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폰 속에서 활짝 웃던 배달기사님, 내가 몰랐던 그 뒷모습
작은 배달 실수에 퉁명스러워졌던 나... 음식이 식는 것보다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의 '마음'
▲ 서울의 한 도로에서 배달 라이더들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사진 속 업체와 기사의 내용은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오늘은 또 뭐 시켜 먹지?'
코로나 시대의 시작과 함께 '설마 그게 가능하겠어?' 싶었던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주말이고 평일이고 주야장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도대체 엄마는 삼시 세끼를 어떻게 해 먹었을까?' 놀라움을 넘어 경외심마저 느끼는 상황에 다다르자, 음식을 배달로 시켜 먹는 건 이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음식을 배달해주는 앱이 이미 3개나 깔려있던 나는, 고기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는 할인쿠폰을 찾아 배달앱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얼마 전 새로 생긴 배달앱에 친구 추천을 받으면 5000원짜리 할인쿠폰 2장을 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재빠르게 앱을 깔고 회원가입을 했다. 너도나도 음식을 시켜 먹는 게 일상이 되다 보니 이미 사용하고 있던 친구에게 추천을 받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무려 5000원짜리 쿠폰을 받고 보니 어쩐지 든든하기까지 하다.
주문한 지 3분 만에 '배달중'... 이거 뭐지?
▲ 신중에 신중을 더해 선택한 오늘의 배달음식은 주꾸미볶음이다 ⓒ Pixabay
'오늘은 정말 무엇이 먹고 싶은가?' 신중에 신중을 더한 깊은 고찰 끝에 메뉴를 주꾸미볶음으로 낙점한 후 주꾸미 음식점의 평점과 리뷰를 모두 읽고 나서야 한 가게를 골라 주문을 완료했다. '25분 후 도착 예정'이라는 안내 멘트를 보며 나의 소중한 주꾸미가 도착할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나 행복한 고민에 빠질 무렵 '띠링' 안내문자가 왔다.
'배달 중'
응? 주문 완료한 지 3분 정도밖에 안 된 거 같은데? 주꾸미가 볶아질 시간은 고사하고, 이미 볶아져 있는 주꾸미를 용기에 담을 시간도 부족할 것 같은데 이게 무슨 말이지?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주꾸미가 배달만 된다면 상관할 바 없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분 뒤 또다시 안내 문자가 왔다.
'배달 완료'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의 소중한 주꾸미는 과연 따끈따끈한 온도를 유지하며 나의 두 손에 정상적으로 안착할 것인가. 분명 지금쯤이면 배달이 시작돼야 제대로 된 절차인 것 같은데 벌써 배달 완료라니... 잠시 후 나의 불안함에 기름을 끼얹는 듯 낯선 핸드폰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배달기사라고 본인을 소개한 그분은 배달 초짜이신지, 기계 조작이 서툴러서인지 배달 완료 버튼을 잘못 눌러버려 나의 주소가 사라졌으니 주소를 문자로 좀 보내 달라고 하셨다. '아.... 매뉴얼 좀 잘 숙지하고 일하시지.'
실수에 대한 짜증과 함께 음식이 식어서 배달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 마음이 이러니 말이 곱게 나올 리가 없었다. 조금은 퉁명스러운 나의 말투에 배달기사님은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라도 하시려는 듯 음식은 방금 전에 받았는데 출발하려고 보니 주소가 없어 다시 음식점으로 돌아와 나의 휴대전화 번호를 받아 연락을 주는 거라고 설명해주셨다.
'에잇, 귀찮게.'
누구보다 환했던 미소와 쓸쓸한 뒷모습
얼마 후 집 앞에 도착한 배달기사님은 중년의 남성분이셨다. 비대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답게 '문 앞에 놓고 벨 누르고 가시면 됩니다'라는 나의 요청 문구에도 불구하고 인터폰 속 기사님은 얼굴까지 보여주시며 방긋 웃고 계셨다.
다른 배달기사님들은 벨을 누르는 것과 동시에 바람처럼 사라져버려 인터폰에는 늘 허공만 보였는데, 사뭇 대조적이었다. 진짜 배달기사를 처음 해보시는 분인가, 어쩌면 오늘 실수에 대해 사과를 하고 싶으신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쳤다.
왜 계속 문 앞에 서 계시나 의아했던 내가 '거기 놓고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인터폰으로 남긴 후에야 배달기사님은 포장된 음식을 여기 놓고 가겠다는 수신호를 보내신 후 자리를 떠나셨다. 나의 소중한 주꾸미를 가지러 가기 위해 문을 열고 음식을 집어 들며 고개를 돌렸는데, 배달기사님이 터덜터덜 복도를 걸어가고 계셨다.
그 짧은 찰나, 기사님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던 건 그저 나의 기분 탓이었을까. 누군가의 아들로, 누군가의 남편으로, 누군가의 아빠로, 혹은 본인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낯선 세계에 발을 디딘 가장일지도 모르는 이의 뒷모습은 왠지 서글프고 쓸쓸해보였다.
그날 내가 목격한 건 실수를 한 본인을 책망하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고, 낯선 일을 시작한 데서 오는 고단함일 수도 있고, 시간 안에 배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쉴 틈 없이 달려온 후의 피곤함일 수도 있겠다. 별거 아닌 실수였는데 괜찮다고 말해 드릴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리뷰를 작성하는 항목을 보니 음식점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배달기사님을 평가하는 항목도 있었다. 이런 게 있어서 그냥 쉽게 음식만 놓고 가시기가 어려웠나 보구나,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고객들에게 받은 배달 평점은 물론, 약속시간 내 도착률, 음식 온도 등에 대한 피드백도 기록되고 있었다. 다행히 맛있었던 음식점에도 기분 좋은 후기를 남기고, 배달기사님 평가에도 '좋아요'를 누르고 나서야 조금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매일 먹는 삼시 세끼 중 한 끼의 식사가 몇 분 늦는다고 해서 내 인생의 행복지수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분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일 텐데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로 생각하면 될 일이다. 작든 크든 그분들에게 상처로 남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거운 어깨에 혹여 내가 짐을 얹어주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그 배달기사님도 며칠이 지났으니 이제는 기계조작이 조금 더 손에 익으셨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과 함께, 다음에 배달을 시켜 먹을 때는 배달기사님 요청 사항에 이걸 남겨야겠다.
'조금 늦어도 괜찮으니 안전하게 배달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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