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묵직한 질문... 검사들은 뭐라 답할 텐가?
[주장] '시대적 과제' 검찰개혁이 계속 표류하는 이유
▲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8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검란(檢亂). 지난달 28일 제주지검 이환우 검사가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남긴 글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맞대응하면서 불붙은 일선 검사들의 반발을 주류 언론은 저렇게 표현했다. 2000명이 넘는 검사 중 300여 명 정도가 참여한 것으로 보이는 댓글 릴레이를 '검란'이라 칭하는 것이 온당한지 모르겠지만, 추 장관을 향해, 아니 더 정확히는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이 정부를 향해 일선 검사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검란의 시발점이 된 이 검사의 글을 보자. 그는 "검찰개혁은 실패했다"라는 글에서 "목적과 속내를 감추지 않은 채 인사권·지휘권·감찰권이 남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로 인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검찰권 남용 방지라는 검찰개혁의 핵심적 철학과 기조는 크게 훼손되었다"며 현 정부와 추 장관의 검찰개혁이 근본적으로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이 글엔 일선 검사 3백여명이 댓글을 달며 화답했다.
데자뷰
임기 초부터 참여정부는 검찰과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비검찰 출신인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고, 정부출범 직후 법무부가 고검장 인사를 단행하자 검찰 고위급 간부들을 중심으로 인사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일선 검사들이 가세하면서 내부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검찰의 이런 움직임을 주류 언론은 '검란', '집단항명' 등으로 표현했다.
아직까지 회자되는 노 대통령과 평검사들과의 토론회가 마련된 배경이었다. 2003년 3월 9일 생중계된 이날 토론회는 많은 이야기 거리를 낳았다. 노 대통령은 평검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검찰인사를 둘러싼 오해를 풀고,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개혁 방향과 비전에 대해 격의 없는 토론이 펼쳐지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는 완전히 정반대로 흘러갔다.
토론회에 참석한 평검사들은 작정하고 나온듯 인사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검찰 개혁과 관련된 질의나 논의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발언순서가 돌아올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집요하게 인사문제만 거론했다.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적 담론에 맞춰 대통령과 평검사들이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나누는 건설적인 토론이 기대됐지만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훗날 이 모습을 이렇게 술회했다.
"행사가 시작됐는데, 이건 목불인견이었다. 젊은 검사들은 끊임없이 인사문제만 되풀이해 따지고 물었다. 한 사람이 인사문제에 대해 질문해서 대통령은 충분히 설명했는데, 다음 발언자가 이미 정리하고 넘어간 문제를 똑같이 반복했다. 대통령은 같은 얘기를 반복해야 했다. 인사불만 외에, 검찰 개혁을 준비해 와 말한 검사는 없었다. 오죽했으면 '검사스럽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문재인의 "운명" 236~7페이지)
노 대통령은 검찰조직을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법무부 장관과 민정수석에 비검찰 출신을 임명하는 등 검찰을 통제하거나 장악하려 들지 않았다. 그 기저에는 정치권력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검찰 스스로 민주적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깔려있었다. 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에는 이런 기대와 바람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나는 검찰의 중립을 보장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면 검찰도 부당한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검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273페이지)
노 대통령이 토로한 것처럼 검찰은 인사문제 뿐 아니라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공수처) 같은 제도 개혁도 조직적으로 반발하며 저항했다. 이후의 일은 모두가 안다. 검찰의 독립과 중립을 지켜주려 애썼던 노 대통령은 퇴임 후 표적 수사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노 대통령의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로서 이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본 문 대통령이기에 검찰개혁은 더 남다르고 각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등 제도 개혁을 하지 못한 참여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검찰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배경일 터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문 대통령 역시 비슷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논란 이후 무려 1년에 넘게 청와대와 검찰은 계속해서 부딪히며 강한 파열음을 내고 있는 중이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 아슬아슬하기만 한 이 기류는 최근 추 장관이 행사한 인사·지휘·감찰권에 대해 일선 검사들이 집단 반발하면서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운명의 장난처럼, 검찰개혁을 추진한 두 대통령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일선 검사들로부터 신랄한 공격과 비판을 받고 있다. 검찰조직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고,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추진될 때마다 검찰 내부의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다.
검사들에게 묻고 싶다
'검찰개혁은 실패했다'고 검사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그런 검찰의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강하게 터져나오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커밍아웃검사 사표 받으십시오!' 청원은 11월 13일 현재 44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폭풍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같은 시민들의 뜨거운 반응은 오랫동안 쌓여온 검찰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을 보여주는 방증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제 검찰의 수사·기소권 남용, 봐주기 수사 및 표적·기획 수사, 제 식구 감싸기 사례 등은 일일히 열거하기가 벅찰만큼 부지기수다. 그간 검찰은 정권의 의도에 맞춰 검찰권을 행사하는가 하면, 권력형 범죄에 대한 부실수사로 면죄부를 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검찰 내부 비리와 일탈행위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사건 뭉개기와 봐주기 수사로 공분을 샀다.
그 비근한 예가 최근 유죄 판결을 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경우다. 만약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엄중하게 죄를 따져물었다면 거짓말을 일삼던 위정자가 대통령이 되는 일은 없었을 테고, 성범죄를 저지른 고위공직자가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피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일각에서 '인디언 기우제' 같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조국 전 장관 가족 수사와 달리 십여 차례가 넘도록 고발장이 접수됐지만 아직까지도 수사에 별 진척이 없는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 관련 의혹, 윤석열 검찰총장 가족을 둘러싼 의혹 역시 검찰 수사의 공정성이 흔들린다는 점에서 앞서의 예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검란'을 촉발시킨 이 검사의 글을 다시 보자. 그는 현 정부의 검찰개혁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그 근거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검찰권 남용 방지라는 검찰개혁의 핵심적 철학과 기조는 크게 훼손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 검사가 꼬집은 '검찰의 중립성', '검찰권 남용' 같은 문제들은 그간 검찰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거론됐던 것들이며, '윤석열 총장 체제'에서도 여전히 갑론을박이 뜨거운 논제다.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마다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있는 검사들이 왜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과오와 오류에 대해서는 이토록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오마이뉴스>는 흥미로운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만 시끄러운 검사들... 조국의 돌직구"란 제목의 이 기사는 "왜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비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이 검찰수사의 문제점을 교정하기 위해 공식적 지휘를 했을 때만 '검란'이 운운되는 것인가요"라는 조 전 장관의 페이스북 글을 소개하며, "하필 검찰개혁을 들고나온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에서만 검사들이 반기를 들고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는지 검사들이 스스로 답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있었다.
시대적 과제이자 다수 시민의 요구인 검찰개혁이 계속해서 표류하는 이유가 어쩌면 저 장면 속에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궁금하다. 조 전 장관이 던진 저 묵직한 질문에 검사들은 뭐라 답할 텐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mygiregi.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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