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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이 아니라 '환장'의 재택근무입니다

[직장 생활의 맛] 엄마니까 해야 하는 일은 그만... 역할 분담하는 가족 시스템 도입 시급

등록|2020.11.13 13:52 수정|2020.11.13 13:52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저 일하는 공간이 바뀐 것뿐인데, 돌이켜보면 잃은 것이 참 많습니다. 출근길 지옥철에서 쌓인 피로를 녹여주던 따끈한 아메리카노의 맛, 정신없는 오전 업무를 마치고 한숨 돌리며 먹던 점심식사의 맛, 퇴근길 마음 맞는 동료에게 하소연과 푸념을 실컷 늘어놓고 시원하게 들이키던 맥주 한 잔의 맛... 지루한 직장 생활에 생기를 더해주던, 그리운 모든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해봅니다. [편집자말]
한때 프리랜서를 꿈꿨다.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삶. 정해진 출퇴근 없이 잠옷 차림으로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삶. 그런 삶을 동경해왔고 마침내 그 꿈을 이뤘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하늘과 땅 차이. 드라마에 나오던 프리랜서의 낭만은 전부 다 거짓부렁이었다.

내가 프리랜서라고 하면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재택에 관한 부분이다. 하지만 실상 나는 집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 주로 대형 카페나 도서관에서 일을 한다.

"왜? 집에서 일하는 게 더 좋지 않아?"
"애들이랑 같이 있는 시간도 많고, 나도 재택 하고 싶다." 


재택은 철저한 시간 계획과 자기와의 싸움
 

▲ 직장맘인 친구 A는 재택에 대해 이런 표현을 썼다. 회사 업무, 집안일, 육아까지 해야 하는 '환장의 쓰리콤보'라고. ⓒ Pixabay


재택이 얼마나 철저한 시간 계획과 자기와의 싸움인지 모르는 친구들은 실로 편한 일인 줄로만 생각한다. 그 친구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집 안에서 업무 일을 하는 것에 얼마나 많은 실패를 했는지 말이다.

평소엔 절대 눈에 보이지 않던 집안일들이 노트북을 켜는 순간 너무 디테일하게 보인다. 게다가 아이들이 있을 경우 일의 집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 밥 때는 얼마나 자주 돌아오는지... 주방에 서는 순간, 몇 시간은 그냥 개수대에 흘려보내는 물처럼 줄줄줄 흘러가 버린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보편화되자 주변인들이 내가 겪던 이 재택의 괴로움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직접 그 세계를 경험해보니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 차라리 회사에 가는 게 낫겠어!"
"미치겠어. 남편이랑 24시간 붙어있다간 사달이 날 것 같아." 


재택근무하는 친구들과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멘트였다. 특히 회사원의 재택은 프리랜서의 재택과는 또 다른 애로사항이 있었다. 프리랜서는 페이를 포기하면 일의 양을 조절할 수 있지만 회사원은 그렇지 않다.

직장맘인 친구 A는 재택에 대해 이런 표현을 썼다. 회사 업무, 집안일, 육아까지 해야 하는 '환장의 쓰리콤보'라고. A의 아이들을 봐주시던 시부모님도 A의 재택이 결정되자 엄마가 집에 있다며 휴식기에 돌입하셨단다. 집에서 일을 하는 건 왠지 노는 것과도 비슷하게 비치기도 해 억울한 면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 잦은 배달 음식에 남편과 아이들이 싫은 티를 냈고 결국엔 자신에게 집밥을 요구했다고 한다. ⓒ Pixabay


재택근무를 하면서 남편과의 갈등도 잦아졌는데 그 이유가 가사와 육아 분담 때문이었다. 남편은 언제나 거드는 자세로만 임했지 적극적인 자세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A의 불만이었다. 게다가 아이들 역시 아빠보다 엄마를 찾는 빈도가 더 많아서 더 쉽게 지친다고 했다.

그중 갈등 증폭제가 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밥' 문제였다. 친구는 편의를 위해 주로 점심엔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그런데 그것이 반복되자 남편과 아이들이 싫은 티를 냈고 결국엔 자신에게 집밥을 요구했다고 한다. 내가 더 발끈해서 말했다.

"말이 돼? 그럼 공평하게 나눠서 하자고 해!"
"내가 잘하니까 그렇대. 그런 건 엄마가 더 잘하니까... 애들도 엄마가 한 걸 더 좋아하니까 그렇게 말한 거래. 근데 나라고 처음부터 잘했겠냐?"


울화통이 터진다는 친구 말에 백번 공감했다. 일은 해야지, 집안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지. 남편과 집안일을 두고 서로 눈치를 보게 되지... 친구는 차라리 회사에 가는 게 백번 낫겠다고 한숨을 푹푹 쉬었다. 집은 오로지 집의 기능만 할 때 행복한 것 같다며 재택의 환상은 모두 깨졌다고 말했다(친구여~ 내 진작에 말하지 않았던가).

재택이 합리적 업무 수단이 되려면

현재 A는 재택근무가 아닌 일반근무로 전환돼 다시 회사에 복귀했다. 그녀의 출근길을 상상해 보았다. 발목에 모래주머니가 달린 듯했던 예전의 출근길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지 않을까?

매끄럽게 잘 돌아가던 일상이 코로나라는 변수로 삐그덕 대기 시작한 지 벌써 일 년이 가까워진다.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이 시점에 언제 또 재택이 일상화 될지 모를 일이다.

'엄마니까', '여자니까'는 재택 업무의 부가 서비스가 될 수 없다. '나라고 처음부터 잘했겠니?'라고 했던 친구의 말은 '처음부터 잘할 리 없었던 엄마들이 멀티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노력이 있었겠나'라는 생각이 들어 괜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재택이 안전하고 합리적인 업무 수단이 되려면 가족 내 시스템도 재정립돼야 한다. 한 사람에게만 미루기 식의 업무와 불합리함이 강요되는 것은 어떤 조직이든 올바른 질서를 꾀해야 한다. 가정이라는 조직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일할 맛 나는 세상! 엄마들에게 그런 세상의 맛은 언제쯤 볼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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