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차 엄마는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부지런히 쓰고 고친 글로 나온 '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들 할래'... 출판기념회를 열다
나는 동네서점을 떠올리면 만화방이 떠오른다. 20대까지의 내가 다녔던 서점은 그런 분위기였다. 만화방은 책으로 사방이 책으로 뒤덮여 있다. 책에서 풍기는 특유의 종이 냄새가 가득했다. 타 지역의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에 가보고서야 동네서점의 정겨움을 알았다.
'환상'의 사전적 의미는 현실성이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이다. 현실성 없는 이 단어가 서점과 결합하면 말 그대로 환상적인 동네서점이 된다. 전라북도 군산, 이 소도시에 환상적인 서점이 있다.
내가 동네서점에 푹 빠진 이유
서점은 책을 파는 상점이다. 어떤 책을 팔기에 환상적일까. 책 <환상의 동네서점>에 그 이야기가 담겨있다. 군산에 한길문고라는 서점이 있다. 나는 여고생일 때 문제집과 잡지를 사러 이 서점에 다녔다. 어른이 되어서는 베스트셀러를 사기위해 또는 약속장소로 한길문고를 애용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서점에 발걸음이 뜸해졌다. 더 편리한 온라인 서점도 한몫 했다.
그랬던 내가 다시 한길문고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프로그램 때문이다. 에세이 쓰기, 작가 강연,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200자 백일장 대회, 시 낭송, 마술 공연, 북 캠프, 라면 먹고 갈래요? 디제이가 있는 서점. 이 모든 행사가 바로 한길문고에서 열렸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되었다. 사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서점에서 캠핑을 하고 컵라면과 김밥을 먹고 마술 공연을 보았다.
이 환상적인 서점에 내가 푹 빠진 이유는 또 있다. 지방 소도시에서 책을 쓴 작가를 직접 만나기는 하늘에서 별 따오는 것보다 더 어렵다. 군산의 동네서점(한길문고, 우리문고, 예스트서점)에서 책을 무릎에 올려놓고 그 책을 쓴 작가를 바로 앞에서 만날 수 있었다. 뒤늦게 시작한 덕질은 전작주의를 하게도 했고 나도 쓰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해줬다.
열망을 채워준 프로그램도 있다. 바로 '에세이 쓰기'이다. 지방에서는 글쓰기를 가르쳐 주는 곳이 드물다. 물론 글은 혼자서 쓸 수도 있다. 그러면 글에 '나쁜 놈'이 곳곳에 생긴다. 한길문고의 상주작가인 배지영 작가는 글에서 '나쁜 놈'을 몰아내고 '좋은 놈'을 배치하는 비법을 전수해주었다.
배지영 작가는 동화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주인공 나무 같다. 글쓰기를 배우러 오는 사람 모두를 자식처럼 대해준다. 나무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모든 것을 다 내어준다. 그 덕에 우리는 무럭무럭 성장하고 우리가 쓴 글도 같이 자랐다. 회원들끼리 읽어보던 글을 오마이뉴스, 브런치, 블로그, 일간지 등에 내보내기도 했다.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다
책 <환상의 동네서점>의 마지막 부분에 그 동안 같이 글쓰기를 배운 회원들의 이름을 나열한 페이지가 있다. 그 페이지 끝에 이렇게 적혀 있다.
"언젠가 탑처럼 쌓여 있는 여러분의 책을 서점에서 사고 싶습니다."
2020년 5월, 배지영 작가는 돌발 제안을 했다. 메신저 단톡방에 독립출판으로 각자 책을 내보자고. 그녀는 한 술 더 떠서 10월의 마지막 밤에 출판기념회를 하기로 못 박았다. 나는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글 신은경" 이 문구가 먼저 떠올랐다. 앞으로 닥칠 어려움을 상상도 못한 채 마냥 기분이 좋았다. 배지영 작가는 늘 말한다. "꾸준히 쓰세요." 말 한 그대로 꼬박꼬박 숙제를 했을 뿐인데 글이 모였다.
숙제로 쓰는 글과 책을 만드는 글은 달랐다. 우리는 출판사와 계약을 한 작가가 아니었다. 독립출판은 말 그대로 독립적이어야 했다. 겉표지, 내지, 글씨체, 글자 크기, 여백 등 출판사를 다녀올 때마다 과제를 더 얹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서 아무리 살펴도 안 보이던 오탈자는 편집 과정을 거칠 때마다 튀어나왔다. 책이 구색을 갖춰 갈수록 더 욕심이 생겼다. 내 글을 문집으로 묶어 놓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는데 서점에 있는 책처럼 만들고 싶어졌다. 목차를 가다듬고 회원들에게 의견을 구하기도하고 출판사 편집자에게도 도움을 구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들 할래>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독립출판이지만 혼자서 한 일이 아니었다. 책은 회원별로 각자 만들지만 우리는 함께 했다. 그래서 할 수 있었다.
<환상의 동네서점> 에필로그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적혀 있다.
10월의 마지막 밤, 한길문고에 '열한 명의 출간작가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배지영 작가는 이 날도 신데렐라에 나오는 요정할머니처럼 마법을 부렸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서점에 11개의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현수막에는 우리가 만든 책이 있었다. 배지영 작가의 상상 속 장면이 현실이 되었다. 11명의 작가들이 소감을 이야기 하는 순서에서 그동안의 시간이 머릿속에서 영화처럼 재생되었다.
나는 이 첫 책을 쓰면서 책 속에서 주인공이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주인공의 삶보다 주변인의 삶을 살아온 내가 다시 내 삶의 주인이 되었다. 다른 회원들도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쓰기로 했다.
여자가 아이를 출산할 때 겪는 산고는 이루 표현할 수 없이 힘들다. 하지만 갓 태어난 아이의 얼굴을 보면 모두 잊는다고 한다. 그래서 둘째도 낳고 셋째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첫 책을 받아들고 그동안 힘들었던 출간 과정을 모두 잊었다.
다음 책이 또 갖고 싶어졌다. 배지영 작가가 아낌없이 베풀어준 양분으로 우리는 무럭무럭 자라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끼리 걸어 나가기로 했다. 한길문고에서 환상이 실제가 되었다. 정말 환상적이지 않은가.
'환상'의 사전적 의미는 현실성이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이다. 현실성 없는 이 단어가 서점과 결합하면 말 그대로 환상적인 동네서점이 된다. 전라북도 군산, 이 소도시에 환상적인 서점이 있다.
서점은 책을 파는 상점이다. 어떤 책을 팔기에 환상적일까. 책 <환상의 동네서점>에 그 이야기가 담겨있다. 군산에 한길문고라는 서점이 있다. 나는 여고생일 때 문제집과 잡지를 사러 이 서점에 다녔다. 어른이 되어서는 베스트셀러를 사기위해 또는 약속장소로 한길문고를 애용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서점에 발걸음이 뜸해졌다. 더 편리한 온라인 서점도 한몫 했다.
▲ <환상의 동네서점>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로 일한 기록이다. ⓒ 배지영
그랬던 내가 다시 한길문고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프로그램 때문이다. 에세이 쓰기, 작가 강연,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200자 백일장 대회, 시 낭송, 마술 공연, 북 캠프, 라면 먹고 갈래요? 디제이가 있는 서점. 이 모든 행사가 바로 한길문고에서 열렸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되었다. 사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서점에서 캠핑을 하고 컵라면과 김밥을 먹고 마술 공연을 보았다.
이 환상적인 서점에 내가 푹 빠진 이유는 또 있다. 지방 소도시에서 책을 쓴 작가를 직접 만나기는 하늘에서 별 따오는 것보다 더 어렵다. 군산의 동네서점(한길문고, 우리문고, 예스트서점)에서 책을 무릎에 올려놓고 그 책을 쓴 작가를 바로 앞에서 만날 수 있었다. 뒤늦게 시작한 덕질은 전작주의를 하게도 했고 나도 쓰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해줬다.
열망을 채워준 프로그램도 있다. 바로 '에세이 쓰기'이다. 지방에서는 글쓰기를 가르쳐 주는 곳이 드물다. 물론 글은 혼자서 쓸 수도 있다. 그러면 글에 '나쁜 놈'이 곳곳에 생긴다. 한길문고의 상주작가인 배지영 작가는 글에서 '나쁜 놈'을 몰아내고 '좋은 놈'을 배치하는 비법을 전수해주었다.
배지영 작가는 동화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주인공 나무 같다. 글쓰기를 배우러 오는 사람 모두를 자식처럼 대해준다. 나무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모든 것을 다 내어준다. 그 덕에 우리는 무럭무럭 성장하고 우리가 쓴 글도 같이 자랐다. 회원들끼리 읽어보던 글을 오마이뉴스, 브런치, 블로그, 일간지 등에 내보내기도 했다.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다
▲ 내가 처음으로 낸 책 ⓒ 배지영 제공
책 <환상의 동네서점>의 마지막 부분에 그 동안 같이 글쓰기를 배운 회원들의 이름을 나열한 페이지가 있다. 그 페이지 끝에 이렇게 적혀 있다.
"언젠가 탑처럼 쌓여 있는 여러분의 책을 서점에서 사고 싶습니다."
2020년 5월, 배지영 작가는 돌발 제안을 했다. 메신저 단톡방에 독립출판으로 각자 책을 내보자고. 그녀는 한 술 더 떠서 10월의 마지막 밤에 출판기념회를 하기로 못 박았다. 나는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글 신은경" 이 문구가 먼저 떠올랐다. 앞으로 닥칠 어려움을 상상도 못한 채 마냥 기분이 좋았다. 배지영 작가는 늘 말한다. "꾸준히 쓰세요." 말 한 그대로 꼬박꼬박 숙제를 했을 뿐인데 글이 모였다.
숙제로 쓰는 글과 책을 만드는 글은 달랐다. 우리는 출판사와 계약을 한 작가가 아니었다. 독립출판은 말 그대로 독립적이어야 했다. 겉표지, 내지, 글씨체, 글자 크기, 여백 등 출판사를 다녀올 때마다 과제를 더 얹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서 아무리 살펴도 안 보이던 오탈자는 편집 과정을 거칠 때마다 튀어나왔다. 책이 구색을 갖춰 갈수록 더 욕심이 생겼다. 내 글을 문집으로 묶어 놓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는데 서점에 있는 책처럼 만들고 싶어졌다. 목차를 가다듬고 회원들에게 의견을 구하기도하고 출판사 편집자에게도 도움을 구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들 할래>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독립출판이지만 혼자서 한 일이 아니었다. 책은 회원별로 각자 만들지만 우리는 함께 했다. 그래서 할 수 있었다.
<환상의 동네서점> 에필로그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일은 한길문고라는 동네서점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 뒤에는 30년 넘게 서점을 사랑해준 군산 시민들이 있다. 작가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고 군산 사람들 중에서 탄생하는 거다. 알고 보면 서로가 서로를 뒷바라지해주는 셈이다."
"꺼내지 못하고 묻어둔 꿈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10월의 마지막 밤. 자기 이름이 박힌 첫 책을 들고 있는 작가들의 얼굴을 그려본다. 우리 엄마라고, 우리 할머니라고, 우리 아빠라고, 내 아내라고, 내 남편이라고 자랑스러워할 식구들도 떠오른다. 감격적인 현장에 나도 함께할 수 있어서 기쁘다."
▲ 출판기념회10월의 마지막 밤에 출판기념회를 했습니다. ⓒ 신은경
10월의 마지막 밤, 한길문고에 '열한 명의 출간작가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배지영 작가는 이 날도 신데렐라에 나오는 요정할머니처럼 마법을 부렸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서점에 11개의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현수막에는 우리가 만든 책이 있었다. 배지영 작가의 상상 속 장면이 현실이 되었다. 11명의 작가들이 소감을 이야기 하는 순서에서 그동안의 시간이 머릿속에서 영화처럼 재생되었다.
▲ 출판기념회 현수막내가 쓴 책이 실려있는 현수막 감동적이었다. ⓒ 신은경
나는 이 첫 책을 쓰면서 책 속에서 주인공이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주인공의 삶보다 주변인의 삶을 살아온 내가 다시 내 삶의 주인이 되었다. 다른 회원들도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쓰기로 했다.
여자가 아이를 출산할 때 겪는 산고는 이루 표현할 수 없이 힘들다. 하지만 갓 태어난 아이의 얼굴을 보면 모두 잊는다고 한다. 그래서 둘째도 낳고 셋째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첫 책을 받아들고 그동안 힘들었던 출간 과정을 모두 잊었다.
다음 책이 또 갖고 싶어졌다. 배지영 작가가 아낌없이 베풀어준 양분으로 우리는 무럭무럭 자라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끼리 걸어 나가기로 했다. 한길문고에서 환상이 실제가 되었다. 정말 환상적이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브런치(brunch.co.kr/@sesilia11)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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