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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버스회사의 악몽... '지옥의 민원인' 결국 구속

악성 민원인 K씨 구속... 확인된 민원만 8895건

등록|2020.10.20 16:07 수정|2020.10.20 16:07

▲ 부산광역시 시내버스의 모습. (자료사진) ⓒ 박장식


버스회사에 '회사 전체 기사들이 난폭 운전을 한다', '버스 차고지에 사람들이 무단으로 들어온다'는 민원이 접수된다. "버스 차고지에 들어오는 이들은 종점에서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며, 난폭 운전은 어떤 시간대 어떤 노선인지 알려주시면 처리하겠다"고 답변한다. 답변이 가기가 무섭게 그보다 많은 민원이 다시 쏟아진다.

그의 민원에 시달린 부서와 회사에서는 따로 그를 위한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을 정도였다. 민원과 고소, 고발 중 상당수는 함께 사는 주민들과 버스 업체, 그리고 부산광역시 교통 관련 부서에 집중되곤 했다. 결국 부산 사상경찰서는 지난 19일 부산광역시 곳곳에 고소와 고발, 민원을 남발했던 30대 K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버스 업체 대표 전화 알아내고... 대응 헛점 보이면 고소 남발

부산 버스회사와, 부산광역시 교통 관련 부서에 폭탄 업무를 안겼던 'K'씨는 많은 수의 민원을 접수하고, 민원 대응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헛점이 보이면 고소를 남발했다. 현재까지 찾아낸 민원과 고소 건만 8895건에 달했다. 민원 내용도 매번 비슷했다. '특정 회사 전체가 난폭운전, 졸음운전을 한다' 등이었다.

A버스 업체 관계자는 K씨의 이름을 듣자 또렷하게 그를 기억했다. 업체 관계자는 "주기적으로 민원을 넣는다. 보통 민원이 들어오면 한 노선, 특히 특정 시간대를 짚어서 어떤 점이 불편했다고 민원을 넣는데, 이분은 전체적으로 뭉뚱그려 민원을 넣곤 했다"고 전했다.

여러 버스 업체에 마치 점검을 하듯 주기적으로 전화를 걸기도 했다. B버스회사 관계자는 "버스가 사람이 정류장에 있는데 잘 안 태워준다며 민원을 넣는데 구체적인 노선도, 시간대도 없이 '이 회사가 그랬다'고 민원을 넣더라"며 혀를 찼고, C회사는 "우리 회사 버스를 다 짚으며 '이 버스들이 죄다 난폭운전을 한다'라고 민원을 넣는데, 이걸 주기적으로 한다"고 하소연했다.

그가 올렸던 민원이 기사화 되는 경우도 있었다. 2019년 1월 경 부산의 한 유력 일간지는 버스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사진을 찍으러 차고지를 방문해 버스를 조작하는 모습을 자신들의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것이 안전상 문제가 된다는 보도를 했다. 그런데 기사에서 소개한, 발단이 된 해당 민원의 주인공 역시 K씨였다.

이후 K씨는 버스 차고지에 회사 관계자 외에는 출입하지 말게 할 것을 요구하는 민원을 보내는가 하면, '종점에서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차고지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쫓아내라'는 도 넘은 민원까지 송부했다. 해당 민원을 다른 도시에 보낸 것 역시 빼놓지 않았다.

부산광역시버스운송사업조합의 관계자는 "K씨가 지속적으로 맞지 않는 내용을 민원으로 보내곤 했다. 조합에 전화를 걸어 본인 이야기만 하면서 전화를 오랫동안 끊지 못하게 해 업무에 지장도 주곤 했다. 합당한 요구면 조치를 취하겠는데 한 업체를 겨냥하는 민원도 넣곤 해 문제가 컸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특정 버스업체 사장의 개인 연락처를 알아내 민원성 전화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엄연히 불법인 일이었다"면서 "조합에만 이렇게 전화를 하면 모를까 행정기관에도 민원을 보내니 소요되는 시간과 인력이 상당했다"며, "발전을 위한 민원이 아니라 화풀이 대상으로 괴롭히기 위한 민원이 아니었나 싶다"고 덧붙였다.

부산시 민원과 "K씨 민원 건수 확인하려면 시스템 다운될 정도"

부산광역시 민원과 관계자 역시 "K씨가 보낸 구체적인 민원 건수를 검색하려면 시스템이 다운될 정도"라며 그의 이름에 몸서리를 쳤다. 이 관계자는 "K씨가 수도 없이 많이 민원을 올렸다. 장르를 불문하고 민원을 무작정 많이 올렸다. 시에 접수된 민원 중에서 정말 많은 비중을 이 사람이 혼자 차지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K씨는 신문 보도나 기삿거리가 있는 것을 뽑아서 민원을 계속 넣기도 했다. 최근 이슈가 된 부산 신공항과 관련한 민원, 정치와 관련된 민원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민원은 모두 처리해야 될 민원이 되어 시의 행정력에 부담을 안기곤 했다.

시 교통과의 다른 관계자 역시 "K씨가 버스 정차 위치와 관련된 불만과 같은 사소한 민원을 많이 넣었다"면서, "그런 민원을 반복적으로 올렸는데, 원래 반복 민원은 종결 처리가 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유사한 민원을 몇 글자만 바꿔서, 이름만 다른 사람으로 올려서 보내다보니 처리하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부산광역시와 관련 부서에서 K씨의 민원을 따로 처리하는 등, 민원이 반려되기 시작하자 그의 민원은 주변 지역으로도 뻗쳤다. 양산시, 김해시 등 주변 도시는 물론 서울특별시와 같은 먼 지역으로도 민원을 보냈다. 개중 대부분은 교통 관련 민원에 집중되었다.

116건의 혐의로 구속... "사건 기록만 2천 페이지"

K씨의 민원 타겟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집중되었다. 그가 거주하던 M아파트는 그로 인해 고충을 겪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K씨가 먼저 시비를 건 뒤 아파트 주민들이 대응하자 그를 토대로 고소를 넣는가 하면, 부당한 내용으로 민원을 넣어 고통을 겪게 하기도 했다.

K씨의 고발 내용은 '아파트 안에서 주인과 같이 노는 강아지의 목줄을 채우지 않았다', '나를 조사한 경찰관들이 부당하게 대했다' 등 다양했다. 결국 같은 아파트의 주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고, 지난 7월에는 탄원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것이 K씨의 구속을 불러왔다. 경찰관을 고소하는 등으로 인한 무고 17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10건, 다른 사람의 명의로 민원을 넣는 등 정보통신망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68건, 지역 주민을 폭행했던 등의 상해 등 116건의 혐의로 최근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사상경찰서의 담당 형사는 "작년부터 고소 건을 이어간다는 것은 알았는데, 피해자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면서, "확인을 위해 지난 7월 관리사무소를 찾아 회의를 열었는데 피해 본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더라. 회의를 통해 나온 탄원을 바탕으로 수사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형사는 "사건 기록만 2천 페이지가 나와 깜짝 놀랐다. 한 사람이 피의자가 된 일에 이런 분량이 나온 걸 보면 일반 행정력이 어마어마하게 낭비된 것이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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