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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서사를 보듬는 서정의 수사학

'붉은빛이 여전합니까'의 시인 손택수를 만나다

등록|2020.11.10 09:30 수정|2020.11.10 12:07
지난 7일 가을이 더 이상 깊어질 일 없을 때, 손택수 시인을 만나기 위해 동탄신도시의 노작홍사용문학관을 찾았다. 수서역에서 SRT로 15분. 공간과 시간이 문명 앞에 여지없이 축소되었으나, 내 기억 속 넓은 들판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동탄 들녘의 마을들은 방대한 신도시의 규모로 확대 재탄생되어 있었다.

반석산 초입에 자리한 노작홍사용문학관은 거대한 신도시의 문명이 문화와 자연과 함께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반석산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감싸듯 겹겹이 이어지는 도로가 이 도시에 매력을 더해준다.

반석산 뒤로는 오산천이 흐른다. 용인의 석성상에서 발원한 오산천은 동탄과 오산을 지나 아산만에 이르러 서해와 만난다. 백 년 전에는 동탄까지 서해의 배가 문물을 싣고 들어왔다고 한다. 오산천을 거슬러 오르며 배들이 만들어내는 하얀 물결이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산실인 잡지 <백조>(白潮)의 모티프인 것이다. 홍사용은 3.1운동의 실패로 낙담하고 있던 당시 지식인들의 시선을 저 멀리 바다 건너로부터 밀려오는 서양의 근대문명으로 향하게 하고 있었을 것이다.

동탄의 부잣집 아들이었던 홍사용이 1700석지기 재산을 털어가며 <백조>를 창간하고, <토월회>를 조직하며 근대문학과 근대예술을 이끌어 갔던 원동력이 오산천 저 너머에서 넘실대며 밀려오던 하얀 물결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보면, 우리나라 낭만주의 문학의 산실인 <백조>(白潮)는 그 이름마저도 낭만적이다.
 
손택수 시인은 노작홍사용문학관의 관장이다. 이미 우리 문단의 중견시인이고, 시집 <호랑이발자국>(2003), <목련전차>(2006), <나무의 수사학>(2010),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2014) 등 주목할 만한 시적 업적을 상재하며, 올해 <붉은빛이 여전합니까>로 제2회 조태일문학상 수상하는 등 현재의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王이로소이다>를 쓴 홍사용의 무덤이 문학관의 배경화면인 반석산 자락에 있다. 손택수는 말한다. 
 

손택수 시인“홍사용의 무덤은 저에게 왕릉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눈물의 왕이니 ‘누릉’(淚陵)이고,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글쓰기는 ‘누릉일기’(淚陵日記)입니다. 저는 이 무덤을 지키는 ‘능참봉’(陵參奉)입니다." ⓒ 한준명

 
"홍사용의 무덤은 저에게 왕릉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눈물의 왕이니 '누릉'(淚陵)이고,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글쓰기는 '누릉일기'(淚陵日記)입니다. 저는 이 무덤을 지키는 '능참봉'(陵參奉)입니다. 제 시쓰기의 30년 여정이 동탄에 머무를 수 있었던 이유도 능참봉으로 홍사용을 지키고 알리기 위함입니다."

손택수의 시는 부드럽다. 과거의 상처마저 부드럽게 감싼다. 그래서 그의 시를 '상처의 서사를 보듬는 서정의 수사학'이라 명해도 되겠다. 젓갈통 속 새우의 몸통이 다 삭아도 눈빛만은 온전히 남아 있듯이 "무시무시하다/ 그리움이여/ 지워지지 않는 눈빛이여"(「눈빛」)라며 모든 일상의 기억을 시 속에 소환한다. 현재가 사라져도 기억은 남는다. "가만히 맥박처럼 짚어보"(「가만히 맥박처럼 짚어보는 누군가」)면, 그 모든 상처의 기억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홍사용문학관의 소극장인 '산유화극장'에서 진행된 손택수 시인의 문학 강연은 한편의 대학로소극장 모노드라마를 본 후의 느낌을 준다. 그가 담담한 어조로, 뜨거운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시와 삶과 예술에 대한 회고와 전망은,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어린 시절과 문학소년 시절과 문청 시절과 중년의 삶을 넘나들면서 각자의 서사로 재구성된다. 수없이 많은 사연이 소극장 안의 눈망울과 교감하며 넘고 뛰고 맺다가, 다시 시인의 눈빛에 닿아 멈춘다.
  

손택수 시인"언어로 사물과 현상을 가두지 않고 자유와 해방의 상상력으로 나가야 소통과 교감이 일어납니다.” ⓒ 한준명


"언어를 실용성, 목적성, 도구적 가치로 사용하면, 그 사용 가치가 사라질 때 폐기되고 맙니다. 하지만 쓸모 없을 때가 더 나다운 때입니다. 시는 이 쓸모의 강박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합니다. 언어로 사물과 현상을 가두지 않고 자유와 해방의 상상력으로 나가야 소통과 교감이 일어납니다."

나는 왜 시를 못 쓰는가. 왜 잘 쓰지 못하는가. 나는 시를 쓰면서 자유롭지 못했다. 잘 쓴 시의 기준을 가지고 생각을 언어 속에 가뒀다. 갇힌 생각은 답답하고 괴로웠다. 마치 시쓰기를 괴로움의 산물처럼 여겼다. 시쓰기가 즐겁지 않으니, 시가 써질 리 없었다. 생각을 언어의 감옥에 가두지 말고, 즐겁게 뛰놀게 해야 한다. 그저 새로운 시선으로 사물의 이면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더 자유로운 언어로 세계를 노래해도 될 일이었다.
  

손택수 시집 《붉은빛이 여전합니까》(창비,2020)올해 제2회 조태일문학상을 수상한 손택수 시인의 시집《붉은빛이 여전합니까》 ⓒ 한준명


내 문학의 여정에서 손택수 시인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다. 그리고 그의 최근 시집 <붉은 빛은 여전합니까>에서 만난 한 편의 시 또한 그러하다. 흉터는 상처의 서사로 내 몸에 남아 내 삶을 입증한다. 나 또한 그 상처의 시간들을 배껴쓰다가(필경(筆耕)하다가), 그 모든 기록과 함께 한줌의 재로 사라질 터이다.

흉터 필경사
손택수

이야기를 몸에 갖고 싶어서 흉터를 갖게 되었나 보다
살거죽을 노트로 내어주었나 보다
머리카락으로 가린 이마 위의 흉은 감나무 가지를 타고 놀다 떨어진 것이다
할아버지는 읍내 차부 옆 약방까지 달려갔다 오시고
강변 밭 매러 갔던 할머니는 눈에 독가시가 돋아났다
하이고 손씨네 귀한 첫손주를 잘 모시질 못했으니 내가 죽일년이라
그 상처 아물 때까지 숨도 제대로 크게 쉬질 못하고 지냈구나
흉터는 다문 뒤에도 말을 한다
어떤 흉터는 다이빙을 하던 냇물의 돌을 기억하고
돌이 부딪혀 까진 무르팍을 혀로 핥아주던 옆집 선자 누나를 잊지 못한다
돌이끼처럼 앉은 딱지를 상처가 나지 않게 뜯어먹던
물고기들의 입맞춤도 있다 각시붕어였지 아마
자신의 몸에 이야기를 파 넣는 필경사
어느 페이지엔 부끄러워서 혼자만 읽는 이야기도 있고
지워지고 지워져서 더는 읽을 수 없는 이야기도 있다
단벌 노트에 쓰는 비망록 나달나달해진 페이지에 지우개똥 같은 때가 밀린다
아니, 지우개밥인가 이 모든 이야기들이 나의 필생이라면 필경,
마지막 필경은 모든 기록을 불사르는 데 바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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