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공로 크다" 84.3%... "과오 크다" 49.2%
[오마이뉴스 주간 현안 여론조사] 고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공과 과를 묻다
우리 국민들은 고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한국 사회에 끼친 공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10명 중 8명 이상은 공로가 크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또 10명 중 약 5명은 과오가 크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마이뉴스>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27~28일 이틀에 걸쳐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총 통화 1만7168명, 응답률 5.8%)을 대상으로 고 이건희 전 회장의 공과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질문은 공로와 과오를 각각 따로 묻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문항과 순서는 다음과 같다.
Q. 고 이건희 삼성 전 회장이 한국 사회에 기여한 공로가 얼마나 크다고 혹은 크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선택지 1~4번 순·역순 배열)
1. 공로가 매우 크다
2. 공로가 큰 편이다
3. 공로가 별로 크지 않다
4. 공로가 전혀 크지 않다
5. 잘 모르겠다
Q. 그러면 고 이건희 전 회장이 한국 사회에 끼친 과오가 얼마나 크다고 혹은 크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선택지 1~4번 순·역순 배열)
1. 과오가 매우 크다
2. 과오가 큰 편이다
3. 과오가 별로 크지 않다
4. 과오가 전혀 크지 않다
5. 잘 모르겠다
조사 결과, 고 이건희 전 회장의 "공로가 크다"는 응답이 84.3%로 절대 다수였다. 특히 "매우 크다"는 응답이 54.3%로 절반이 넘었다("큰 편이다" 30.0%). 반면 "공로가 크지 않다"는 응답은 11.5%에 그쳤다(잘 모름 4.1%). 대부분이 이 전 회장이 사회에 기여한 공로에 대해 인정하는 분위기임을 알 수 있다.
반면 과오에 대해서는 나뉘었다. "과오가 크다" 49.2%, "과오가 크지 않다" 43.2%로 나타났다(잘 모름7.6%). 과오가 크다는 쪽이 살짝 높지만, 두 응답의 격차가 6.0%p로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 ±3.0%p) 안이다. 4점 척도로 살펴보면 "과오가 매우 큼" 21.7%, "과오가 큰 편" 27.6%, "과오가 별로 크지 않음" 26.3%, "과오가 전혀 크지 않음" 16.9%로 양 극단으로 쏠리기보다는 중앙으로 모이는 모양새다.
두 문항을 교차해서 분석해보면 여론 지형을 보다 입체적으로 알 수 있다. 전체 응답자 중 '공로 큼 + 과오 적음' 응답이 40.5%, '공로 큼 + 과오 큼' 응답이 38.1%였다. 고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해 '공로는 크고 과오는 적다'는 평가층과 '공로도 크지만 과오도 크다'는 평가층이 팽팽히 나뉘어 전체의 약 80%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 ⓒ 박종현
'공로 크고 과오 적다' 40.5% - '공로 크지만 과오도 크다' 38.1% 팽팽
조사 결과를 권역별로 살펴보면, 공로에 대해서는 거의 전 지역에서 크다는 응답이 다수였다. 서울이 90.7%로 가장 높았고 부산/울산/경남 87.4%, 대전/세종/충청 85.2% 순이었다. 반면 과오에 대해서는 나뉘었다. 광주/전라(과오 큼 55.2% - 크지 않음 35.1%)와 인천/경기(51.3% - 38.8%)에서는 과오가 크다는 응답이 높았고, 반면 대구/경북(40.1% - 55.0%)에서는 크지 않다는 응답이 높았다. 서울(48.7% - 45.2%), 대전/세종/충청(46.7% - 43.1%), 부산/울산/경남(47.8% - 50.1%)에서는 팽팽했다.
연령별로는 모든 연령대에서 공로가 크다는 응답이 절대 다수인 가운데 20대(18·19세 포함)에서 긍정 응답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 점이 눈에 띈다. 공로가 크다는 응답이 전체 평균보다 높게 나온 연령대는 70세 이상(89.4%), 60대(88.6%), 20대(86.5%), 50대(85.7%)였다. 반면 과오가 크다는 응답은 40대(53.5%), 30대(51.0%), 70세 이상(50.4%)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70세 이상에서 공로-과오 양쪽 다 높게 나온 것이 눈에 띈다. 30~40대는 공로가 크다는 응답이 70%대를 형성하면서 과오가 크다는 응답도 절반에 이르는 분위기다.
이념성향별로는 보수(89.3%), 중도(89.1%), 진보(75.9%)층 모두 공로가 크다는 응답이 매우 높았다. 과오에 대해서는 엇갈렸는데, 진보층에서는 과오 큼 67.4% - 크지 않음 25.5%였지만, 보수층에서는 32.6% - 60.5%로 뒤바뀌었다. 중도층은 44.0% - 49.4%로 비등했다.
지지정당별 분석에서도 이념성향과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민주당 지지층(75.8%)과 국민의힘 지지층(95.8%) 모두 공로가 크다는 응답이 절대다수였다. 하지만 과오에 대해서는 민주당 지지층은 70.1%가 과오가 크다고 답한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은 71.0%가 크지 않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공과 과를 물었다... "재계 전무후무한 리더" vs "정경유착 완성시킨 인물"
▲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발인식이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고인의 영정과 위패를 든 유족들이 장지로 향할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고 이건희 전 회장의 긍정적 기여에 대해 기본적으로 높게 평가하면서도 부정적 과오도 크다는 인식이 약 절반에 이르는 등 상당수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공로와 과오가 있을까? 여론조사는 ARS 방식이어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얻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정·재계 및 시민단체 인사들에게 전화를 통해 이 전 회장에 대한 공과 과를 직접 물었다.
-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이건희 회장이 취임했던 당시에는 일본을 쫓아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때였어요. 우리 사회가 2류를 목표로 했던 시절이었죠. 그런데도 (이 회장은) 초일류 기업이라는 비전을 갖고 그 꿈을 실현시켰습니다. 물론 갖가지 스캔들도 있었죠. 그런 게 없었다면 좋았겠지만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 상황에 비춰 보면 이건희 회장만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 또한 그에 맞는 발전을 해왔던 것이고요."
-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본인 시대에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기억되겠죠.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맞는 기업 문화와 경제 질서 안에서 가장 선도적인 역할을 한 분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소통과 개방의 시대, 새로운 시대가 왔습니다. 경제계 세대교체, 그것이 새로운 활력을 만들 것으로 봅니다."
-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 "과에 대해선 평가하지 않겠습니다. 이 회장은 삼성이 반도체·모바일 분야에 진출하고 성과를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인재·품질·미래를 중시하는 철학을 가지고 이를 실천했고, 그 성과가 반도체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삼성이 중진국의 그저 그런 기업에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돌파구를 열어준 셈이죠."
- 장혜영 정의당 의원 "저는 사람 목숨을 돈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 사회에 남긴 게 이건희 회장의 가장 큰 과오라고 봐요. 수많은 사람들을 노동 탄압하고 이들을 와해시키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덮어왔고, 밀실에서 정경유착을 통해 세습 경영을 이어가려고 하는 등 좋지 않은 경영 역사를 남겼다고 봅니다."
-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 "이건희 회장님은 흑백TV를 만드는 아시아의 작은 기업 삼성을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선도하는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특히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이건희 회장님의 1993년 '신경영 선언'은 강도 높은 품질혁신으로 삼성이 세계가 주목하는 브랜드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수출과 일자리 창출을 견인하는 사업보국의 대표적인 국민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 입술 굳게 다문 이건희지난 2013년 10월 28일 이건희 당시 삼성전자 회장이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삼성신경영 20주년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부축을 받으며 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행사를 마치고 그는 외국으로 나간 후, 그해 12월 말께 귀국했다. 이듬해 1월 2일 신년하례회와 삼성인상 시상식(9일) 참석이 그의 마지막 공식 행사였다. 4개월 후 그는 심근 경색으로 쓰러졌고, 6년이 넘는 투병생활 끝에 지난 25일 별세했다. ⓒ 이희훈
-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 "반도체 산업 발전을 이끈 것이 이건희 회장의 가장 큰 공이었죠. 하지만 그걸 이 회장만의 공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삼성그룹이 글로벌하게 큰 데는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등 당시 함께 일했던 전문 경영자들의 공도 컸다고 봐요. 그에 반해 이건희 회장은 기업의 성공을 위해 우리 사회를 오염시켰습니다. 소위 정경유착의 한국형 모델을 완성시킨 사람이 바로 이 회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 "이건희 회장님은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으신 재계 최고의 리더셨습니다. 남다른 집념과 혁신 정신으로 반도체 산업을 한국의 대표 먹거리 산업으로 이끄셨고,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하셨습니다."
-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 "이건희 회장의 공과 과를 자세히 말하기는 쉽지 않죠. 경제와 관련해서도 그렇지만 (노동 문제 등)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부분에 대해 평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반도체 등으로 삼성을 세계 일류기업으로 이끌어나간 것은 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양동규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파괴 문건, 삼성 미래전략실 문건 등을 보면 기본적으로 (이 회장이) 정상적으로 기업을 운영했다 보기는 어렵습니다. 삼성은 걸림돌이었습니다. 반도체·휴대전화로 한국 경제 성장에 기여한 것, 다른 기업이라고 못했을까요? 불법, 노동자들의 희생, 인권유린 등에 기반 했기 때문에 공이 얼마고 과가 얼마인지를 따지는 건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라고 보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유서를 남기고 죽었어요. (굳이) 그의 공·과를 평가해야 하는가, 그런 점이 아쉽습니다."
-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IT(정보통신기술)·반도체 산업의 부흥기를 세팅한 사람이라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기업의 운영방식이나 경영권 승계 문제 측면에서 보면 삼성은 사실 부끄러운 기업입니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 문제를 계속 다루면서 들었던 의문은 삼성에게는 어떻게 이렇게 반칙과 특혜가 용인되는가였죠. 최근에서야 편법·불법 없이는 사실상 승계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 회장의 경영방식은 법치주의가 대한민국 땅에서 확립되는 데 큰 장애가 됐습니다."
- 박상인 서울대 교수 "삼성전자를 국내 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고, 회사가 반도체로 세계 1~2위를 다툴 수 있게 한 것은 이 회장의 공이 큽니다. 하지만 과도 있습니다. 삼성자동차 실패 부담을 삼성그룹이 진 게 아니라 국민 세금으로 메우게 했죠. 또 이 회장은 재벌의 가장 어두운 면, 부정적인 면을 보여줬습니다. 비자금, 정경유착, 불법 세습, 법원의 봐주기 판결 등 우리나라 재벌의 고질적인 병폐들을 모두 보여줬죠. 그리고 글로벌 기업에 걸맞지 않은, 후진적인 노사관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무노조 경영을 지속하면서 노동자들의 건강권이나 작업 환경을 철저히 무시하는 이런 한계들도 보여줬습니다."
▲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발인식이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운구차가 장례식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번 조사는 무선(80%)·유선(20%)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집방법은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RDD) 방식을 사용했고, 통계보정은 2020년 7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기준으로 성별, 연령대별, 권역별 가중치 부여 방식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자세한 조사 결과는 오른쪽 '자료보기' 버튼을 클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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