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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몰래 임신한 딸의 반항? "용감한 여성 그리고 싶었다"

[인터뷰] 영화 <애비규환> 최하나 감독

등록|2020.11.09 11:47 수정|2020.11.09 11:47
   

▲ 영화 <애비규환>을 연출한 최하나 감독. ⓒ 리틀빅픽쳐스


낳은 아빠와 15년간 키운 아빠 중 누가 진짜 아빠일까. 영화 <애비규환>은 제목처럼 '부성'을 중심 소재로 놓고 한 청년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자유분방하면서 주체적 성격의 여성이 가족 구성원과 남자 친구, 그리고 우리 사회에 실재하지만 보이진 않는 어떤 고정 관념에 균열을 내가는 코미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두세 편의 단편을 만든 최하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작품으로 썼던 시나리오가 덜컥 영화진흥위원회 장편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돼 빛을 볼 수 있었다. 1992년생으로 누군가의 딸이기도 한 감독은 "가족이라는 화두 자체를 오래 품어왔기도 했고, 첫 장편인 만큼 나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운을 뗐다.

열등감의 극복

주인공은 대학교를 휴학한 뒤 과외로 용돈을 버는 토일(정수정)이다.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과 연애를 하면서 덜컥 임신까지 한다. 이 모든 건 그의 계획이다. 재혼한 엄마와 새아빠 사이에서 나름 부족함 없이 살았다지만 자신을 낳은 아빠가 왜 가족을 떠났는지 궁금했다. 고민 많은 현재의 삶에 뭔가 전환점이 필요했다. 엄마와 같은 삶은 살지 않겠다며 그는 결혼과 출산 의사를 당당히 밝히고 홀로 자신의 고향 대구로 향한다.

딸이라면 으레 엄마와 더 정서적으로 가까운 법. 그럼에도 감독은 부성을 중심 소재로 잡았다. 크게 보면 전통 가족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젊은 여성이 겪는 특정 고정 관념에 대한 투쟁기로도 볼 수 있다. "집마다 관계가 다르겠지만 아빠와 서먹한 딸들이 있으니 갈등을 느낀다면 엄마보단 아빠가 이야기에 어울릴 것 같았다"며 최 감독이 설명했다.
 

▲ <애비규환>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아무래도 일반 가족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는 거니까 가부장제를 전복하거나 완전히 거부하는 건 제가 하려는 이야기와는 다른 게 될 것 같았다. 토일이가 가정을 이루고 결혼을 결심하는 건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게 아닌 다른 가능성을 보이는 거라 생각했다. 사실 저도 이야길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다. 가족을 이야기할 때 너무 가볍게 보이지도 않으면서도 비장하지 않은 선이 뭘까 고민했다. 가족이니까 이런 거야 식의 해피엔딩으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결말이 나온 것 같다.

제 경험이 아주 많이 담기진 않았는데 보통은 자기가 겪은 에피소드를 재료로 쓰긴 하잖나. 어렸을 때 일화가 반영돼 있긴 하다. 일곱살 때 올라오긴 했지만 저도 대구에서 태어났고, 영화에 나오는 물썰매장에 엄마랑 간 적도 있다. 우방타워랜드라고(웃음). 영화에 나오듯 실제 외할아버지, 할머니도 종갓집이라 그곳에 가면 엄청 유교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토일이라는 인물에 강한 애정이 있다. 저랑 닮았지만 제가 하지 못했던 일을 하는 친구였으면 했다. 남 눈치 안 보고, 앞만 보고 자기 길을 택하는 사람, 남의 비위를 맞추지 않는 젊은 여자를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그런 사람을 보통은 기가 세다고들 하잖나. 물론 토일이 기가 셀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 용감하고 담대한 여자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런 여성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시나리오를 고치면서 피디님과 많은 이야길 했다. 제 나이에 가족 이야기를 한다는 게 너무 심오한 것 같아서 어려웠는데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토일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생각해보라 하신 피디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코미디의 힘, 그리고 정수정이라는 반전

<애비규환>의 또 다른 특징은 한 인물의 성장과 갈등을 무겁지 않고 툭툭 웃을 수 있게 그렸다는 점이다. 토일의 부모 역을 한 장혜진, 최덕문, 그리고 토일이 남자친구의 부모 역을 한 강말금, 남문철의 캐스팅이 주효했다. 서로 다른 가족의 분위기를 대사와 상황적 코미디로 풀어내 관객에게 웃음을 던진다.

영화의 제목부터 그런 코미디 요소를 품고 있다. 동료 영화인들과 <아비정전>을 얘기하다 <애비정전>이 되었고, 그러다 지금의 제목이 튀어나왔다고 한다. "그 단어를 듣고 망설임 없이 제목으로 정했다"며 최하나 감독은 "애초에 코미디로 쓸 생각이었는데 제목 자체가 이야기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영화 속 배드민턴장 장면이 그래서 탄생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토일이 역으로 아이돌 그룹 에프엑스 출신인 정수정을 택한 것도 한 수였다. "원랜 동글동글하게 생긴 귀여운 이미지의 배우를 생각했던 것 같은데 수정씨를 만나자마자 토일이의 대찬 모습이 훨씬 살아날 것 같았다"며 그는 캐스팅 당시를 떠올렸다.

"귀여운 사람이 토일이 역을 하면 어쩌면 그건 남자들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한 사랑스러운 이미지일 것 같더라. 우리 사회에 웃지 않는 여자에 대한 일종의 반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토일이가 그런 여성상이면 어떨까 싶더라. 수정씨가 거기에 맞았다. 동글한 토일이보다 훨씬 더 매력적일 것 같았다. 그건 수정씨가 차가워서가 아니다. 그가 웃을 때와 웃지 않을 때의 갭이랄까? 그게 너무 좋았다.

우리 둘 다 장편 영화가 처음이라 촬영 현장에서 헤매지 않으려고 프리 프러덕션 단계 때 자주 만났다. 수다를 떨면서 수정씨와 제가 비슷한 결이란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뭔가 설득하고 이해시키기도 쉬웠다. 사실 제가 설득 못 해도 수정씨는 알아서 잘 소화하시더라. 대본 리딩하면서 둘 다 각자 운 적이 있다. 수정씨가 첫 주연작에 대한 불안감이 있더라. 워낙 강한 사람이라 그걸 누르고 있다가 저와 얘기하다가 터져서(웃음). 저도 마찬가지로 장편 찍을 준비가 된 걸까 사람들을 설득시킬 준비가 된 걸까 하다 울었다. 수정씨가 달래주고 그랬다."

 

▲ 영화 <애비규환>을 연출한 최하나 감독. ⓒ 리틀빅픽쳐스


<애비규환>으로 좋은 친구가 생긴 셈이다. 또래의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힘이 돼주며 영화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첫 장편 이후 차기작 시나리오를 이미 써놨다"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인 최하나 감독은 "고예산 블록버스터다"라며 크게 웃어보였다.

"스물두 살 때 담당 선생님이 제 단편이 재미없다며 시나리오만 쓸 생각 없는지 말했는데 그 말에 시나리오 전공을 택한 게 있다. 근데 고작 단편 몇 편 찍어놓고 연출을 포기한 것 같더라. 그러다 <애비규환>을 쓰게 됐고, 이걸 다른 사람에게 (연출로)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영진위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돼서 이렇게 감독이 돼버렸다."

툭 던진 '감독이 돼버렸다'는 말에서 토일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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