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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상인들은 물대포를 몸으로 막았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과 전태일

등록|2020.11.03 13:40 수정|2020.11.03 13:40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어. (중략)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전태일 열사가 친구들에게 적은 유서 중 일부분이다. 감히 해석해 보건대, 자신은 죽지만 동지들과 함께 하겠다는 뜻으로 '보이지 않게 참석했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덩이'는 전태일의 꿈인 것 같다. 노동자가 해방된 세상 말이다. 그 못 다 이룬 꿈을 동지들에게 맡기고 간다고 이야기한 듯하다.

지난 10월 29일 아침, 수협이 쏜 물대포를 맞고서도 농성장을 지켜낸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을 보며 전태일의 유서를 오래 생각했다.

물대포 직사 살수 '헌법 위반' 결정, 그런데...
 

2020년, 서울시 한복판에 다시 등장한 물대포수협이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을 저지하기 위해 직사 살수를 행하고 있다. ⓒ 옥바라지선교센터


"[오전 6:17] 물대포 가져온답니다."
"[오전 6:29] 수협 오고 있답니다!"
"[오전 6:31] 포크레인으로 물대포를 올리네요."
"[오전 6:40] 올라옵니다."

눈을 의심했다. 수협은 현대화 사업 과정 중 상인들을 밀쳐 넘어뜨리거나 "계속 그렇게 집 없이 살아 XXX들아"라고 욕을 하는 등 무수한 폭력을 반복했다. 그런데 이제 물대포까지 등장했다. 헌법재판소는 올해 4월 23일, 물대포 직사 살수는 생명권과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 물대포가 서울 한복판에서 다시 발사됐다.

60~70대 고령의 상인들은 물줄기를 막아보려고 스티로폼, 테이블, 박스 등을 동원했다. 하지만 물은 속수무책으로 들이닥쳤다. 얼굴과 몸으로 직행하는 물을 가만히 맞고 서 있기도 했다. 방법이 없어 보였다. 몸으로 물을 막아 농성장을 지키는 것밖에는.

국민 혈세 1500억 들어간 수협 현대화 사업

"노량진역 깨끗해졌겠네요. 이른 새벽부터 시민을 위해 고생해주신 수협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수협과 경찰의 폭력 만행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문에 달린 댓글이다. 사실 수협은 국민의 혈세로 현대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간 기업인데도 말이다.

민간 기업이 이윤을 거두는 사업에 혈세가 동원되는 걸 우려한 목소리가 있었다. 한국개발연구원이 2006년에 발표한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 표지한국개발연구원은 2006년, 수협의 현대화 사업에 혈세가 투입되는 것을 우려한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 한국개발연구원


"노량진 수산시장은 중앙도매시장으로서 재정지원이 가능하나 민간기관인 수협이 시장의 소유주이기 때문에 재정지원이 제한될 수 있다. 정부가 특정민간단체의 사업 확장을 재정을 투입해 무상으로 지원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어서 국고를 무상으로 지원하는 방식은 대단히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쉽게 해석하면, 노량진수산시장은 나라가 관리하라고 법으로 지정한 '중앙도매시장'이라 국가의 재정 지원이 가능한데, 수협이 사기업이라서 한 기업에만 특혜를 줄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수협은 국고 1500억 원을 지원받아 구 시장 터에 부동산 개발을 앞두고 있다. 어떻게 된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서울시의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아래 농안법) 위반과 직무 유기 때문이다. 2001년, 수협은 노량진수신시장의 땅과 건물을 샀다. 그리고 2002년, 서울시는 수협과 의문의 계약서를 하나 쓴다. 서울시는 수협 소유의 노량진수산시장의 건물과 땅을 공짜로 사용하고 수협이 노량진수산시장을 관리하고 운영하라는 계약서다.

농안법에 따르면 서울시는 노량진수산시장의 개설자이자 관리자다. 운영은 외부 도매시장법인이나 시장도매인에게 맡겨야 한다. 수협 같은 기업이 시장을 운영할 수 있다는 의미다.

관리 주체와 운영 주체가 나뉘어 있지만 시장을 책임져야 하는 건 관할 지자체인 서울시다. 하지만 서울시는 농안법을 위반한 채 수협과 이유를 알 수 없는 계약서를 쓰고 모든 관리 권한을 수협에게 넘겨줬다.

이때부터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과 상인들이 내는 월세가 사기업인 수협 손으로 들어간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이었던 2012년, 수협은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에 착공했다.

노량진수산시장은 나라가 지정한 중앙도매시장이고 서울시가 미래 유산으로 선정한 곳이다. 시장 자체에 공공성이 있다는 뜻이다. 공공성이 있다는 건 곧 시민의 공간이란 걸 의미한다. 시민의 공간을 수협이 샀고, 거기서 영리적 사업을 펼치는 데 국고가 지원된 이유는 농안법 때문이다. 서울시는 관리 권한을 수협에 다 줘버렸지만 법에는 노량진수산시장이 나라가 정한 중앙도매시장으로 돼 있어서 수협은 국고를 끌어올 수 있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공적 공간을 사기업이 샀고 그 공간을 개발해 사업을 펼치는데, 혈세 1500억 원을 끌어다 썼다. 서울시는 시장 개설자이자 관리자이지만 아무 것도 안 하고 수협은 옛 시장 땅을 개발해 돈 벌 궁리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당신도 모르는 사이 당신이 낸 세금이 당신과 크게 상관 없는 기업의 배를 불리기 위해 동원됐다는 것이다.

상인들이 물대포를 맞아가며 농성장을 지킨 근본적 이유는 이것이다. 사기업의 횡포, 지자체의 직무 유기로 인해 평생을 바쳐가며 일군 시민의 공간이자 일터가 파괴된 것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대들의 일부인 상인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상인들이 농성장에 모여 "투쟁"을 외치고 있다. ⓒ 박김성록


투쟁 중인 상인들 중 막내라 불리는 상인의 장사 경력이 30년이다. 기본이 30년이라는 뜻이다. 최소 30년을 피땀 흘린 일터를 돈 놀음 때문에 하루아침에 없앤다는 것은 상인들이 노동자로서 살아온 세월을 무시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동 탄압은 늘 이렇게 진행돼 왔다. 비정규직을 불법 파견하고, 2인 1조 작업을 1인이 하게 하고, 한 사람에게 여러 기계를 돌리게 하고, 미래에 경영이 악화될 것 같다며 노동자 수천 명을 부당하게 해고하고.

이 모든 탄압의 중심에는 돈이 있다. 기업이 두드리는 계산기에 노동자의 목숨값, 생존값은 없다. 이 계산기 앞에서 노동자의 노동은 '비용'일 뿐이다. 적은 비용으로 최대 이윤을 내려면 노동자를 줄여야 하고 쉽게 쫓아낼 수 있어야 한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겪은 폭력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신시장 지어주고 월세를 두 배 올려 받아야, 구시장은 허물고 거기에 건물 짓고 사업을 해야 이윤이 늘어난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 노량진을 해산물의 명소로 만든 상인들의 노동은 이윤 창출에 방해가 된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은 유별난 사람들이 아니다. 수많은 노동자 중 일부다. 새벽 5시에 출근해 생선 떼와서 손질해 팔고, 밤 11시에 퇴근하는 평범한 노동자, 기업의 횡포로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일 뿐이다.

전태일 유서 마지막 부분은 아래와 같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물대포를 맞고 가만히 서서 사기업의 횡포에 맞서는 상인들을 오래 떠올렸다.

"어쩌면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못다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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