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 사망' 로젠택배 계약서 보니... "위약금 천만원"
'손해배상·보증금 미반환' 등 조항도 발견... 동료 B씨 "힘들다 했지만, 그만두기 어려웠다"
▲ 20일 로젠택배 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계약서.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 택배노동자들은 권리금과 보증금도 모자라 그리고 개인사정으로 계약을 해지하려해도 위약금 1천만원을 내도록 계약서를 써야한다. ⓒ 김보성
▲ 20일 로젠택배 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여러 계약서 중 일부. ⓒ 김보성
과로사에 이어 이젠 생활고를 겪던 택배 노동자가 지난 20일 극단적 선택으로 숨졌다. 경남 창원 진해구의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에서 일한 40대 후반 로젠택배 노동자 A씨의 이야기다. 그는 "억울하다"는 제목의 유서를 남겼다. 옷 호주머니에는 A4용지에 쓴 유서 등이 들어 있었다.
올해만 10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목숨을 잃자 최근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번엔 '갑질' 논란까지 불거질 태세다. 11번째 사망자인 A씨는 직접 꼼꼼히 적은 유서에서 로젠택배의 문제점을 고발했다.
숨진 A씨는 지난 2019년 12월 어렵게 차량과 번호판을 구해 권리금까지 내면서 택배를 시작했다. 하지만 온종일 택배를 날라도 그가 한 달에 버는 돈은 200만 원도 되지 않았다.
"적은 수수료에 세금 등 이것저것 빼면 200만 원도 못 번다."
"모집하면 안 되는 구역인데 보증금을 받고 권리금을 만들어 팔았다."
"먹던 종이 커피잔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화를 냈다."
"직원 이하로 보고 있음을 알았다."
A씨가 남긴 유서의 일부분이다. 그는 유서에서 부당한 대우와 갑질 문제를 언급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시정 조처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A씨의 말대로 "(지점이) 자기들이 책임을 다하려고" 했다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A씨의 동료와 어렵사리 통화 연결이 됐다. 그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성토했다. 같이 로젠택배 일을 하는 B씨는 "일을 하려면 권리금을 주고 구역을 사야 하고, 차량 구입에 보증금까지 초기 비용이 생각보다 많다"면서 "게다가 고인이 맡은 곳은 아파트가 많아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번 추석에 물량까지 몰리면서 힘들다는 말을 주변에 했다"라고 말했다.
A씨는 수입이 줄고 신용도까지 하락하자 일을 그만두고 싶어 했다. 차량 할부 등을 위해 낸 대출의 원금과 이자 등 매달 120만 원이 추가로 나갔다. 택배 배송업무 하중은 물론 생활 어려움까지 이중고에 시달린 것이다.
그러나 퇴사는 쉽지 않았다. 그 이유를 B씨가 설명했다. 그는 "고인은 수개월 전부터 차에 구인구직을 붙이고 다니면서 사람을 구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일이 많고 수입까지 적은 A씨의 구역을 쉽게 맡으려 하지 않았다.
이어 계약서라는 존재가 등장했다. 로젠택배 노동자들은 '손해배상 책임', '위약금' 등이 명시된 계약서까지 써야 했다. B씨는 "계약서에는 '지점에 피해를 줄 경우 1천만 원을 청구할 수 있다'거나 '손해배상 책임'을 묻도록 되어 있다. 중간에 사람을 구하지 않고 나가고, 배송에 문제가 생기는 등 불이익이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 19일 로젠택배 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생활고에 시달려온 그는 부조리한 상황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겼다. ⓒ 김보성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강서지점의 여러 계약서를 보면, 실제 개인 사정으로 중도 계약해지나 계약기간을 지키지 못하면 '을'은 위약금 1천만 원을 '갑'에게 지급하게 되어 있다. '갑'은 로젠택배 지점이며, 개인사정인 생활고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다른 계약서에는 '을에게 손해배상 책임', '계약만료일까지 계약유지 없이 일방적으로 해지하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다' 등이 명시됐다. 숨진 A씨의 계약서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A씨의 계약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A씨는 조만간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었지만, 자신의 구역을 대신할 사람을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B씨는 "고인이 이런 상황에 더는 벗어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며 A씨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로젠택배, 갑질 의혹 부인... "드릴 말씀 없다"
고인이 일하던 현장에는 그나마 노조가 결성되어 있다. 단일 노조인 전국택배노동조합이다. 다만 고인은 비조합원으로 노조 활동에 참여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숨지기 직전 자신의 유서를 조합원에게 보냈다.
택배노조는 "로젠택배의 구조적 문제와 갑질이 불러온 사건"으로 규정하고 대응을 논의 중이다. 노조 측 관계자는 "유서를 조합원에게 전달한 것은 자신의 억울함을 알려달라는 게 아니겠느냐"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로젠택배 측은 갑질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A씨의 죽음을 둘러싼 책임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로젠택배 지점 측은 언론에 "손해배상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오마이뉴스>는 로젠택배 강서지점장 C씨의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하고, 문자를 남겼다. 21일 오전 C씨는 아직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 강서지점 사무실 전화로는 연락이 닿았지만, 이 관계자는 "드릴 말이 없다"며 사건의 구체적인 언급을 꺼렸다.
그러나 로젠택배는 본사 차원의 대응에 들어갔다. 지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벌어지자 로젠택배는 관계자를 현장으로 내려보내는 등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때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위원회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최근 심야택배배송을 마치고 자택에서 사망한 김 아무개씨관련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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