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인터폰 속에서 활짝 웃던 배달기사님, 내가 몰랐던 그 뒷모습

작은 배달 실수에 퉁명스러워졌던 나... 음식이 식는 것보다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의 '마음'

등록|2020.11.21 11:48 수정|2020.11.21 11:48

▲ 서울의 한 도로에서 배달 라이더들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사진 속 업체와 기사의 내용은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오늘은 또 뭐 시켜 먹지?'

코로나 시대의 시작과 함께 '설마 그게 가능하겠어?' 싶었던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주말이고 평일이고 주야장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도대체 엄마는 삼시 세끼를 어떻게 해 먹었을까?' 놀라움을 넘어 경외심마저 느끼는 상황에 다다르자, 음식을 배달로 시켜 먹는 건 이제 일상이 되어 버렸다.

'나도 건강한 식재료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겠어!'라는 호기로움은 고작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엄마가 보내주는 반찬에 의지하다 그것마저 떨어지면 김치볶음밥과 달걀 프라이만을 돌려먹는 나날을 이어갔다. 그러다 배달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됐다.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는 욕구 불만이 모두 식욕으로 옮겨간 건지, 예전엔 간혹 이용하던 배달앱은 이제 내가 가장 자주 이용하는 어플이 되었다.

음식을 배달해주는 앱이 이미 3개나 깔려있던 나는, 고기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는 할인쿠폰을 찾아 배달앱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얼마 전 새로 생긴 배달앱에 친구 추천을 받으면 5000원짜리 할인쿠폰 2장을 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재빠르게 앱을 깔고 회원가입을 했다. 너도나도 음식을 시켜 먹는 게 일상이 되다 보니 이미 사용하고 있던 친구에게 추천을 받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무려 5000원짜리 쿠폰을 받고 보니 어쩐지 든든하기까지 하다.

주문한 지 3분 만에 '배달중'... 이거 뭐지?
 

▲ 신중에 신중을 더해 선택한 오늘의 배달음식은 주꾸미볶음이다 ⓒ Pixabay

 
'오늘은 정말 무엇이 먹고 싶은가?' 신중에 신중을 더한 깊은 고찰 끝에 메뉴를 주꾸미볶음으로 낙점한 후 주꾸미 음식점의 평점과 리뷰를 모두 읽고 나서야 한 가게를 골라 주문을 완료했다. '25분 후 도착 예정'이라는 안내 멘트를 보며 나의 소중한 주꾸미가 도착할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나 행복한 고민에 빠질 무렵 '띠링' 안내문자가 왔다.

'배달 중'

응? 주문 완료한 지 3분 정도밖에 안 된 거 같은데? 주꾸미가 볶아질 시간은 고사하고, 이미 볶아져 있는 주꾸미를 용기에 담을 시간도 부족할 것 같은데 이게 무슨 말이지?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주꾸미가 배달만 된다면 상관할 바 없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분 뒤 또다시 안내 문자가 왔다.

'배달 완료'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의 소중한 주꾸미는 과연 따끈따끈한 온도를 유지하며 나의 두 손에 정상적으로 안착할 것인가. 분명 지금쯤이면 배달이 시작돼야 제대로 된 절차인 것 같은데 벌써 배달 완료라니... 잠시 후 나의 불안함에 기름을 끼얹는 듯 낯선 핸드폰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배달기사라고 본인을 소개한 그분은 배달 초짜이신지, 기계 조작이 서툴러서인지 배달 완료 버튼을 잘못 눌러버려 나의 주소가 사라졌으니 주소를 문자로 좀 보내 달라고 하셨다. '아.... 매뉴얼 좀 잘 숙지하고 일하시지.'

실수에 대한 짜증과 함께 음식이 식어서 배달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 마음이 이러니 말이 곱게 나올 리가 없었다. 조금은 퉁명스러운 나의 말투에 배달기사님은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라도 하시려는 듯 음식은 방금 전에 받았는데 출발하려고 보니 주소가 없어 다시 음식점으로 돌아와 나의 휴대전화 번호를 받아 연락을 주는 거라고 설명해주셨다.

'에잇, 귀찮게.'

누구보다 환했던 미소와 쓸쓸한 뒷모습 

얼마 후 집 앞에 도착한 배달기사님은 중년의 남성분이셨다. 비대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답게 '문 앞에 놓고 벨 누르고 가시면 됩니다'라는 나의 요청 문구에도 불구하고 인터폰 속 기사님은 얼굴까지 보여주시며 방긋 웃고 계셨다.

다른 배달기사님들은 벨을 누르는 것과 동시에 바람처럼 사라져버려 인터폰에는 늘 허공만 보였는데, 사뭇 대조적이었다. 진짜 배달기사를 처음 해보시는 분인가, 어쩌면 오늘 실수에 대해 사과를 하고 싶으신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쳤다.

왜 계속 문 앞에 서 계시나 의아했던 내가 '거기 놓고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인터폰으로 남긴 후에야 배달기사님은 포장된 음식을 여기 놓고 가겠다는 수신호를 보내신 후 자리를 떠나셨다. 나의 소중한 주꾸미를 가지러 가기 위해 문을 열고 음식을 집어 들며 고개를 돌렸는데, 배달기사님이 터덜터덜 복도를 걸어가고 계셨다.

그 짧은 찰나, 기사님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던 건 그저 나의 기분 탓이었을까. 누군가의 아들로, 누군가의 남편으로, 누군가의 아빠로, 혹은 본인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낯선 세계에 발을 디딘 가장일지도 모르는 이의 뒷모습은 왠지 서글프고 쓸쓸해보였다.

그날 내가 목격한 건 실수를 한 본인을 책망하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고, 낯선 일을 시작한 데서 오는 고단함일 수도 있고, 시간 안에 배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쉴 틈 없이 달려온 후의 피곤함일 수도 있겠다. 별거 아닌 실수였는데 괜찮다고 말해 드릴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리뷰를 작성하는 항목을 보니 음식점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배달기사님을 평가하는 항목도 있었다. 이런 게 있어서 그냥 쉽게 음식만 놓고 가시기가 어려웠나 보구나,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고객들에게 받은 배달 평점은 물론, 약속시간 내 도착률, 음식 온도 등에 대한 피드백도 기록되고 있었다. 다행히 맛있었던 음식점에도 기분 좋은 후기를 남기고, 배달기사님 평가에도 '좋아요'를 누르고 나서야 조금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매일 먹는 삼시 세끼 중 한 끼의 식사가 몇 분 늦는다고 해서 내 인생의 행복지수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분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일 텐데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로 생각하면 될 일이다. 작든 크든 그분들에게 상처로 남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거운 어깨에 혹여 내가 짐을 얹어주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그 배달기사님도 며칠이 지났으니 이제는 기계조작이 조금 더 손에 익으셨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과 함께, 다음에 배달을 시켜 먹을 때는 배달기사님 요청 사항에 이걸 남겨야겠다.

'조금 늦어도 괜찮으니 안전하게 배달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