은 작은 해결책들을 '나만의 심리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싣습니다.[편집자말]
그나마 소소한 즐거움이라면 식물 기르기 만한 게 없다. 나한테는 큰 위로가 되어줬다. 일단은 늘 해오던 대로 몸을 움직이는 게 좋다. 식물 기르는 일은 며칠에 한 번, 정해진 주기가 있는 게 아니라 날마다 들여다보는 몸에 밴 습관 같은 작업이다. 일상의 루틴을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 아이는 햇님이가 떠오른다며 노란 물뿌리개를 좋아한다. 처음에는 물을 왈칵 쏟아 붓거나 대충하더니 이제는 제법 차분하게 잘 준다. ⓒ 김이진
루틴(routine)은 반복하는 특정한 행동을 말한다. 식물은 하나를 키우든, 열 개를 키우든 물을 주는 시기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흙의 상태를 체크하고 잎이나 줄기에 변화가 없는지 살핀다. 분갈이가 필요한 녀석은 새로운 화분과 흙으로 이사를 시켜준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만의 식물 세계다. 키우는 개수는 중요하지 않다. 스투키 하나를 키워도 고유한 나만의 세계다. 집안에 식물을 들이는 순간, 또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규칙적으로 돌봐야 하는 생명이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와 다른 생활의 시작이다. 집안 환경이 눈에 들어오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되고, 내가 아닌 다른 생명에 관심을 두다 보면 나와의 적당한 거리도 확보된다.
작은 변화에도 마음이 들뜬다. 함께하는 동안 새로운 잎이 수없이 돋아나고, 꽃이 피었는데 그때마다 기특하고 즐거운 걸 보면 질리지 않는 자연의 힘이랄까, 에너지를 느낀다. 몸을 움직이면서 식물을 살펴보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복잡한 머릿속이나 무거웠던 어깨 짐이 한결 가벼워진다. 특별하게 즐겁고 신나는 '하루'가 아니라 일상의 루틴이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하루'에 집중할 수 있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 "나는 지금 이런 상태예요"라는 신호 알아차리기가 조금씩 가능해진다. 그게 특별한 재미다. 식물은 성격이 다 다르다. 죽음 직전까지 끙 소리 한번 없이 버티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작은 변화에도 호들갑을 떨며 죽겠다고 엄살떠는 녀석도 있고, 식물의 개성과 캐릭터를 파악하며 소통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다고 마냥 룰루랄라 즐거운 일만 벌어지지 않는다. 식물 기르는 일이 단순해 보여도 막상 판을 벌이기 시작하면 참 다양한 상황에 맞닥뜨린다. 생명을 가진 것이 대부분 그러하듯 식물 역시 내 맘대로 자라지 않는다.
잡지책에서 보는 정갈하고 풍성하고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가드닝은 그럴듯하게 연출된 정지 장면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원인 모르게 잎이 마르고, 잎 뒷면에 벌레가 생기고, 끈적거리고, 줄기가 휘고, 뿌리가 썩고, 멋없이 웃자라고, 다육식물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폭삭 주저앉고... 크고 작은 어려움이 일어난다.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그러다 덜컥 죽어버리기도 한다.
화원에서 구입할 때는 상품성 최상일 때의 비주얼이고 집에서 키우기 시작하면 슬슬 본성을 드러낸다. 스스로 하나하나 헤쳐가야 한다. 내 잎이 가장자리부터 누렇게 됐는지 전체가 누런지 확인해서 인터넷을 뒤져 정보를 찾고, 식물 기르는 지인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즐거움과 고난, 그리고 체념을 배워간다. 쉽지 않구나. 죽어버린 식물을 쓰레기봉투에 쓸어 담을 때의 처연함 심정이란. 극심한 자책이 며칠간 이어지다가, 생명이란 본디 스러지고 일어나고 하는 거지, 차츰 정신이 돌아온다.
회복탄력성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나는 회복탄력성을 키웠다. 힘든 일이 있어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일상의 자리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식물 기르는 작업의 규칙적인 습관, 식물을 떠나보낸 자책을 극복하면서 마음이 단단해졌다. 뻔뻔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최선을 다했다는 합리화일는지 모르지만. 또 새로운 식물을 들이면서 힘을 내본다.
올해는 식물 덕을 유난히 많이 본 해였다. 아이를 가정 보육하면서 심리적 위기가 찾아왔다. 국공립유치원이 원격 수업으로 전환하면서 가정보육이 끝없이 이어졌다. 아이는 집에 있는 동안 쉴 새 없이 에너지를 쏟아 부을 만한 놀잇감을 찾아 눈을 번뜩였고, 나는 아이의 퐁퐁 샘솟는 에너지에 진이 빠졌다.
늙은 엄마인 나를 위한 위로가 필요했다. 식물 개체가 늘어나면 일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개수를 제한해 왔는데 몬스테라와 유칼립투스를 새가족으로 들이면서 활력을 찾기도 했다.
아이는 그동안 내가 식물에 물 주는 모습을 여러 번 보고도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초식공룡이 풀을 뜯어먹는다는 걸 알게 된 뒤부터 식물을 잘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가 특히 그렇게 반응할 때는 햇볕이 좋을 때다. 식물이 잘 자라는 조건이 햇볕과 물이라는 학습이 된 상태였다. 베란다에 햇볕이 잘 드는 날이면 아이는 자기가 물을 주겠다고 나선다. "잘 자라라" 덕담해주곤 공룡 먹이로 삼는다. 덕분에 식물놀이와 공룡놀이를 함께하면서 시간을 때울 수 있다.
다시 돌아온 '식물멍'의 시간
▲ 물을 주고 나면 신나게 초식공룡을 데려온다. 높이를 맞춰주기 위해 블럭계단을 쌓는다. "배 불리 먹어" ⓒ 김이진
아이가 지난 달부터 유치원에 등원하면서 한동안 못했던 '멍 때리는' 의식도 다시 되찾았다. 식물 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일종의 의식 같은 습관이 있는데 멍 때리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은 없지만 길지 않은 게 좋더라. 자칫하면 늘어진다.
나는 차를 마시는 것조차 번잡스럽게 느껴져 아무런 요소 없이 그저 빈 시간을 맞는다. 의자에 털썩 앉아 있으면 한정 없이 무겁게 느껴졌던 생각 부스러기나 상황이 스르륵 모습을 감춰 버린다. 의자 옆에는 투정부리지 않고 쑥쑥 자라는 크루시아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고, 뭐, 오늘도 그럭저럭 괜찮다, 하고 일어나는 순간 기분이 좋아진다.
식물 기르는 일을 처음 시작한다면 욕심 부리지 말자. 한두 개 정도로만 키우다가 개수를 늘이는 게 적당하다. 의도적으로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패턴으로 움직여보는 것도 괜찮다. 익숙해지면 시간이 빨라지거나 늦어져도 여유가 생긴다. 특정한 행동을 앞뒤로 연결해서 루틴을 만들어 봐도 좋다. 일상을 촘촘하게 만들되, 피곤해지면 안 된다. 편안한 게 만고땡이다.
▲ 식물 돌보는 일을 마무리하면 의자에 앉아 멍 때린다. 정말 좋아하는 시간이다. ⓒ 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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