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회의 기술과 예술단체가 만나 작품이 탄생하다
비대면 교육 플랫폼업체 '구루미'와 극단 '고래'가 띄운 <10년 동안에> 온라인 공연
▲ 극단 고래의 <10년 동안에> 오프라인 공연. ⓒ 극단 고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비대면 공연'이 화두다. 네이버TV로 생중계되는 연극과 뮤지컬, 오케스트라 연주를 본다. 중계를 위한 시스템에 들어가는 비용이 공연 제작비보다 훨씬 더 많아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얘기도 나온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비유도 횡행한다. 제2의 코로나, 제3의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 없는 이 시대에 공연예술은 과연 어떤 출구를 찾아야 할까?
이 시도에서 온라인교육 플랫폼 회사인 '구루미'는 화상회의 툴을 제공한다. 구루미는 '줌(zoom)'이나 '구글 행아웃(Google hangout)'과 같은 해외업체와 달리 국내 자본의 스타트업 기업으로 화상회의뿐 아니라 '캠스터디(Cam study :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각자 웹캠을 틀어놓고 공부하는 방식)'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국내의 한 사이버대학에서는 '구루미'를 도입해 대학원 수업에서 실시간 세미나도 진행하고 있다.
'구루미'가 극단과의 연계를 시도하게 된 것은 비대면 공연의 효과성(실연 예술을 영상으로 내보냈을 때의 전달력)이 매우 낮다는 점 때문이었다. '구루미'가 연계한 극단은 '고래'(대표 이해성)로, 극단 고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다룬 <빨간시>, 세월호나 쌍용차 사태 유가족들의 고통을 보여주는 <비명자들> 시리즈로 유명하다.
극단 고래는 2020년 '고래 10전'이라는 이름으로 매월 한 편의 워크샵 공연을 올리고 있었는데 이 가운데 한 편이 <10년 동안에>라는 작품이었다. <10년 동안에>는 전염병 확산 때문에 공연 자체가 금지된 지 어언 10년이 지난 가까운 미래를 다루고 있는데, 그 와중에도 연극이 하고 싶어 마트 지하에서 연극 연습을 하고 있는 배우들의 이야기이다.
연극 <10년 동안에>는 '고래 10전' 가운데 하나
▲ <10년 동안에>는 10월 18일 오후 8시에 온라인으로 중계됐다. 관객 40여 명이 라이브로 참여했는데,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채팅창을 이용해 소감을 올려 마치 온라인으로 '관객과의 대화'가 이뤄지는 효과가 발생하기도 했다. ⓒ 극단 고래
이랑혁 '구루미' 대표는 이 시대를 잘 반영하고 있는 이 작품을 보고 이를 온라인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극단 고래에 '온라인 공연'으로 만들자고 제안했고, 이 제안을 받아들인 김동완 연출이 연극 <10년 동안에>의 온라인 버전을 만들게 된 것이다.
<10년 동안에>는 지난달 18일 오후 8시에 온라인으로 중계됐다. 관객 40여 명이 라이브로 참여했는데,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채팅창을 이용해 소감을 올려 마치 온라인으로 '관객과의 대화'가 이뤄지는 효과가 발생하기도 했다. 다음은 김동완 연출과의 미니 인터뷰 내용이다.
- 화상회의 플랫폼에서 온라인 연극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기획과 구상을 가졌었는지.
"현재 내가 교수로 재직 중인 극동대에서 이미 온라인 공연을 지도해 본 경험이 있다. 그때는 '줌'을 이용해서 공연을 했는데, 그때 이런 방식의 온라인 공연이 가진 문제점과 가능성을 모두 발견할 수 있었다.
'줌'에 비해 '구루미'의 장점은 화면 크기와 순서를 바꿀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곧 화면에 한 명이 나타났다가 복수의 인원이 출연하는 등 화면 구성이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앵글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환 가능해 지루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었다.
화면 구성상의 장점을 최대화하기 위해 스토리보드를 만들었다. 어떤 화면에 몇 명이 등장하고 이들이 어떤 표정을 지으며 어느 방향으로 얼굴을 돌려야 하는지 등을 정교하게 설계한 스토리보드였다. 배우들은 이 대본과 더불어 스토리보드를 숙지하고 연기를 한 것이다.
<그림> <10년 동안에>의 스토리보드 중 일부인 돼지, 생선, 쇠고기 등은 극 중 배역의 이름이며 화면 아래 1이라는 숫자는 등장 인물의 숫자를 뜻한다."
- 김동완 연출은 이미 같은 대본으로 오프라인 공연을 했고 이를 다시 온라인화 해서 공연했다. 온-오프라인 공연을 비교할 때 온라인 공연이 가지는 특장점은 무엇이었는지.
"보통 오프라인에서 연극 공연을 볼 때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배우를 선택해서 보게 돼 있다. 영상예술처럼 카메라가 보여주는 것만을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시선을 자유롭게 활용해 한 명 혹은 두 명의 배우에 집중하거나, 배우의 얼굴을 보는 게 아니라 손만 볼 수도 있고 눈만 볼 수도 있고... 그게 연극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오프라인 연극의 특성을 온라인 공연에 도입하기 위해 화면 구성을 정할 때 '배우 A가 이야기하고 있어도 배우 B의 리액션을 봐라'라고 그 화면에서 B배우만 보여준 적도 있다.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라고 하지 않는가? 연극에서 영화적 장점을 도입했다고 하면 이해가 될 것 같다.
또한 배우들에게 정면샷이 나오도록 시선 처리를 하라고 주문해서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느낌을 갖도록 했다. 나한테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상대 배우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임이 분명한데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이런 구성에 대해 혹자는 '그로테스크하다' 혹은 '부조리 연극 같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 외로운 자가격리의 시대에 잘 어울리는 방식 아닌가 싶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또 한 번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다음 작품으로 온라인 환경과 오프라인 환경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넘나드는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구상하고 있다."
기술과 예술의 결합, 기업과 예술단체의 결합
극단 <고래>의 이해성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구루미가 공연을 위한 맞춤형 툴이 아닌 만큼 기능적인 아쉬움은 다소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공연이 불가능한 상태에 온라인 공연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을 높게 사고 싶다"면서 "무대 위의 공연을 그대로 찍어서 올리는 형태가 아닌, 온라인과 오프라인 융합 형태의 공연 형식이 나올 것 같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번 공연은 구루미에서 온라인 연극 제작을 위한 비용과 실시간 화상 플랫폼을 제공했고, SKT는 5G 스마트폰과 MEC(Mobile Edge Cloud)를 제공해 배우들이 언제 어디서나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명실공히 기술과 예술의 결합, 기업과 예술단체의 결합이 성사된 셈인데, 코로나 시대 비대면 공연예술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업의 기술적 지원과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긴밀하게 연계돼야 한다는 점을, 그리고 그 연계의 성과가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 준 좋은 계기였다고 본다.
고래의 <10년 동안에> 온라인 공연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유튜브 동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